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소통카페] 강도 높은 메시지가 설득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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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기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명예교수

    인간의 독특함은 말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말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말 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하며, 희망에 부풀기도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말이 개인과 나라에 난국을 초래하고 타개한 사례는 허다하다. 말을 잘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여당, 진정 국민 생각한다면
    진영논리 폭력적 언어 쓰는
    극단론자 말 용인해선 안돼

    말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말하는 이유·목적·계획을 고려하는 정교한 인지적 과정을 거쳐서 표출되는 지적 행위다. 주디 버군(Judee Burgoon)이라는 학자는 ‘기대와 위반’으로 소통행위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상대로부터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기대하며, 만약 기대를 위반하는 행위가 발생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상되는 기대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위반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관계와 관계의 질도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달라진다. 기대는 상황, 문화, 말하는 사람, 말의 내용에 따라 형성되는데, 요약하면 ‘상식에 맞는 적절한 행위’를 의미한다.
     
    지난 16일 선출된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경선 과정과 당선 이후에 한 말들은 상식적인 기대를 위반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국회 상임위의 재배분 협상은 없다”는 그의 말은 국회의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있는 현실을 유지하겠다는 무리이고, 인간의 귀중한 자산인 대화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7일 서울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를 무시하는 말이다. 또한 “국민의 뜻을 받들어 검수완박(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과 언론개혁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는 말도 했는데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변화하겠다”던 다짐을 뒤엎는 것이어서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말이 목표하는 설득력은 그리스시대 이래 수사학이라는 학문을 형성하게 할 만큼 중요한 요소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하는 서양 철학사의 거인들은 개인과 당파적 이익보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공동체의 공공선을 구하는 것을 설득의 본질로 보았다. 이 점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말도 동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 소피스트(궤변론자)들을 압도하고 공감을 얻은 이유다.
     

    소통카페 4/26

    소통카페 4/26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는 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여당의 초선 의원과 일부 의원들이 선거결과를 자성하면서, 나라의 운영 기조와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초선의원 5명은 ‘조국사태에 자생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자괴감’을 지뢰밭을 걷듯 조심스럽게 반성문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비유하는 ‘배신 오적’과 같은 막말 폭력에 난타당했다. 여당 중진의원들도 친문 강성 당원들의 언어 공격과 억지를 ‘그것도 당심이고 민심’이라며 감싸니 ‘반성문을 반성한다’는 희한한 촌극을 벌이며 반성은 소멸되었다.
     
    작년 4월 15일 국회의원 총선의 결과는 여당의 압승, 야당의 참패였다. 그 결과로 여당은 180 의석으로 하고 싶은 대로 법을 만들고, 정부는 정책을 펼치고 인사를 처리했다. 그게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했다. 총선이 있은 지 일 년 뒤인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는 야당이 압승을 했다. 여야 후보자의 득표수, 득표율, 득표의 차이는 역대 급으로 여당의 참패였다. 이 결과도 정부와 여당이 받들어야 할 국민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정치인들은 강성 일변도 말이 설득력을 높일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과학적 방법을 활용한 설득 연구는 너무 강한 메시지는 설득 효과가 높지 않다는 점을 발견해 왔다. 강도(intensity) 높은 메시지가 조장하는 불쾌감, 위협, 공포심이 오히려 설득을 방해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생각이 맑으면 말도 맑고, 생각이 야비하면 말도 야비하고 거칠며, 말이 인품이고, 말이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진정 국민을 생각한다면 진영논리의 진흙탕으로 몰고 가는 폭력적 언어를 입에 달고 사는 극단론자들의 말을 용인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나라를 운영하는 여당은 ‘과거부정 프레임’에서 벗어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말과 콘텐트로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기대감을 가지게 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기대를 위반하는 정치 모리배를 심판하려고 선거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음을 상기한다.
     
    김정기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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