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한국 가정의 중심은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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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문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많이 다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나의 조상인 스코틀랜드의 켈트족은 참으로 야만적으로 살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양반들이 붓글씨도 쓰고 풍류를 즐기며 다양한 문화를 영위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문화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자꾸 발견하게 된다. 우리 조상이 한국 땅을 밟은 지가 120년이 넘었는데 한국에 대하여 계속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유교 문화 속 여성들 차별받아와
    환갑 지난 남자, 상징적 가족 대표
    집안 대소사는 며느리가 총괄해

    1991년 미국 수련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내 진료실에 한국 선교사라는 젊은 백인여자가 찾아왔다. 그 시절에는 한국으로 들어온 선교사가 거의 한국을 떠나고 오히려 한국에서 기독교 선교사를 외국으로 많이 파견하고 있을 때였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녀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성경에 보면 요나가 3일 동안 큰 고기의 뱃속에 있었다는데 고기 뱃속에는 산소도 없고 3일 생존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성경은 일부가 소설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처녀로 아이를 낳았다는데 그것은 믿을 수 있는가 했더니 그녀는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 그러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했다고 쓰여 있는데 그것은 어찌 생각하느냐. 그녀는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일이고 제자들이 너무나 예수님을 갈망했기 때문에 환상 속에서 예수를 본 것이라고 했다. 실제 부활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역시 우리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는 너무나 달랐다. 성경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었다.
     
    나는 성경의 내용을 믿지 않고 있는 이 젊은 백인여성이 도대체 어떤 선교를 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자신은 이 나라 여성을 해방시키러 왔노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절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한국 여성에 대해 이야기 해주겠다고 말하며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나는 전라도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농사를 많이 짓던 그 시절에는 어느 집이나 아이를 많이 낳았다. 우리 어머니도 열둘을 낳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여섯 명밖에 못 낳았다. 내가 그 여섯 형제 중 막내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 갔을 때 그 집의 가장 중요한 여성이 큰 며느리라는 걸 아주 빨리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친구들의 큰 형님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면 그 가족들의 큰 고민은 어떤 여성을 며느리로 맞이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어렵게 여러 과정을 거쳐 큰 며느리를 맞이하게 되고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면 아무리 가난한 집도 돼지와 소를 잡는다. 그날은 음식을 마음껏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혼식을 마치고 나면 큰 며느리는 성경에 나온 예수처럼 살아간다. 농사가 안 돼도 그 며느리가 잘못 들어온 탓, 집안의 노인이 아파도 그 며느리가 잘못 들어온 탓이다. 온갖 안 좋은 일의 이유는 그 며느리 때문이다. 그 뿐인가. 시어머니 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시어머니에게 시달리며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그런데 그 며느리가 아들을 한 둘을 낳고 몇 년이 지나면서 가족의 변화가 생긴다. 정신적으로 남편하고는 멀어지고 인생의 모든 비중이 아들에게 집중되어 간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점점 나이 들어감에 따라 큰 며느리가 서서히 그 자리를 대신하여 집안 전체를 관리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총괄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며느리가 그 집안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의 동생이 실수를 하거나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할 때는 시동생에게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작은 며느리들에게 충고하며 집안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 자신을 선교사라고 말하는 그 젊은 여자에게 나는 “작은 며느리들이 큰 며느리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아느냐. 형님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줬다. 여성이 여성을 부를 때 쓰는 여성형의 호칭이 아니라 남성이 손위 남성을 지칭할 때 쓰는 남성형인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설명했다. 반면, 남자는 60세 환갑 이후에는 상징적인 가족의 대표로 마을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참석하는 역할이 전부인 상당히 불쌍한 처지가 되어 버린다.
     
    유교 문화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차별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가정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면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가정의 중심은 바로 여성들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에게 “여보시오. 한국 여성은 이미 해방이 되어있으니 거꾸로 당신이 배워서 미국으로 돌아가서 가르치길 바라네”라고 말했다.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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