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 시시각각] ‘참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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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2일 지지모임인 ‘민주평화광장 ‘출범식에서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고 있다. 이 지사는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일정 주기에 지역 화폐로 차별 없이 지급하자는 ‘기본 소득’을 간판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다. 오종택 기자

    빚더미 자영업자의 손실 보상 문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통령은 일단 외면하는 중이다. 며칠 전 특별 연설에서 빼버렸다. 하지만 국회엔 ‘은행 빚 탕감법’이 상정돼 논란이다. 정부와 여당은 120조원이 넘는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만기를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올 9월까지 연장했다. 지금까진 은행 팔을 비틀었다. 이젠 감면·탕감을 법제화하려는 것이다. 물론 못 할 거야 없다. 
     ‘어린이 용돈’까지 챙겨주겠다는 나라다. 10억원 예산으로 초등학생에게 매달 2만원씩 나눠준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기본 소비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건데 재정 자립도가 겨우 10% 남짓한 구청이다.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10만원의 별도 ‘어르신 공로 수당’을 추가 지급하는 곳도 있다. 경기도는 ‘청년 면접 수당’을 30만원으로 늘렸다. 좋은 나라다. 코로나 재앙 앞에 못 할 게 뭐 있나. 

    빚더미 앉은 나라보다 무서운 건
    갚을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
    잠자는 재정준칙 서둘러 깨울 때

     그렇다 치자. 문제는 앞으로다. 코로나가 아마도 끝날 내년엔 더 좋은 나라가 오는 모양이다. 대선판에 불려 나온 ‘20세 1억원’은 ‘국민 1인당 능력 개발비 2000만원’, ‘군 제대 시 3000만원’엔 ‘매월 30만원 주거 급여’, ‘연 100만원 국민 기본소득’은 ‘연 600만원’으로 벌써 추가 엔진을 달았다. 곧 주택이든 자산이든 대출이든 기본 시리즈가 줄을 설 게 틀림없다. 제2, 제3의 가덕도는 지역마다 흘러넘칠 것이다. 어차피 내 돈 드는 일은 아니다. 더 무책임한 쪽이 이기는 선거판이다. 
     말만으론 돈 안 든다. 하지만 실제라면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럼 돈은? 더 큰 빚을 내자는 거다. 그 다음 대책은? 대마불사다. 미국을 보라고 한다. 물론 두 나라가 같은 천조국으로 불리긴 한다. 미국은 원조 천조국이다. 신하 나라가 천자 나라를 상국 모시듯 한다고 해서 ‘미국은 천조(天朝)’라고들 불렀다. 미국 국방비가 한때 천조(千兆)원 가까이 되기도 했다. 우린 빚 천조국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 대마불사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래도 우린 미국이 아니다. 게다가 역사책엔 설사 미국이라도 빚 앞엔 장사 없다고 쓰여 있다.  
     ‘영원한 제국’ 로마가 무너진 진짜 원인은 이민족 침략이 아니라 과도한 재정지출로 경제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황제들이 돈을 펑펑 쓰다 빚 감당을 할 수 없게 되자 나중엔 돈을 그냥 찍어냈다. 네로 황제는 금 성분이 하나도 없는 도금 화폐를 뿌렸다. 거대 인플레이션을 마구 일으켜 황제와 나랏빚이 셀프 탕감되긴 했다. 하지만 골병든 제국은 결국 암으로 신음 댔다. 데이비드 랜즈는『국가의 부와 빈곤』에서 “스페인은 돈이 너무 많아서 가난해졌다”고 썼다. 같은 얘기다.
     빚 탕감의 목소리가 나올 만한 상황이긴 하다. 명동을 걷다 보면 누구나 느낀다. 그렇다고 그냥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와 무관한 나랏빚이야 더 말할 게 없다. 고교 졸업생에게 세계여행비 주겠다고 나라가 빚을 지면 누가 갚나. 최소한 빚 갚을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나. 빚 탕감법이 아니다. 빚을 더 늘리지 않는 법이 먼저다. 전 세계 90개 넘는 나라가 그런 재정준칙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우리도 국가재정법 개정안엔 들어 있다. 국회에서 잠만 자니 문제다. 
     대선 출정식 같은 지지 모임과 출마 선언이 빼곡하게 이어진 1주일이었다. 더 늦기 전에 재정준칙이 나와야 그 안에서 치고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는데 한평생이 필요하다’는 세네카의 말이 있기는 하다. 나라 경영을 배우느라 잠재웠는지 모르지만 이젠 정권 막바지다. 나라 거덜 내는 길을 훤히 알 만한 때다. 공돈으로 세계여행하는 건 누구나 바란다. 하지만 분수 넘치게 사는 일이다. 몇 년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IMF에 손 벌리며 한 말이다. ‘우린 분수 넘치게 살았다’. 하물며 빚으로 그런다면.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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