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컬렉터 이건희의 기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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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혜란 문화팀 부장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증받은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지정문화재(국보·보물 등 60건)를 중심으로 한 6월 특별전 준비가 한창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는 그 중 백미로 꼽힌다. 최근 만난 민병찬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화 6000여점을 대표할 만한 걸작”이라며 “서양 미술학자도 빠져드는 작품”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박물관은 총 9797건(2만1600여점) 가운데 중요도를 추려 내년 10월엔 ‘명품 특별전’도 연다.
     

    노트북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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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증 규모가 역대급이긴 해도 앞서 적잖은 개인들의 기증이 국립박물관을 키워왔다. 의사 출신 박병래, 기업가 이홍근, 그리고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 등이 평생의 수집품을 대가 없이 내놨다. 가장 최근엔 국보 180호 세한도가 있다. 이를 기증한 손창근(92)씨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304점을 선뜻 내놓고도 마지막 이 한 점만은 고심했다. 실제로 보면 추사 김정희가 그린 그림이 작고 소탈한 데 놀라고 약 15m ‘완전체 두루마리’에 남은 곡진한 후기들에 다시 놀라게 된다. 기증 기념전에서 인트로 영상물을 제작한 프랑스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역시 “작품 이상으로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 때문에 더 가치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탄생 때부터 걸작인 예술품이란 건 일종의 신화다. 예컨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2010호)는 원래 1930년대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가 수집했던 신라 기와장식 중 하나다. 1972년 기증된 뒤 ‘신라의 미소’로 사랑받는 수막새를 두고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일본인 컬렉터의 수집·기증 없이 우리가 그 매력을 알 수 있었겠나” 묻는다(『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때 일상용품이었던 자기·소반·조각보 등이 예술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 과정엔 예외 없이 컬렉터의 수집과 기증(공공전시 포함)이 뒷받침했고, 이 스토리가 작품의 가치를 드높인다는 관점이다. 일본 열도 폭격 전 세한도 소장자를 찾아가 이를 찾아왔던 손재형 신화를 빼도 작품의 감동이 그대로일지 상상하면 이해가 간다.
     
    정선이 벗을 생각해 그린 ‘인왕제색도’는 조선 후기 노론 벽파의 영수였던 심환지가 소장해 그 문중으로 전해졌다. 이후 언어학자 최원식, 개성 부호 진호섭, 서예가 손재형의 수중을 거쳤다가 이번에 ‘이건희 기증품’으로 국민 품에 안겼다. 아마도 일반인에겐 18세기 당시 탄생 비화보단 한국의 억만장자가 소유했던 ‘컬렉션 1호’란 게 더 솔깃한 대목일 테다. 미술품을 기증받은 각 소장기관이 이 같은 신화를 어떻게 예술적 자산으로 불려갈지 궁금하다.
     
    강혜란 문화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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