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필의 미래를 묻다] 특허 넘어 영업비밀까지, 지식재산 패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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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지식재산의 미래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소송을 전격적인 합의로 마무리했다. 합의금이 무려 2조원이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의 합의금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다. 이것도 LG에너지솔루션의 당초 기대보다는 낮아진 수준이지만, 이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 LG화학에서 분사해 조만간 기업공개(IPO)를 앞둔 LG에너지솔루션이 투자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한 금액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2만3000 건이 넘는 배터리 분야 특허와 풍부한 노하우를 축적한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자사의 핵심 자산인 기술 노하우를 지켜낸 당당한 ‘승리’라 평가할 만하다.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전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과 정부의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 정책에 풍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SK·LG전, 지식재산 미래 본보기
    디자인은 물론 느낌·인상도 보호
    코카콜라병 특이한 모양이 대표적
    종합적 지식재산 전략수립 필수적

    다양해진 미래 지식재산 패권경쟁
     

    미래를 묻다 4/19

    미래를 묻다 4/19

    미래의 지식재산 패권 경쟁은 지식재산의 특정한 유형에 국한되지 않는 전면전이 될 것이다. 여전히 특허가 지식재산의 핵심이지만, 최근 글로벌 지식재산 전쟁은 다양한 유형의 지식재산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양상을 띤다. 2011년부터 7년간 진행된 애플 대 삼성 소송에서도 특허 외에 디자인과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가 애플에게 가장 유용한 법적 무기였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구글의 손을 들어 준 구글-오라클 소송의 쟁점은 자바 언어로 작성된 응용프로그램개발환경(API) 저작권이었다. 만일 구글이 오라클의 API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결론이 났더라면 손해배상액은 거의 300억 달러에 달했을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에서도 특허 분쟁은 포함되어 있었지만, 주된 쟁점은 특허 등록이 되지 않은 영업비밀 침해 여부였다.
     
    경쟁자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자신만의 비법에 대한 인식은 인류 역사의 어느 시점에나 존재했다. 하지만 영업비밀이라는 단어가 업계와 일반 대중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영업비밀을 소위 신(新)지식재산권으로 분류하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민사상 불법행위나 계약상 의무위반, 형사상 절도·사기 등 일반적인 법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영업비밀 침해 사건들을 해결할 수는 있었다.
     
    주요국, 영업비밀 보호 입법 강화
     

    지식재산권의 종류

    지식재산권의 종류

    그러나 기업이 장기간의 R&D 투자로 확보한 기술과 노하우를 보호하기에는 기존 법 제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과 일부 개발도상국 기업들의 선진국 기업 영업비밀 침해 사건이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각국이 앞다퉈 영업비밀 보호 입법을 준비하거나 강화하기 시작했다. 미국도 1996년 형사법인 ‘경제스파이법’을 연방 성문법으로 제정한 후 20년만인 2016년에 이르러 연방 차원의 성문 민사법인 영업비밀보호법을 제정했다. 그 2016년은 세계적으로 ‘영업비밀의 해’라 할만 했다. 유럽연합(EU)도 영업비밀보호법에 해당하는 ‘EU 디렉티브 2016/943’을 통과시켰고, 일본도 영업비밀 보호를 한층 강화한 개정법을 통과시킨 해였기 때문이다.
     
    지식재산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다양한 지식재산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각각의 특성에 맞는 공격과 방어 전략을 체계화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 중에도 특허 문제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다만 산업디자인과 상표·트레이드 드레스·저작권·영업비밀 등 다양한 유형의 지식재산의 종합적 분석과 전략적 활용도 또한 높여가야 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과 상당수 중소벤처기업들은 지식재산 확보와 활용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전문인력과 예산상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부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으나, 선별적인 특허출원 지원이나 일시적인 자문에 그치지 않고 지식재산의 전 주기를 포괄하는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기업의 특성을 고려해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을 포함한 종합적인 지식재산 전략수립과 포트폴리오 구축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시행되어야 한다.
     
    다가올 세상엔 기술을 포함한 무형자산 아웃소싱도 확산할 것이다. 영업비밀은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경쟁우위를 가지는 기술정보와 노하우에 대한 것이다. 닫힌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은 영업비밀은 철저히 보호하고, 기술 내용이 공개되는 특허는 경쟁사의 무효화 공격에 대응하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침해 사례를 포착해 권리 보호에 힘쓴다. 경쟁사들은 시장을 주도하는 혁신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에 대한 실시 자유(freedom-to-operate) 확보와 준법(compliance)에 힘을 기울인다. 다만 준법이나 실시 자유의 노력을 반드시 우회발명(circumvent invention)처럼 별도의 지식재산 확보 방식으로 하기보다는 과감한 협력체계 구축으로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합의도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두 기업이 전격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하게 된 셈이다. 이를 좁은 범위의 협업이라 한다면, 나아가 본격적인 열린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 특히 지식재산을 핵심으로 한 열린 혁신 방식을 실험하는 기업들도 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2014년 6월 “우리의 모든 특허는 당신 것이다(All Our Patent Are Belong To You)”라는 말과 함께 자사가 보유한 200건 이상의 전기차 배터리 특허를 무료로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의 이런 전략은 다수 업체들을 끌어들여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테슬라 스스로의 지속적인 R&D 노력과 결합하여 기술력으로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술 공개 뒤 주도권은 확보 움직임도
     
    또 다른 모습도 있다. 테슬라는 지난해 말 독일의 배터리 조립 업체인 ATW 오토메이션을 인수했다. 한편으로 열린 혁신을 추구하면서, 다시 독자적인 배터리 개발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언뜻 상반된 행보로도 보인다. 결국 기술은 공개하되 기술의 주도권은 자사가 확보하고 있겠다는 점에서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그동안 원료·소재·부품·장비의 공급과 완제품의 조립에 관한 아웃소싱 외에 제약 등 일부 산업에서의 R&D 아웃소싱이 확산하여 왔다. 앞으로는 지식재산 중심의 열린 혁신과 그에 수반하는 아웃소싱 사례들이 증가할 것이다. 가치 평가가 어렵고 거래 가격이 잘 공개되지 않는 지식재산이 자산으로서 활발히 거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열린 혁신의 활성화는 참여자들이 창출된 지식재산을 공유와 실시계약·사용 규약 등의 수단으로 공유할 때 가능한 일임은 분명하다.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미국 상표제도상 상품의 포장, 전체적인 외관, 느낌과 분위기 등을 보호하는 지식재산권.  미국 법원에서는 이를 ‘외관과 느낌(look and feel)’에 대한 보호라고 한다. 특이한 모양의 코카콜라병이 대표적 사례다.
     
    증거개시(discovery)
    미국 민사소송에서 양 당사자가 소송 관련 정보, 증거들을 상대방에게 요구해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재판의 변론 전  관련된 정보와 증거를 공유하게 해 사실관계와 쟁점을 명확하게 하려는 취지로 도입한 제도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지식재산 입법과 정책 수립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국내의 지식재산 관련 법령이 제정·개정되는 과정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이 대기업 대 중소기업 대결 프레임이다. 권리자의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창의적인 중소기업들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과 결국은 대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열린 혁신과 그에 수반하는 지식재산 아웃소싱 협력관계에서의 지식재산 패권 경쟁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대결보다는 경영철학과 사업목적을 공유하는 기업들의 협력과, 협력하는 기업들의 그룹 간에 벌어지는 지식재산 전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국내 경쟁사와의 소송을 미국 ITC에서 진행한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현했다. 왜 미국으로 가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시장 규모가 큰 곳에서 임팩트가 강한 결과를 얻어 다른 지역에서의 글로벌 분쟁을 속히 종결하려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ITC의 증거개시(discovery)와 신속한 절차 진행 등 침해 입증에 유리한 사법제도를 활용하기 위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회사 내부적인 이유가 어찌 되었든, 현재 필요한 것은 국내 기업들 사이의 분쟁마저 미국에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최근 국내 지식재산 입법과 정책은 특허 등 산업재산권 침해소송의 관할집중, 특허와 영업비밀의 고의 침해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 특허소송 국제재판부 설치, 특허침해 소송에서 자료제출명령 제도의 도입 등 권리자 보호와 소송절차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차츰 변화하고  있다. 정교한 지식재산 법체계와 사법 시스템을 보완하는 작업이므로 많은 진통과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할 일이다. 다만 신속하고 정확한 침해 여부 판단과 강한 권리자 보호를 통해 혁신적인 기업들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대 법대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지식재산권으로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와 한국저작권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현재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지식재산프로그램 책임교수와 국회 대한민국세계특허허브국가추진위원회 법개정연구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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