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김정은 인간개조론의 예비타당성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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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정은은 지난 4월 초에 열린 당세포비서대회에서 집권 이래 처음으로 인간개조론까지 꺼내 들었다. 노동당 최말단조직의 책임자들이 모인 대회에서 그는 인간개조 사업을 적극 벌여야 한다며 ‘수백만 당원이 한 사람씩 맡아 교양 개조하면 모든 사회 성원들을 사회와 집단을 위해 몸 바쳐 일하는 성실한 근로자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심각한 경제난을 인정한 8차 당대회 이후 여러 회의에서 사상 무장과 반(反)부패 투쟁을 강조해온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정은이 꺼내든 인간개조 사업
    체제 위기 막으려는 절박한 시도
    제재의 칼을 막으려는 종이 방패
    주민 의식 변화로 성공할 수 없어

    그러나 실증적, 역사적으로 인간개조 사업의 예비타당성을 조사하면 그 결과가 재앙에 이르지 않으면 다행이다. 김정은이 지적한 대로 비(非)사회주의 풍조는 북한에 널리 퍼져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김정은 통치 기간에 탈북한 1천명 이상의 주민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서 살 때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더 지지했다는 응답자는 15%밖에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이나 가족보다 집단을 더 우선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5%에 불과하고, 뇌물을 주지 않고 살았다는 탈북민도 15%에 그친다. 주민 85%가 비(非)사회주의자인 셈이어서 북한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사회주의 이념은 껍데기만 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 교육도 효과가 없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정민·최승주 교수와 필자, 컬럼비아대의 이석배 교수가 수집한 탈북민 자료에 따르면, 생활총화는 주민의 가치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사상개조 사업을 담당하는 노동당원이 자본주의를 더 지지하기도 한다. 김정은의 인간개조론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또 정권이 사상 무장을 강조할수록 주민 불만은 증가한다. 사상 교양 사업에 대해 주민의 60%가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주민은 10%에 불과하다. 사상 교육을 아무리 많이 해도 주민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만이 증가하고, 당원이 더 자본주의를 지지한다면 김정은식 인간개조론의 운명은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사회주의라는 역사 실험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린다. 인간의 이기심은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에선 자연히 사라진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소련 경제를 처음부터 대혼란으로 내몰았다. 이기심이 없어졌다고 믿고 경제정책을 편 결과,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3년 만에 산업생산은 1913년 대비 80%나 감소했다. 이 학습 결과 소련은 1930년대부터 사회주의 인간개조론을 실제로는 버렸다. 변한다던 인간 본성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이를 선전선동, 감시와 처벌로 억누르려 했을 뿐이다. 1980년대에 출판된 ‘호모 소비에티쿠스(소련형 인간)’란 소설은 사회주의가 이타심이 아니라 더 저열한 형태의 이기심 추구를 자극했다며 풍자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소련이 40년 전에 버린 사회주의 인간개조론을 주워들고 문화대혁명을 벌였다. 고(故) 리영희 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많은 중국인이 사회주의 낙원 건설이란 일념으로 잠자는 시간마저 줄이려고 들판에서 잠을 잤다며 문화대혁명이 인간개조에 성공한 듯 찬양했다. 그러나 그는 무수한 죽음과 부당한 폭력, 강제 이주를 초래한 소위 ‘혁명’의 잔인성을 보지 못했다. 그의 저작은 ‘뒤집어 보기’엔 성공했으나 ‘바로보기’엔 실패했다. 결국 중국도 인간개조론을 버리고 1978년부터 개혁·개방에 나섰다.
     
    소련이 80년 전, 중국이 40년 전에 포기한 사회주의 인간개조론을 김정은이 지금 들고 나왔다는 사실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암시다. 인간개조는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벼랑으로 내몰리자 주민의 불만이 정권으로 향하지 않도록 차단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는 상황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시장 활동을 통해 생계를 꾸리는 다수 주민은 사상 교육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것을 싫어한다. 관료에게 뇌물을 주어서라도 빠지려 한다. 이는 김정은이 강조하는 부패와의 투쟁에 역행한다. 주민과 관료가 부패를 고리로 유착이 되면 김정은의 통제력은 더욱 약화한다. 그가 두는 수는 이처럼 무리수, 자충수다.
     
    제재라는 칼을 막기 위해 김정은이 내놓은 인간개조론은 종이로 만든 방패에 불과하다. 그는 당원의 솔선과 충성을 부르짖지만 이미 그들은 시장에 마음을 빼앗겼다. 소련 프로파간다의 선봉에 섰던 공산당 기관지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는 소련 붕괴 직후 그 이름을 ‘스바보드느예 므이슬(자유사상)’로 재빨리 바꾸었다. 구소련·동유럽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에 가장 잘 적응한 사람 중에는 과거 공산당원이 많았다. 사회주의 내부를 잘 알수록 더 환멸을 느끼고 그 종말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버티기’에 속아서 비핵화를 포기해선 안된다. 인간개조론까지 나온 것은 진실의 순간에 북한이 더 가까워졌음을 암시한다. 자력갱생과 인간개조는 실패할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중국 바라보기’도 효과가 없어야 비핵화의 길이 열린다. 이 길만이 남북 주민 모두를 상생과 평화로 이끌 수 있다. 지금은 비핵화를 우회할 때가 아니며 단념할 때는 더욱 아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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