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미래를 묻다] 전국 도서관에 실험실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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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대중화의 미래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중계동 주민 박영희씨와 하계동 주민 김철수씨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모여 초파리와 선충을 대상으로 실험한다. 이들의 목표는 인간의 짝짓기 행동을 이해하는 것. 연구팀엔 두 사람만 있는게 아니다. 열 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시민 선충연구단은 매일 돌아간다. 단지 사람들만 바뀔 뿐. 연구원은 각자 생업이 있다. 그리고 가정을 꾸리고 있다. 연구원이란 이들에게는 (요즘말로) 부캐다.
     

    시민·과학자 만나야 과학 대중화
    도서관엔 열람실 등 여유공간 많아
    전국 1134개 공공도서관 활용해야
    과학자 400명 고용 효과도 올려

    박 씨는 ‘부모가 먼저 배우는 과학’이라는 프로그램에 이끌려 과학관에 왔다.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다. 하지만 목적이 금세 바뀌었다. 요즘 과학이 궁금해진 것이다. 김 씨는 힘든 육아휴직 동안에 단 두 시간을 자신에게 바치기로 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프로그램은 ‘자연을 담은 생태화 그리기’. 오로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시작했는데 어느새 현대생명과학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박 씨와 김 씨는 1년 과정의 ‘모두를 위한 분자생물학’ 강좌를 수강했다. 시민을 위한 강좌지만 대학교 전공과정과 똑같이 배웠다. 그리고 DNA-PCR 워크숍에 참여했다. 박테리아와 포유류에서 DNA를 추출하여 정제하고 복제하여 증폭시키고 시퀀싱 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워크숍이 끝날 무렵 누군가가 제안했다. 테크닉을 배웠으니 이제 우리가 직접 과학 연구를 하자고 말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탐구관에서 어린이들이 정전기 실험을 직접 해보고 있다. 최준호 기자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탐구관에서 어린이들이 정전기 실험을 직접 해보고 있다. 최준호 기자

    그럴싸한 ‘과학 대중화의 미래’처럼 보이는가. 아니다. 이미 코로나19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서울시립과학관이라는 장소와 과학교육을 전공한 유정숙 박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명의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과학 대중화의 미래는 일찌감치 시작된 셈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과학은 이렇게 어려운가?” 과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학이 원래 어렵기 때문이다. 설마 과학만 어려울까. 모든 학문이 다 어렵다. 하지만 유독 과학만 어렵다고 느껴지는 데는 까닭이 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은 수학이라고 하는 비자연어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가 이해되지 않으니 과학이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평생 배운 영어로도 대화를 못 하는데, 잠깐 배우다만 수학이 쉬울 리가 없다. 당연히 과학이 어려울 수밖에.
     
    사람들은 또 묻는다. “어릴 때는 과학을 좋아하던 아이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과학과 멀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세계의 모든 아이들은 공룡과 별이라는 두 개의 관문을 통해 과학의 세계로 들어왔다. 거대하고 괴상하게 생겼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공룡은 매력적이다. 아이들은 공룡 이름을 열심히 암기하고 공룡에 대한 지식을 서로 뽐낸다. 별자리를 찾고 별자리에 얽힌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매력이다. 하지만 아홉 살이 되면 공룡과 별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고 열세 살이 되면 이별한다. 공룡과 별에 빠져 암기하고 자랑하는 데만 바빴지 정작 새로운 질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 앞에는 수학이라는 다음 관문이 놓여 있다.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은 관문이다. 들어갈 이유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질문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기껏 통과한 문을 되돌아 나간다.
     
    이 단계에서 과학자들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과학을 쉽고 재밌게 만들 수 있는가.” 시민의 요구도 있었다. “어떻게 좀 과학을 쉽고 재밌게 만들어 보쇼!” 이때 나온 답이 ‘과학의 대중화’다. 과학을 쉽게 설명하자는 거다. 그런데 원래 어렵고 재미없는 걸 어떻게 쉽고 재밌게 설명하겠는가! 그래도 요구가 있으니 시도해 봤다. 큰딸이 과학강연에 다녀왔다. “아빠, 오늘 아르키메데스의 부력의 원리에 대해 배웠어요. 아르키메데스라는 과학자가 살았어요. 어느 날 금관을 새로 맞춘 왕이 아르키메데스에게 정말로 순금인지 알아내라고 했어요.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러 욕조에 들어가는데 물이 첨벙 넘친 거예요. 이때 아르키메데스는 깨달았죠. 기뻐서 ‘유레카!’라고 외치면서 발가벗고 길 위를 달려갔대요.” “재밌네. 그런데 부력은 뭐래.” “앗, 그것은 이야기 안 해 주셨는데요.”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1층 홀에 전시된 공룡뼈와 고래 모형. [사진 과천과학관]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1층 홀에 전시된 공룡뼈와 고래 모형. [사진 과천과학관]

    이런 식이었다. 과학을 쉽고 재밌게 설명하다 보니 정작 핵심은 빠지고 일화만 남았다. 우리는 1980년대부터 과학의 대중화를 외쳤다. 덕분에 무수히 많은 과학 강연이 열렸고, 상당히 많은 과학 교양서가 출판되었다. 덕분에 과학자들 역시 다른 분야의 과학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들은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중이 과학을 이해하는 수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과학의 대중화라는 게 원래 과학을 대중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대중이 과학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아니냐며 항변한다. 맞다. 대중이 과학과 접하는 수준에서 끝났다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중이 열세 살이 되면 다시 과학과 멀어지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과학 대중화는 대중 과학화라는 거울상이 있어야 지속하는 의미가 있다. 과학이 대중에게 접근하는 것만큼 대중도 과학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 책임이 대중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사회가 제도로 책임져야 한다. 새로운 질문을 이끌어내고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언어를 꾸준히 배우고, 실제로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제일 좋은 곳은 학교다. 학교만큼 과학 대중화와 대중 과학화에 적합한 장소는 없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학교에서 과학을 배웠다. 과학 대중화의 미래는 학교 교육에 달려 있다. 학교의 과학교육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읽고 쓰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문해력은 사회 발달에 아주 중요하다. 시민의 문해력은 어떻게 높이는가. 간단하다. 학교 교육이다. 도서관은 학교 다음으로 시민의 문해력을 높이는 핵심기관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2019년 기준으로 1134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도시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는 매주 간다. 여기에 5000여 명의 사서가 일하면서 책을 매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시민의 문해력을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나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문해력뿐만 아니라 과학 문해력(scientific literacy)도 필요하다. 학교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 다음으로 필요한 곳이 바로 과학관이다. 국내에는 139개의 (공공 과학관이 아니라) 등록 과학관이 있을 뿐이다. 과학관은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에 있고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간다. 여기에 근무하는 과학자와 공학자는 수백 명에 불과하다.
     
    아직도 도서관에선 열람실이 커다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책을 읽을 공간은 많다. 자기 방도 있고 카페도 있다. 실제로 많은 도서관에서 열람실을 줄이고 커뮤니티 공간을 늘리고 있다. 열람실 가운데 한 개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4개의 실험실로 바꾸면 어떨까. 1134개의 도서관 가운에 100군데에만 실험실을 설치해 보자는 이야기다.
     
    토지를 새로 매입하고 건물을 짓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전시물을 들여놓을 필요도 없다. 각 지역에는 이미 거점 과학관들이 있다. 전시는 거점 과학관에서 보면 된다. 실제로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실험실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도 핵심은 사람이다. 한 군데에 4명씩의 과학자를 배치하자. 400명을 고용할 수 있다. 1000개의 도서관에 실험실을 설치한다면 4000명의 과학자를 고용할 수 있다.
     
    도서관 실험실은 인근 학교에서 가장 먼저 사용할 것이다. 이젠 각 학교도 DNA-PCR 장비를 충분히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1년에 몇 번이나 쓰겠다고 각 학교가 이 장비를 구입하겠는가? 또 그 장비를 누가 운용할 것인가? 하지만 도서관에 실험실이 있다면 학교 실험을 이곳에서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과학자도 있다. 서울시립과학관 실험실이 그렇게 쓰이고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과학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해외 선진 사례가 있나요.” 없다! 왜 해외 선진 사례가 필요한가? 꼭 나중에 따라해야 하나.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다. 우리가 제일 앞에 서야 한다! 과학의 대중화와 대중의 과학화의 핵심은 사람이다. 시민과 과학자가 만나는 게 바로 운동이다. 시민이 과학자를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길 때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는 하나가 된다. 도서관에 실험실을 만들자.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과 서울시립과학관에서 일했다.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등을 썼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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