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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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냐면]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저자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또 비교되면서 살아간다. 비교는 간혹 자부심을 고양해주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누군가에 의해 또 누군가와 비교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어찌 됐든 인류를 상징하는 징표 중 하나가 ‘비교하는 인간’(호모 콤파라티부스, Homo Comparativus)이다. 옥스퍼드 핸드북을 보면, 사람들이 행동하고 의사를 결정할 때 타인의 선택과 비교하는데 그 이유는 타인의 인정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리언 페스팅거가 제시한 사회비교이론도 자신의 능력과 의견을 타인과 비교하려는 사람들의 동기에서 출발한다. 비교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와 타인이 더 유사해지도록 노력하는 이른바 ‘유사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려고 애쓴다. 비교는 그 대상의 특성을 더 잘 파악하고 올바른 판단이나 해법을 더 잘 찾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문제는 늘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 있다.
    우선, 타인의 인증을 구하는 욕구의 과잉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증 샷’과 ‘좋아요’의 갈구, 공감을 통해 허기진 자아를 채우려는 욕망은 인증 강박이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잉동조가 넘친다. 아직도 어딘가 집단에 속해서 집단정체성을 느껴야 편해지는 사회다. 내 의사나 취향보다는 남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회다. 모든 판단 기준이 내가 아니라 ‘옆집’이나 ‘직장 동료’가 되고, 늘 남을 의식하면서 내 존재를 자꾸 알리고 싶은 비교와 관심의 열기 속으로 우리는 부나방처럼 날아든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는 늘 자기보다 잘되고 잘난 사람과 비교하려는 태도가 지배한다. 이런 상향비교가 소수 승리자에게는 넘치는 우월감을 주지만 다수 패배자에게는 열등감의 과잉을 낳는다. 입학과 취업, 승진 등 삶의 단계마다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이 엄청난 경쟁의 압박과 압력을 받는다. 그 경쟁 속에 소외가 싹튼다. 언제부턴가 집안 좋고 성격 밝고 공부도 잘하고 외모까지 출중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젊은이를 가리키는 ‘엄(마)친(구)아(들)’가 우리 사회에 떠다니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 곁에 ‘엄친아’는 없고 엄친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사람만 넘친다. 이 스트레스는 가뜩이나 약한 개인들의 자존감을 더 주눅 들게 할 뿐 아니라 안 그래도 과도한 경쟁으로 지친 우리 사회 전반에 냉소와 분노를 더욱 부채질한다.
    무엇보다 타인의 관심과 인증에 대한 목마름과 과잉동조의 피로, 상향비교의 스트레스가 낳는 최악의 부작용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다. 비교는 본래 서로 간에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 올바른 판단과 문제 해결에 써먹으라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대로 구분하여 말하는 데 서툴다. 차이가 습관적으로 옳고 그름으로 뒤바뀌고 그것이 다시 차등과 차별로 표출되는 사회심리의 한 징표다. 특히 돈과 권력의 순서대로 대접하고 대접받는 사회적 분위기는 모멸감을 아래로 내리붓는다.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병이 정에게 그러하고, 집단적 다수가 소수에게 그러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굳이 기대지 않고도 우리는 삶의 최고선이자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비교하는 인간의 본성도 우리들의 행복에 도움이 돼야 한다. 그런데 끊임없이 비교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삶이 정작 현실에서 집단적 피로와 스트레스를 증식하고 나아가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행복과 반비례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비교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인식의 문제뿐 아니라 왜곡된 비교와 차별의 원리가 지배하는 교육이나 미디어 같은 일상적 사회시스템도 바꾸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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