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내가 목격한 한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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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이십여 년 전. 나는 북한의 결핵 퇴치 사업을 위해 북한 지방지역에 있는 결핵병원과 결핵요양소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북한을 수없이 다녔다. 어느 날, 도요타 봉고차를 타고 지방에서 평양을 향해 달리던 밤길에 노후 된 차의 엔진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대화하기는 힘들었지만 조심스럽게 우리를 안내한 분 중에 한분이 나에게 물었다.
     

    ‘잘살 수 있다’ 심어준 박정희
    근로자의 희생이 발전의 기틀
    남편·자식 위해 헌신한 어머니

    “남조선은 우리보다 좀 앞섰다던데 그게 사실이면 말해보라우” 질문을 받은 나는 엄청 당황했다. 나는 광주항쟁에서 하루 통역만 했을 뿐인데 누명을 쓰고 데모 주동자로 몰려 5공화국 때, 전두환 정권하에서 2년 동안 사복경찰의 밀착 감시를 당하며 고통스럽게 지냈다. 그래서 북한에서 우리나라를 좋게 이야기하면 감금이나 추방으로 이어질까 순간 걱정이 되었지만 “정말 얘기해 보라우?”하고 되물었고 젊은 안내원의 질문이 순수한 의도인 것 같아 답을 주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 이유를 첫 번째,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라도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때, 지역감정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솔직히 경상도 사람은 일본사람보다 조금 덜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나이가 좀 들어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알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했고 부당한 유신, 그리고 특별조치 같은 비민주적인 일들도 행했지만 오천년 역사에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관’을 앞세우지 않고 ‘민’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젊은 안내원에게 정주영을 아느냐 물었다. 그는 소떼 1001마리를 안다고 했다. 나는 “젊은이. 대한민국에는 정주영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박태준, 이건희, 김우중, 허씨, 구씨도 있었다네”라고 했다. ‘민’에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서 선택적으로 밀어주고 한국 경제가 빨리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열어준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새마을 운동을 통해 6·25전쟁 이후 패배의식에 빠져있던 우리 사회에서 논두렁에서 농부들과 막걸리 한잔하면서 “우리는 잘살 수 있다”는 희망과 생각을 모두의 머리에 심어주었다.
     
    두 번째, 우리나라가 잘살게 된 것은 우리 근로자들의 엄청난 희생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독 간호사·광부는 물론이고 땡볕 50도 더위에서 일했던 중동 근로자들도 있었다. 그 뿐인가. 국내에서는 하루 16시간 이상 재봉틀 앞에 앉아 일했던 구로 공단의 근로자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우리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해 미국에 수출을 하고 귀한 외화를 벌어서 국가 발전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더한 일도 있었다. 월남에 한국군이 30만명이 파병되었는데 통계에 의하면 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까지 계산하면 1만명이 넘을 것이라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근로자와 군인이 피와 생명까지 바쳐 발전을 이룬 나라인 것이다.
     
    세 번째, 우리나라의 힘은 남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여성에게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어머니들 때문에 발전했다. 근면, 절약정신, 교육, 남편과 자식을 성공의 길로 이끌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이 지금은 할머니들이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할머니들은 대부분이 국가 유공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 가지가 한강의 기적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그 젊은 안내원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줄을 잘 섰디 뭐” 했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 소비에트 뒤에 줄섰고, 남조선은 미국 뒤에 줄서서 잘살게 됐디 뭐”라며 따져 말했다. 대한민국의 힘은 대한민국 스스로의 것이 아니고 미국의 힘이라는 뉘앙스였다.
     
    나는 의대생들을 교육하면서 학생들의 잘못된 생각을 질문을 통해서 고쳐주곤 한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도 물었다.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아냐? 당신들과 전쟁할 때, 필리핀은 많은 군인을 보내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우리를 도왔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경제적인 원조를 보내 서울에 있는 장충 체육관도 지어주었다. 그런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100년 전에 미국 뒤에 줄을 섰는데 왜 지금은 저렇게 어렵게 사는지 대답해 봐라.”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평양까지 들어가는 한 시간 남짓 동안 우리의 대화는 완전히 끊겼고 차안은 적막했다.
     
    내가 논리적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해 반박했는데, 그는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저버리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의 질문을 통해 나는 머릿속에서 한강의 기적이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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