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윤석열은 한국의 마크롱이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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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크롱의 정치 실험과 한국 정치

    지난 2017년 5월 14일 취임식 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뉴스1]

    지난 2017년 5월 14일 취임식 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의 한 축이었던 현직 시절부터 이미 그의 이름은 차기 대선주자 명단의 상위에 올라 있었지만, JTBC·리얼미터의 지난 10∼11일 조사에서는 36.3%로 기존 1위였던 이재명 경기지사의 23.5%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한국갤럽의 지난 13~15일 조사에서는 윤석열 25%, 이재명 24%로 오차 범위 이내였다.
     

    마크롱, 진보·보수 양당제 거부하고 아웃사이더 자처하며
    유권자에 직접 호소하는 중도 포퓰리스트로 정치적 성공
    조국·추미애의 안티테제 윤석열이 마크롱의 길 가려면
    중도 시민네트워크 조직 필요…역량 있는지는 알 수 없어

    그뿐이 아니다. 인물평이 각박한 편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오래전부터 그에 대해 예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해왔다. 김 전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그 정도의 자세를 갖춘 사람은 최근 처음 봤다” “그는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지난번 프랑스 마크롱이 성공한 예가 뭐냐. 국민이 양당에 짜증을 낸 거다. 마크롱의 등장으로 두 지배 정당이 망가졌다. 윤 전 총장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가 잘 준비하면 진짜 별을 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지율은 높은 편이지만 대선이 1년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한때 4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적이 있었고, 2011년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는 무려 45% 지지율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아무도 깨뜨린 적이 없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아성을 무너뜨렸지만, 막상 이듬해 대선은 완주하지도 못했다.
     
    마크롱, 유권자 네트워크 통해 여론 청취
     
    오히려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윤 전 총장에 대한 그의 구상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주는 열쇳말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 전 위원장은 숙명적으로 한국 정치의 흐름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양당을 오가며 대통령을 만들어냈으니 판세를 가장 잘 읽을 사람이기도 하다. 게다가 독일 유학 경험 등으로 유럽 정치에도 익숙하다. 별 의미 없이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길이라는 뜻으로 마크롱을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39세의 마크롱은 혜성과 같이 나타나 단숨에 정권을 움켜쥐었다. 프랑스 5공화국 이후 오랫동안 정치를 양분해온 공화당·사회당 양당 체제와 그로 인한 부패와 무능에 국민은 염증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양당을 제외하면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이 남는데, 그의 극우 포퓰리즘은 양식을 가진 유권자라면 차마 선택하기 어려운 대안이었다.
     
    원래 사회당원이었던 마크롱은 사회당 경선에는 아예 출마하지도 않았고 대신 ‘앙 마르셰(En Marche, 전진)’라고 이름 붙인 유권자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4000명의 자원봉사자가 10만 명의 시민 집을 방문해 그들의 정치적 요구사항을 조사했고, 이것을 200명의 전문가가 분석해서 마크롱에게 제공했다.
     
    마크롱은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다.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좌우의 스펙트럼 위에 놓이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마크롱은 “더는 시민들을 대표하지 않고 자기 자신들만을 대표하는 오래된 기득권 체제”를 거부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정치 신인으로 각인됐다. 그 결과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서 상위 득표자 2인을 대상으로 치러진 2차 투표에서 마리 르펜을 가볍게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엘리트 코스 밟은 마크롱
     

    윤석열

    윤석열

    마크롱은 정말로 아웃사이더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프랑스 최고의 행정 엘리트 사관학교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부터 이미 현직에 진출한 선배들과 1:1 멘토 관계를 주선해주고,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선후배 간의 관계는 대표적 기득권층인 ENA 졸업생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공직 경력 내내 프랑스 행정부의 핵심에 있다가 상당수는 하원의원 등 정치권으로 진출한다. 게다가 마크롱은 프랑스 정치 엘리트의 등용문인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도 졸업했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다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그는 ENA 출신들이 진출하는 정부 부서 중에서도 핵심 부서인 금융 관련 부서를 거쳐 세계적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에 근무했다. 로스차일드는 오랜 역사는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의 귀족,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한 영국 왕실의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로서의 명성 또한 대단하다. 2012년 올랑드 정부 출범 이후 그는 다시 공직으로 돌아와서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을 지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아웃사이더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양당제에 대한 염증이라는 정치적 환경 속에서 자신을 여기에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로 규정하는 데 성공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면서 내부자가 아니라면 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의 연설이 말해준다. “나와 나의 당은 진정한 포퓰리스트이다. 우리는 매일 같이 국민과 함께 있다.” 그렇다. 그는 기존 정치 체제를 생략해버리고 유권자에게 직접 호소하는 엘리트 포퓰리스트이다.
     
    국민은 거대 양당에 염증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윤 전 총장은 한국의 마크롱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한 첫째 조건은 국민이 거대 양당에 염증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은 어느 정도 충족되는 것 같다. 국민의 힘은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의 원죄에서 아직도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고, 이번 보궐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도 무척 많은 것이 틀림없다. 문재인 정부의 패착 중 하나는 4년 내내 적폐 청산만 외치고 극렬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탈이념의 언어를 모두 빼앗겼다는 것이다. 이제 중도는 더는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는다. 그러니 양당 체제에 대한 염증이라는 조건은 어느 정도 충족된다.
     
    두 번째 조건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중도 포퓰리스트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은 극좌나 극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도 포퓰리즘, 즉 극중(極中) 포퓰리즘도 있다. 국내에서는 2017년 안철수 의원이 극중주의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전례가 있다. 중도 포퓰리즘이 가능한 배후에는 이념과 철학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중시하는 능력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엘리트 중 엘리트인 마크롱이 진보·보수 스펙트럼에서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자리매김하고 동시에 오직 인사이더에게만 가능한 화려한 테크노크라트 경력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던 이유이다. 안철수 의원이 극중주의를 잠시나마 표방할 수 있었던 것도 정치 입문 이전에 전문가로서 그가 보여주었던 뛰어난 역량이라는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최고 권력기관의 수장이 되었다. 엘리트의 조건으로는 마크롱 못지않다.
     
    혼자 제3지대 있으면 몰락 위험
     
    그에게 한국의 마크롱이 되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모두 배제하고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엘리트 중도 포퓰리스트가 되라는 요구이다. 양당 체제는 개헌 없이는 고쳐지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포퓰리스트가 되어 개헌 없는 개헌을 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의 입당을 요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제3지대에서 성공한 전례가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 당이 대선 후보를 외부에서 영입해온 전례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순간 그는 다른 외부 영입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험난한 당내 정치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인 윤석열은 문재인-조국-추미애의 안티테제이다. 레임덕이 깊어질수록 안티테제의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고, 만약 친문이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안티의 대상이 사라진다. 만약 그가 과감한 정치적 도전을 하기를 선택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마크롱의 ‘앙 마르셰’ 같은 중도주의 시민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나아가 기존 정당의 지지층과 의원 일부를 영입하는 것이다.
     
    그가 이런 역량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혼자 제3지대에 남아 있는다면 그냥 예전에도 있었던 정치 낭인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선택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정중동의 시간이 그리 길게 주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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