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너무도 상대적인 시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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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과 교수

    시간과 관련된 불교 용어 중에 ‘찰나’와 ‘겁’이 있다. 조금씩 달리 각색되어 전해지는 이 낱말들의 본디 뜻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저마다 다르게 흐르는 시간
    우리는 어떤 모양과 색채로
    빚어져 미래에 남게 될까

    ‘찰나(刹那)’는 산스크리트어로 순간(瞬間)을 의미하는 ‘크샤나’의 음역으로 1찰나가 75분의 1초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눈 깜짝할 새’가 더 실감 나고 애교스럽다. 반면 ‘겁(劫)’ 또한 산스크리트어의 ‘겁파’에서 음사된 것으로,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겨자씨’ 혹은 ‘바위’의 비유가 동원된다. 한 예로 1겁은 대략 ‘잠자리 날개보다 얇은 천으로 둘레가 사십 리 되는 바위를 3년에 한 번씩 스쳐서 그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이라고 하니, ‘억겁(億劫)’ 혹은 ‘영겁(永劫)’은 영원히 지속되는 겁의 시간, 그 무한함을 말한다.
     
    어릴 적에는 시간의 흐름이 더디기만 했다. ‘언제 빨리 커서 어른이 될까?’ 학교에 다니는 시간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기만 한데, 하루, 한 주일, 한 달을 지내고 한 해를 보내며 졸업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육십갑자 한 바퀴 돌아 맞이한다는 환갑의 나이가 되니, “시간은 10대에게 시속 10킬로, 20대에는 20킬로, 그렇게 60대가 되면 60킬로의 속도로 느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릴 적 질척대기만 하던 시간의 흐름을 어느덧 ‘쏜살같은’ 세월의 속도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든 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다만 ‘특수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도 언급했듯이, 그 흐름을 느끼는 것은 각자에게, 그것도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그 시간을 지내느냐에 따라서 모두 다르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멈춰버린 듯 지루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빨라서 아쉽기만 하다. 오래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약방 감초처럼 자리 잡은 교통정보와 함께 흘러나오던 이야기가 지금까지 기억 속에 맴돌고 있다. 맛집 단골 메뉴처럼 교통상황을 알리던 가운데, ‘꽉 막힌 도로를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묻는 퀴즈 아닌 퀴즈에서 건진 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었다.
     
    시간은 절대적이지만, 시간을 느끼는 것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데, ‘일각이 여삼추’란 말처럼 애간장 태우며 기다리는 마음과는 달리, 이것저것 따져볼 겨를도 없이 ‘쏜살같이’ 지난 한 해를 보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은 금쪽같이 귀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만병통치약도 되었다가, 허투루 쓰는 낭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 시간을 쪼개기도 하고, 급기야는 죽여 버리기(killing time)까지 한다.
     
    우리의 삶은 선과 면, 부피를 가지는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을 더한 4차원에서 펼쳐진다. 거기에는 아무런 느낌도 실체도 없는 시간에 은유를 더하여 흐르는 것으로 물질화시키고, 과거와 미래로 이어지는 수평적 선형구조로 공간화시켰다. 그렇게 시간 속에 공간이 재편되고, 그 공간 속에 시간이 각인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시간을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흐르도록 도식화했을까? 무심하게 그어진 선 위에 아무 곳에나 점 하나를 찍고 ‘지금’이라고 하면, 그 왼편 어딘가에는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로부터 비롯되어 지나온 시간들이 있고, 오른편 저쪽으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담아,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를 미지로 남겨놓는다. 이제 그 왼쪽은 경험과 기억의 잔재들로 빚어진 과거가 되고, 오른편은 현재라는 순간 속에서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될 미래로 이어지는데, 그 한 점은 순간 과거이며 현재이고 또 동시에 미래가 된다.
     
    하나의 선은 무수한 점들의 연결이라 했다. 그렇게 수많은 ‘찰나’의 점들이 엮여 ‘겁’으로 이어지는데, 그 점들 하나하나에 ‘지금’의 흔적들이 남겨진다. 매 순간으로 ‘점철되는 시간’ 속에서 지금의 순간이 곧 과거로 물리게 되는, 그래서 오로지 미래를 향한 한 방향으로만 허락된 이 시공간에 우리는 어떤 모양, 어떤 색채로 우리의 모습들을 빚어가고 있을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 있는 시간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결코 똑같지 않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공평하게, 한 번은 태어나고 한 번은 죽게 되는 궤도에 올라있다. 어떤 이는 ‘시간을 도둑맞았다’고 하는데, 시간도둑 조차도 그 궤도를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다만 시간은 너무도 엄격하게 ‘지금’ 그 한 점의 왼편을 함부로 지울 수도, 고쳐 쓰기, 새로 쓰기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단 한 순간, 한 틈새도 되돌아갈 수 없는 선으로 그어진다는 것.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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