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초선의원들의 반성이 공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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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 때면 나오는 데자뷔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시 한 줄 읽고 무릎을 쳤다. 최영미 시인이 조선일보에 해설한 신동엽 시인의 유고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였다. 최 시인이 썼듯, 4월 혁명을 온몸으로 증언했던 신동엽이다. 조선일보엔 지면관계상 일부만 소개됐지만, 우리는 전문을 다 감상해보자. 4월의 시인 신동엽 아닌가. 이 좋은 계절에 이훈범 글 길게 읽는 것보다 가치가 있을 터다.
     

    보궐선거 끝나자 여야서 초선의원 반성문 잇따라
    지난 1년 의회민주주의 파괴될 때 뭐하고 있었나
    당 아닌 내가 잘못한 것부터 용서 구해야 신뢰감
    앞으로도 소신 발휘할 자신 없는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마음 조아리며/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서럽게/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쇠항아리 머리에 진 사람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1969년 쓴 시인데 조금도 퇴색하거나 줄지 않은 울림이 있다. 어쩌면 세월의 더께에도 배우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고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머리에 쇠항아리를 지고 먹구름만 바라보며 하늘을 봤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여전하니 말이다.
     
    보궐선거가 끝나자 여야에서 초선의원들의 성명이 잇따라 나왔다. 이긴 쪽은 감사와 함께 자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진 쪽은 반성과 함께 달라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그뿐, 감동은 없었다. 이긴 쪽에선 합당과 복당을 놓고 벌어지는 기싸움에 묻혔고, 진 쪽에선 패배 책임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항의 폭탄 세례를 받았다.
     
    우리네 정치·정당 문화에서 초선의원들의 입지가 넓지 않은 건 사실이다. 충원 과정에서부터 운명적이다. 정당들이 교육을 통한 정치 엘리트 육성 기능을 저버리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저명인사나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는 사연을 가진 인물들로 손쉽게 공천을 하는 까닭이다. 여전한 계파정치에서 초선의원이 자신을 공천해준 계파 보스의 뜻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정치 훈련이 되지 않은 탓에 스스로 좌표 설정을 하지 못하고 지도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초선의원들이 지도부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 선언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없진 않다. 하지만 행동과 함께 하지 않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국회의원이 된지 고작 1년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랑스러운 말도 아니다. 초선의원들의 지난 1년은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었을 게 분명한 까닭이다. 부끄러운 줄 몰랐다거나, 더 부끄러운 시간이 있었다면 국민의 대표로서 자격미달이니 사퇴하는 게 낫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 지난해 4월 15일 이후 지난 보궐선거 전까지 이 나라는 의회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180석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은 기업규제 3법, 임대차 3법, 부동산 3법, 공수처법 등을 마구잡이로 통과시켰다. 국회법에 규정된 소위원회 법안 심사, 축조 심사, 찬반 토론 등도 없었다. 소수야당의 최후 보루였던 법사위원장 등 17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으니 거칠 게 없었다. 상임위에 일방상정하고 표결처리를 밀어붙였다.
     
    입법독재에 무저항 편승
     
    국회 인사청문회 역시 그저 거쳐야 할 요식행위로 만들어 버렸다. 야당의 반대는 귓등으로 흘리고, 야당 동의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 정권 들어 야당 동의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가 29명에 달한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입법독재” “의회민주주의의 조종(弔鐘)” “다수결의 횡포”… 전문가들이 백 번 외쳐도 들은 척도 안했다. 윤평중 교수의 분석이 냉철하다. “정치공학적으로 여러 가지를 계산했을 텐데, 어차피 욕을 먹을 바에야 숙원 프로젝트를 다하겠다는 오판.”
     
    그는 오늘의 상황 마저 정확히 예견했었다. “이후 어떻게 상황이 진행될지 명약관화하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과거 정권이 어떻게 저물었는지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공수처 후속법이 통과됐을 때 그가 한 말이었다.
     
    윤 교수는 “나라 전체로 볼 때 암울한 시나리오”라고까지 경고했다. 그때 우리의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은 뭐했나. 귀는 꽉 막고 입은 꾹 닫은 채 그저 ‘당론’이라 포장된 지도부 지시에 순종하지 않았던가. 쇠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먹구름을 쳐다보며 맑은 하늘이라 애써 믿지 않았나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당 이름으로 반성한다고 하니, 유권자들이 비웃고 열성 지지자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유권자에겐 위선이요, 지지자들에겐 배신인 것이다. 그들은 입장문에서 “초선의원들로서 충분히 소신 있는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경청하겠다”고 썼다. 말꼬리를 잡자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경청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고 뭔가.
     
    ‘경청’이 아니라 ‘석고대죄’를 해야 했다. 당의 잘못이 아니라, 선배 의원들의 잘못이 아니라, 자기들의 잘못을 하나하나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같은 초선인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그들의 성명을 지지하면서도 “사과를 주도한 민주당 초선의원 상당수는 지난 1년 누구보다도 구태스러운 정치 행보로 진영논리에 매몰된 모습을 보였다”고 씁쓸해한 것도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1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과연 초심이란 게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행동하지 않았나 말이다. 그런데도 통렬한 자기 고백과 머리를 땅에 찧는 사과 없이 “당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고 한들 누가 믿어주겠나. 그저 가소로울 따름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유권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아온 데자뷔일 뿐이다. 2018년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참패 뒤에도 초선의원들이 나섰다. 그때도 “당 개혁이나 혁신에 초선들이 침묵하고 뒤로 빠졌던 점에 국민에 죄송하다”고 말했었다.
     
    이에 앞서 초선의원 5명이 좀 더 강경한 발언을 한 것도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이른바 ‘초선 5적’ 성명서와 유사하다. 그때 5명의 초선들은 중진의원들을 향해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와 당 일선에서 빠질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었다.
     
    당과 나는 다르다?
     
    하지만 공허하긴 마찬가지였다. 친박과 비박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름의 집안싸움으로 유권자들한테 외면받았으면서도, 초선의원 대다수가 친박 프레임으로 당선됐기에 계파 문제를 청산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러니 달라질 리가 없고 달라질 수도 없었다. 보궐선거 후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낸 성명서는 구구절절 옳았지만 들을 소리라곤 “우리 당이 잘해서 거둔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란 말밖에 없다. 이후 줄줄이 늘어놓은 각오들은 우리 당이 이렇게 형편없지만 나는 다르다는 변명과 다름 아니다. 내가 우리 당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과는 단 한줄도 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니 웃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말이다. 역시 가소로울 뿐이다.
     
    그들이 초선의원으로서 아무 것도 안 하는 동안 그들의 당은 당이 아니었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존재감 제로였다. 당 밖의 인물들이 현 정부의 폭정에 항거하는 동안 그 당은 그들을 지원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것도 혹시나 주도권을 빼앗길까 소극적 지원으로 그쳤다.
     
    보궐선거의 승리도 그들과 합쳐지기를 바라는 중도 유권자 덕이었다. 결과만 놓고 자만한다면, 또다시 쇠항아리 머리에 쓰고 먹구름 바라보려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신동엽 시인 말처럼 마음 속 구름을 닦고 쇠항아리를 찢어야 한다. 그래야 맑은 하늘이 비로소 보인다. 그래야 국민 무서운 줄(경외) 알고, 국민의 아픔(연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마찬가지다.
     
    그 작업은 지난 1년 동안 초선의원으로서 내가 해야 했을 일과 내가 못한 일을 냉정하게 짚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 그때는 조국이 문제가 안 됐는데 지금은 문제가 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때도 문제가 됐는데 말을 못한 거였다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그것부터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론 그런 문제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자신이 서지 않는다면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야당의 경우라고 다를 게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고 뭘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당론과 소신, 국익, 지역구민 의견(비례라면 대표하는 직군의 의견. 아,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중 무엇을 우선했는지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당론을 따랐거나 아무 생각 없었다면 그것부터 사과해야 옳다. 그리고 앞으로 소신이나 국익에 충실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자신이 없으면 물러나는 게 좋다. 그런 사람들에게 신동엽 시인이 또 다른 시로 명령하지 않았던가. “껍데기는 가라!”
     
    루쉰(魯迅)은 말했다. “황제와 대신들이 우민정책을 취하면 백성에게도 우군(愚君)정책이 있다.” 어리석은 지도자에 대처하는 태도인데, 전임 대통령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면 설명이 필요 없을 터다. 국회의원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 백성들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존중하지만, 그 존중의 유효기간이 꽁치 통조림만큼 길지는 않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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