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통령 ‘개인’ 모욕은 국가모독죄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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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제화 여민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독재 시절이던 1975년 형법에 국가모독죄가 신설됐다. 대한민국이나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하면 국가모독죄로 처벌받았다.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에는 대통령도 포함됐다. 그래서 국가모독죄를 국가원수모독죄라고도 불렀다. 서슬 퍼렇던 유신의 시대에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라 곧 국가였다. 대통령 모욕은 국가에 대한 모욕이었고 국가의 안전과 이익·위신을 해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였다.
     

    헌재 2015년 “국가모독죄 위헌”
    과잉 대응, 표현의 자유 위축시켜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는 전단을 뿌린 혐의로 30대 청년 김정식씨가 모욕죄로 고소당했다. 모욕죄의 보호법익이 개인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이고 전단 배포로 대통령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으니 죄는 성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인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언행에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이 위축된다. 검찰 송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대통령 측의 과잉 대응 논란이 벌어진 끝에 결국 문 대통령이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반드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모욕죄는 친고죄라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수사가 진행된다. 법리상 고소권자인 문 대통령이 고소했음이 명백한데, 수사과정에서 고소인이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김씨가 경찰에 수차례 요구했지만 끝내 답을 듣지 못했다.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은 국민의 정보공개청구를 받으면 응해야 한다. 비공개 대상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으나 피의자의 방어권 보호 차원에서 고소인의 이름과 고소 내용 정도는 공개하는 것이 판례다. 그런데도 경찰은 법적 근거 없이 김씨의 정당한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했다.
     
    경찰은 김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포렌식 할 때 패턴 암호가 풀리지 않자 김씨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을 미리 촬영했다가 암호를 푸는 데 썼다. 이미 증거가 확보된 단순 모욕죄 사건에서 휴대전화 압수는 과잉 대응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이례적이었다. 영장 집행이 적법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고소 취하 의사를 발표하며 “이 사안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떠나 일본 극우 주간지의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하는 등 국격과 국민의 명예, 남북 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해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의 설명을 통해 의문이 풀렸다. 일본 매체를 이용해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을 모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전과 이익·위신을 해했다는 이유로 김씨를 문 대통령이 개인이 아닌 대통령의 지위에서 고소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김씨에게 씌워진  혐의는 모욕죄가 아니라 국가모독죄였던 셈이다.
     
    국가기관인 대통령은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개인으로서 개인적 법익이 침해당했음을 이유로 누군가를 고소할 순 있어도,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법익이 침해당했음을 이유로 국민을 고소할 순 없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개인은 국가가 아니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모욕 또한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이 아니다. 이 둘을 혼동하는 순간 우리는 엄혹했던 유신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1988년 폐지된 형법상 국가모독죄에 대해 2015년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했다. “형사처벌을 통해 국민의 표현 행위를 일률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이익 또는 위신을 보전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고, 실질적인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국가라는 대외적 평가가 오히려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위신을 저해할 수 있다.” 청와대는 헌재의 2015년 위헌 결정문을 꼼꼼히 읽어보길 바란다.
     
    류제화 여민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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