[이현상의 시시각각] 투기꾼의 진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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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번째 3기 신도시로 선정된 광명·시흥지구.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 주택지구 지정됐으나 하우스푸어 문제가 불거졌던 박근혜 정부 시절 해제됐다가 이번에 다시 신도시 지구로 지정됐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투기 세력의 공략 대상이 됐다. [연합뉴스]

    6번째 3기 신도시로 선정된 광명·시흥지구.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 주택지구 지정됐으나 하우스푸어 문제가 불거졌던 박근혜 정부 시절 해제됐다가 이번에 다시 신도시 지구로 지정됐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투기 세력의 공략 대상이 됐다. [연합뉴스]

    시장(市場)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야당 시장 후보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자 서울 한강변·강남·목동 등의 재건축 매물이 싹 들어갔다고 한다.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성급한 기대 뒤에는 불안한 시선이 있다. 겨우 진정세를 찾아가는 집값을 또 들쑤시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허황했다. “부동산은 끝났다”는 호기로 시작했지만, 현실과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그 결과는 4년간 서울 평균 아파트값 80.3% 상승(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이다. 야당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야당의 부동산 대책이 정부 정책의 기계적 대척점일 뿐이라는 비판은 무시하기 힘들다. 궁극적으로 공급이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말이 틀리진 않을 거다. 문제는 ‘궁극’까지 가는 길에서 벌어질 ‘욕망의 향연’을 어떻게 관리할 지다. 시장 원리 존중이 시장에 대한 투항이 되지 않는 방법을 야당은 고민해야 한다.

    LH사태 빌미된 부동산 정책 요동
    여야 초월 부동산 정책 기조 필요
    사회적 대타협 기구 가동 어떤가

     부양과 억제, 공급과 규제. 부동산 정책에서 대립하는 키워드들이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 대립항 사이를 실에 매달린 추(錘)처럼 진자(振子)운동을 했다. 찬물과 더운물을 조절하지 못하는 ‘샤워실의 바보’가 따로 없다. 결과는? 짧은 안정 내지 침체 기간을 제외하면 집값은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서슬 퍼런 세금 중과나 규제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정신으로 버티면 결국 보상받았다. 오락가락 노선을 잘 올라타면 벼락부자가 되고, 놓치면 벼락 거지가 됐다. 잠깐의 침체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도 이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집스럽게 규제에 매달리더니 결국 공급 확대로 선회했다. 애초에 현실성 부족한 정책이 지속 가능할 리 없다. 판을 읽은 노련한 ‘꾼’들은 그 사이 길목을 선점했다. 문제가 된 광명·시흥 신도시는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 주택 지구로 지정됐다가 박근혜 정부 때 풀린 곳이다. 굳이 기밀 정보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촉’이라면 찍을 만한 입지다. 아니나 다를까, 이 땅은 2·4대책의 하나로 3기 신도시 후보지로 발표됐다. LH 사태는 정책 오류를 뒤늦게 돌리다 빚어진 탈이다. 급변침 사고는 바다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정책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걸 모를 바보는 없다. 하지만 선거는 때마다 치러야 하고, 표는 무섭다. 고비마다 정책은 급변침하고, 준비되지 않은 대책은 부작용을 낳는다. 비단 이번 정부만의 현상은 아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정책 틀이 필요한데, 이를 고민하는 역대 정부는 없었다. 기껏해야 ‘장기 집권 플랜’만 가동할 뿐이다. 연정(聯政)을 기반으로 주요 정책 노선에 대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유럽 국가들과는 대조적이다.
     ‘부동산 불패’ 늪에 빠져 우리 사회가 허우적대고 있다. ‘탈노동’과 ‘초연결’로 특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사회 갈등의 축은 전통적 노사 문제에서 주거나 복지 같은 일상의 문제로 옮겨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적인 부동산 정책 철학은 한국 사회 미래 틀을 짜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유명무실해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가동해 보는 건 어떤가. 부동산 정책 철학, 조세, 장기 공급 방향, 규제의 원칙 등을 사회적 합의로 정하는 것이다. 물론 대못을 박듯 경직된 틀을 만들라는 건 아니다. 경제 상황에 따라 탄력적 정책을 펼칠 공간은 당연히 둬야 한다. 다만 민간과 공공 혹은 시장과 규제 사이의 거리를 좁혀 놓으면 갈등과 비용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꿈같은 이야기일 수 있겠다. 승자독식 게임에 몰두하는 정치권을 보면 더 그렇다. 그러나 여권은 부동산 실패의 불명예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지 않을까. 보수 야당도 부자 정당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지 않을까. 정치가 망친 부동산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정치에서 찾을 수밖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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