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제주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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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2018년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제주인들은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를 외쳤다. 민주화 이후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살려낸 4·3의 대한민국 본령으로의 당당한 포함을 말한다. 폭력투쟁을 통한 이념의 추구는 국가에 의해 당연히 평정되어야 하나,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절대 허용되어선 안된다.
     

    화해와 상생, 정의와 회복의 모범
    20세기 인류비극의 21세기 해법
    대한민국의 원천지혜요 원천기술
    4·3회복지표, 전세계와 공유해야

    제주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된 올해 나는 위의 말을 “제주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로 바꾼다. 다른 인간비극과 비교할 때 제주4·3은 치유와 회복에서 가장 앞선 성취를 보여준다. 진실규명, 명예회복, 입법적 합의, 사법적 구제. 국가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회복적 정의, 공동체 복원과 치유, 용서와 화해, 상생과 공존, 추념과 교육… 거의 모든 면에서 제주4·3은 20세기 인류비극에 대해 21세기 인류가 도달한 최선의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진보-보수의 대화와 타협에 관한 한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김대중 정부 당시 4·3특별법(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은 보수정당 한나라당의 발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당시 4·3희생자들에 대한 포용은 한국전쟁 참전자들에 대한 최초의 참전수당 지급(참전군인 등 지원에 관한 법률·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과 함께였다. 참전수당 지급은 외환위기를 겪던 김대중 정부로서는 하나의 경이였다. 진보정부의 보수 포용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제주4·3사건진상 조사 보고서’의 채택 역시 진보-보수 합의의 산물이었다. 고건 총리는 초안 완성 이후 격론이 벌어지자 정부 기관과 관련 단체들에게 충분한 이의제기 시간을 주었고, 마침내 최종 합의에 도달하였다. 지금껏 제주4·3은 정부가 공식 조사보고서를 채택한 유일한 과거사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는 4·3평화공원을 개원하였고, 박근혜 정부는 4·3희생자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보수정부의 4·3 공식추념일 제정이었다. 7·27 ‘유엔군 참전의 날’ 제정과 함께였다.
     
    4·3특별법 전부 개정을 통해 배·보상, 특별재심, 추가 진상조사의 길을 연 문재인 정부는 또한 ‘유엔참전용사의 명예선양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 한국전에 참전한 맹방들에 대한 국제보훈·국제연대와 함께 간다. 게다가 이번 특별법 전부개정안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통합 조정한 산물이었다.
     
    제주 현지에서는 도의회와 함께 보수의 원희룡 도지사는 4월 3일을 유일한 지방공휴일로 지정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당 진보인사를 제주시장에, 4·3유족회장을 서귀포시장에 임명한다. 모범적인 포용이자 협치였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최고 갈등국가의 하나이다. 진보 민주와 보수 민주의 진영투쟁으로 공준(公準)과 공정은 실종되었다. 우리 안의 한 예외사례를 통해 이 끔찍한 진영 수렁을 넘어보자. 민주화 이후 제주4·3의 극복과정은 한국문화의 정수를 오롯이 보여준다. 일찍이 조지훈이 꿰뚫었듯 한국정신의 근본은 “모든 대립된 것을 한 솥에 넣고 끓여서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창출해내는 절충과 융섭”이다. 4·3회복과정이 딱 그렇다.
     
    이제 4·3의 치유와 회복의 도정을 보편적 국제지표로 만들어 세계와 공유할 때다. 그것은 20세기 인류비극에 대한 21세기 인류지혜의 대표모델이 될 것이다. 4·3의 치유와 회복과정은 반도체·원전·스마트폰·자동차·조선산업과 함께 대한민국의 빛나는 원천지혜이자 원천기술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슬픔이 자아낸 가장 큰 지혜다. 시작은 마을과 제주로부터였다. 현장이 뿜어내는 영혼의 화해였다. 그것이 나라의 발전과 민주화를 만나면서 발화한 것이다. 가공할 학살현장 하귀를 보자. 고향마을 이름 복원과 화해의 제단 영모원 건립을 위한 여러 권의 두꺼운 일지들은 궁극의 화해를 위한 인간의 간구가 얼마나 고결하고 절실한지를 증거한다.
     
    전율할 감동이 온 몸을 감싼다. 일지 읽기를 잠시 덮을 만큼 아린 부분도 있다. 이해와 화해를 위한 회의와 대화는 두텁고 깊었다. 고창선과 배광시를 포함한 해원과 상생의 선각들 앞에 머리를 숙이는 까닭이다. 모두가 넉넉치 않은 시절이었음에도 영모원 건립을 위한 자발적 추렴 액수는 거듭 놀라게 된다. 마을과 공동체의 일이라면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제주 정신의 발현이리라.
     
    인간은 타인의 주장과 고난에 공감할 줄 알아야한다. 부모·자녀·형제자매의 하나뿐인 생명을 잃고도 끝내 용서와 화해를 이뤄내는데, 그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권력과 물질을 놓고 못할 이유가 없다. 인류의 한 최고 철학자는, 학살의 터전 위에 화해의 성전을 세우리라고 잠언한다. 절대적 비극을 체험한 자들이 갖는 절대적 깨달음 때문이다. 제주는 그 분명한 증거다. 절대적 인류비극의 또 다른 현장인 전체 한국인들은 언제 깨달을 것인가.
     
    인류는 여전히 폭력과 학살의 유산으로 고통받고 있다. 제주의 성취를 나비의 날개짓 삼아 온 누리가 평안과 안녕을 되찾길 소망한다. 4월 3일 비가 그친 제주 4·3평화공원 위로 영롱한 무지개가 떠올랐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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