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수의 시선] 황제 조사, 공수처장의 치명적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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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욱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지난달 16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지난달 16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황제 조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황제라는 수식어는 힘세고 인기 많고 ‘빽’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타적 특혜를 지적할 때 쓰인다. 2010년 ‘황제 노역’ 파문이 전국을 강타했다. 조세 포탈 혐의로 기소된 대주그룹 회장 허재호 씨가 254억 원의 벌금을 내지 못하자 법원이 환형 유치 노역 판결을 내렸다. 하루 일당이 5억 원으로 계산됐다. 국민이 공분했다. 대법원에서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역시 벌금 200억 원을 못 내면 추가 3년간 노역장에 유치될 수 있다. 바뀐 법에 따라 일당으로 환산하면 약 1826만 원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2015년) 때는 ‘황제 특강’ 의혹이, 방송인 김제동씨의 지자체 강연과 관련해선 ‘황제 강연료’ 논란(2019년)이 불거졌다. 이번엔 황제 조사라고? 그렇다. 수사 기관이 거물급 범죄 피의자를 황제처럼 극진히 우대하고 봐 주며 조사하는 걸 말한다.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수사가 특혜로 변질해 불공정해졌다는 뜻이다.  

    일요일 대낮 이성윤 특혜 조사
    다른 피의자라도 똑같이 했겠나
    성역없는 공정 수사만이 살 길

     일요일인 지난달 7일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 주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른바 ‘황제’ 피의자(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가 공사장 인근의 한산한 골목길에 도착한 뒤 서류 가방을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공수처장 관용차로 갈아타고 공수처 청사로 들어갔다. 피의자에게 기관장 관용차를 제공하는 건 극히 드물다. 공수처 뒷문을 통해 들어갔다고 하니 출입 자체를 쉬쉬했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더니 요샌 새가 하던 낮말 듣기를 폐쇄회로(CC)TV가 실시간 녹화로 대신하는 모양이다. 휴일 백주 대낮, 이성윤 지검장의 은밀한 출두와 퇴각 장면이 CCTV 3대에 고스란히 찍혀 공개됐으니 말이다. 김 처장은 “사안이 중대해 보안상 불가피했다”고 해명했지만 국민들은 공수처가 향후 다른 고위층 수사때도 이런 황제 조사 행각을 습관처럼 되풀이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 아닌 하늘의 용족(族)인 경우에만 특화해서.  
     수상한 점은 더 있다. 공수처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청사 5동 342호에서 1시간 넘게 비공개로 만나 대화했지만 공식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만남의 성격에 대해 공수처는 “기초 조사”라고 했다. 이 지검장이 “내 사건은 공수처 관할”이라며 이첩을 줄기차게 요구하자 수원지검이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한 게 지난달 3일. 공수처는 같은 달 12일 “수사 인력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로 재이첩했다. 시기적으로 7일 기초 조사를 한뒤 공수처 이첩을 결정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이 지검장을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 영상녹화실이 있는데도 CCTV가 없는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말을 나눴길래? 이러니 수사를 잘 모르는 판사 출신 ‘어쩌다 공수처장’의 치명적 일탈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한때 김 처장은 법무부 인권국장직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한 면접위원이 지원 이유를 묻자 김 처장이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고 답해 적이 실망했었다고 한다. 사명감이나 소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결국 인권국장에 황희석씨가 선임됐다. 
    특히 이성윤 지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데다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실세다. 동시에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및 수사무마 외압’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지위가 높을수록 수사는 엄정해야 한다. 김 처장 말마따나 수사는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하지만 김 처장이 검찰에 이첩한 이 지검장 수사보고서에는 방문 일시, 장소, 면담자 외 조서 등 기록은 없었다. 조사인지, 면담인지도 아리송하다. 
    김 처장은 허위 수사보고서 작성 혐의로 고발돼 수사받는 신세다. 그는 석달전 취임식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고위공직자 비리의 성역 없는 수사를 역설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진용을 갖추기도 전에 공정성 시비에 발목을 잡혔다. 수사인지, 휴식인지 분간이 잘 안 갔던 박근혜 정부 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팔짱 조사, 황제 조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공수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검찰을 개혁하겠다며 출범한 수사기관이다. 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 판사와 검사 등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 수사를 전담한다. 권력에 굽혀서는 설립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 김 처장은 절차에 따랐다는 앵무새 변명을 접고 초심으로 돌아가 조직을 다잡아야 한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민원 청취처가 아니다. 황제 조사처는 더더욱 아니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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