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수험생활의 연속입니다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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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생활은 수험생활의 연속이더군요. 고난이 심해도 언제쯤 끝나는지 알면 견딜 수 있을 텐데 끝이 없겠다 싶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훌륭한 아이, 다시 그 아이의 성적, 학교, 직장… 이렇게 대를 이어가죠.

    선무영 ㅣ 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두번의 변호사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시험 보기 전 이미 청산에 살어리랏다 마음 비우고서도 이렇게 슬픕니다. 응원해주셨는데 이겨내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배고플 때, 졸릴 때, 아플 때, 똥이 마려울 때도 꾹 참고 책상 앞에 앉아서 한 자라도 더 보면 성적은 올라가죠. 그렇게 입시마다 잘해왔는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공부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살겠다 마음을 먹으니, 더는 변호사라는 직함에 연연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어머니, 저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래요.
    작년 6월 모의시험을 칠 적만 해도 토악질이 날 때까지 공부했습니다. 모의시험 성적을 받기 전날에 잠이 안 와서 눈을 감고 잘하지도 않던 기도를 드렸어요. 널리 사람에게 이로운 변호사가 되겠으니 꼭 기회를 달라고. 그때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변호사이냐’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고선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시험날까지도 부끄럽지만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변호사라는 직책이 갖고 싶은 거지, 꼭 변호사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은 건 아니더라고요. 그럼에도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한숨 푹푹 쉬며 반년을 더 공부했습니다. 마음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어요. ‘영혼이야 회복되겠지’ 하며 일단 변호사 자격이 갖고 싶었습니다. 이윽고 시험등록 기간에 전화했죠. 시험 치르기보다 내 인생 챙기는 게 더 먼저인 것 같다고, 마음이 섰으니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고요. 그래서 시험등록조차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맘대로 해!” 하고 끊으셨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셨던 건지, 5분쯤 뒤 다시 전화하셔서 ‘인생을 살다 보니 마음처럼 흘러가는 일이 하나도 없지만(특히 자식 일이 그렇다고요), 중간에 그만두는 일은 두고두고 후회되더라고, 마음 정리한다 생각하고 시험까지만 잘 치러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벌써 정리가 다 된 줄 알았는데도 속이 쓰려요. 그건 아마도 오래 도시에서 살며 스며든 경쟁심 때문이겠죠.
    도시라는 좁은 곳에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꼬리표에 눈이 갔어요. 어디에 살고 어떤 차를 몰고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시험이 하나 끝날 때마다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면 금세 또 다른 모양의 수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도시생활은 수험생활의 연속이더군요. 고난이 심해도, 이게 언제쯤 끝나는지 알면 견딜 수 있을 텐데 끝이 없겠다 싶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훌륭한 아이, 다시 그 아이의 성적, 학교, 직장… 이렇게 대를 이어가죠.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니 아내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죠, 우리 괴산에 가 살자고.
    로스쿨에 가기 전에도 진지하게 말씀드린 적 있죠. 시골에서 살겠다고. 그때 어머니는 젊은이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 뒤에 시골로 와도 늦지 않다며 말리셨습니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남아 있었기에 수긍했습니다. 이제 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젊은이로서 이름을 날리고 싶은 마음 여전합니다. 한번뿐인 삶이라죠. 대차게 살고 싶은데, 도시에서의 삶은 너무 비싸요. 하고 싶은 일을 꾸리기엔 위험부담이 큽니다. 괴산에서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 이도향촌의 시작점이 되고 싶습니다. 변호사라는 직함이 있으면 더 흥겹게 내려갔겠지만 달라질 건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어요. 다들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데 혹시 도시에서 살기 때문은 아닐까요. 노력이 없는 안락한 삶은 관심사가 아닙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속 끓이며 밭을 일구는지 알아요. 아로니아를 기르신다고 했을 때 농사는 무슨 농사인가, 괜히 찾는 사람도 없는데 피곤한 일 만드시는 걸까 봐 걱정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장터에도 나가시고 마을 축제 때마다 부스 얻어 아로니아 냉차, 와인 파시는 것 도우면서 재밌었어요.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어디서 누구에게 팔지, 농사라는 게 하기 나름이더라고요. 아버지도 항상 제가 이렇게 저렇게 해보시면 어떻겠냐 말씀드리면 ‘그런 거 귀찮으니, 할 거면 네가 내려와서 해라’ 하시잖아요. 이제 더 거칠 게 없으니, 내려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랑 시골에 가서 할 수 있는 게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잘못된 걸까요. 시골은 넓습니다. 무엇을 할지는 오롯이 농부에게 달린 일 아닙니까. 풀 뽑는 일부터 하나 쉬운 게 없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그 일은 식구들이랑 같이 하는 일이잖아요. 도시에서 돈벌이한다는 건 철저히 각자 일을 하는 거니까요. 어차피 힘든 돈벌이라면 좀 적게 벌어도 식구들이랑 같이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고 싶어요. 어머니도 10년 전 귀농하셨잖아요? 어머니, 저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래요.

    ※편집자 주: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과 10년차 농부인 여성이 ‘귀농’을 주제로 편지를 교환합니다. 한칼 공모를 통해 선발된 두 모자(母子)가 이야기 나눌 귀농의 꿈, 귀농의 어려움은 이 도시의 꿈, 그 도시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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