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일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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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사회에 만연한 ‘일’의 종교화
    일이 삶의 목적 아닌 수단일 때
    일터에서의 행복 쉽게 발견

    기도문의 표현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지구촌 곳곳의 교회에서는 이 주기도문이 예배 시간마다 암송된다. 주기도문은 단순히 기독교 예배 의식의 절차라는 개념을 넘어, 기독교인의 삶의 기본 원리다. 예배 중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 때는 이 기도문을 암송한다. 주기도문에는 세상의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삶의 중심에 자신이 아닌 신을 모시겠다는 결단이 담겨 있다. 기독교뿐이겠는가? 다른 종교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규정해주는 기도문들을 가지고 있다.
      
    현대인의 새로운 종교 : 일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새로운 종교가 무섭게 확산되었다. 이 종교는 자신이 전도되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도록 은밀하면서도 세련되게 사람들을 포섭하고 있다. 이 종교를 따르는 신자들 역시 매일매일 자신들의 기도문을 암송한다.
     
    ‘하늘에 계신 나의 일이여,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회사의 비전이 나의 소명이 되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의 무능과 실패를 용서하시고, 다만 나태의 유혹에서 구하소서.’
     
    일은 거룩한 대상이 되었다. 일은 일용할 양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제공한다. 일의 종교화는 일의 정의를 ‘직업(job)’에서 ‘커리어(career)’를 거쳐 ‘소명(calling)’으로 바꾸는 과정을 통하여 완성되었다. 이 거룩한 변신을 통해 일은 마침내 현대인의 삶의 의미 그 자체가 되었다.
     
    일터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루저로 전락했고,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이 새로운 종교의 핵심 메시지가 되었다. 아무리 기도해도 신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못 해본 사람들이 내적 압박을 느끼듯, 아무리 일을 해도 일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자괴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일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진정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일과 라이프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한 말이라며 비판이 제기된다.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소수의 사람은 새로운 종교의 사제가 되었다. 이들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신이 명령하신 곳으로 떠난 아브람처럼, 가족과 친구를 떠나 매일 일터로 향한다. 가족과 친구와 보내는 행복한 시간을 늘리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던 믿음은 온데간데없고, 일을 위해 가족과 친구를 희생하는, 마치 선교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바쁨은 이들의 지위의 상징이 되었고, 번아웃(burnout)은 훈장이 되었다.  
     
    이들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를 위해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들처럼 직장인들은 삶의 의미를 일터에서 찾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하게 되었다. 기도에 끝이 없듯이 일하는 시간에도 끝이 없어서, 급기야 노동 시간이 세계 최정상급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심각하게 여기기보다는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의 의미는 중요하나 종교화는 위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면 그건 축복이다. 소명 의식까지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은혜다. 일에서 의미와 행복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최고의 축복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은 일이고 가정은 가정이다’ ‘일은 일이고 라이프는 라이프다’라는 생각이 신성모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죽을 만큼의 죄도 아니다. 소명 의식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의 성과가 좋고 행복도가 높다고 말하는 연구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이 신격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요새는 재벌이 과로사한다. 너무 많은 역할과 포부가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원래 일이란, 여유 있게 쉬려고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일을 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야 한다. 일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의 자리를 지킬 때, 일터에서의 행복은 오히려 쉽게 발견된다. 가정의 달에 다시 결심해본다. 일은 일일 뿐이라고.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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