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한국 바이오는 우물 안 개구리…10만 양병책으로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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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광렬 차병원·바이오그룹 글로벌종합연구소장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거의 6년 만에 언론 인터뷰에 나선 그는 노타이 차림이었다. “오랜만에 미디어에 노출되는데 정장을 하시라”는 홍보팀 직원의 조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림새를 두고 인사를 건네자 “바빠서 복장에 신경 쓸 틈이 없다”면서 “그래도 평소 즐겨 입는 청바지는 피했다”며 웃었다. 6년 사이 회장 직함도 내려놓았다. 명함에는 글로벌종합연구소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회장직 내려놓고 장기 전략 집중
    코로나 사태에도 외연 확장 활발
    “특허 푼다고 백신 만들 수 있겠나
    생태계 갖춰야 바이오 강국 된다”

    차광렬 소장은 2016년 12월 이른바 ‘국정농단 청문회’ 이후 대중 앞에 나서지 않았다. 의욕적 활동은 여전하지만, 언론 노출은 가급적 피해 왔다. 박근혜·최순실 등 전 정부 인사들에게 특혜 진료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경기도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에 만난 그에게 그 질문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광렬 소장은 바이오 강국이 되려면 체계적 인재 육성과 함께 병원 중심의 바이오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 내 종합연구원 앞에서. 김경록 기자

    차광렬 소장은 바이오 강국이 되려면 체계적 인재 육성과 함께 병원 중심의 바이오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 내 종합연구원 앞에서. 김경록 기자

    세간의 시선이 따가웠다. 결론이 어떻게 났나.
    “최순실 씨는 TV에서 봤을 뿐, 직접 본 적도 없다. 하루에 1만 명에 달하는 우리 병원 이용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특검 수사 결과 차병원이 특혜를 받았다거나, 당시 대통령에게 불법 줄기세포 치료를 했다는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의혹은 크게 보도됐지만, 무혐의 결론은 주목받지 못했다.”

     

    연구소장이란 직함이 낯설다.
    “병원 부문과 기업 부문의 일상적 경영은 각각 의료원장과 차바이오텍 대표에 맡겼다. 나는 해외 네트워크와 연구개발을 총괄한다. 그룹의 미래 동력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동남아·호주 등 환태평양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신약과 신의료기술 개발 등을 챙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1년에 절반은 해외에 나가 있을 텐데….”

     

    “2018년 호주의 대표적 난임센터 시티 퍼틸리티(City Fertility)의 지분 65%를 인수했다. 호주는 1984년 세계 최초로 체외 수정 후 냉동됐던 배아의 착상과 출산에 성공한 난임 치료 강국이다. 동남아 3개국에 40여개 클리닉을 가진 싱가포르 메디컬 그룹(SMG)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글로벌 의료 수출로 매출도 확보하고, 헬스 바이오 분야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창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코로나19로 바이오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바람직하긴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우리 수준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미래 바이오테크의 핵심 키워드는 ‘세포’ ‘유전자’ ‘후성유전학’(유전인자가 발현되는 조건을 밝히는 연구)이다. 그런데 관련 전문가가 별로 없다. 국내에서 세계 바이오 100대 기업에 들만한 업체가 있나. 미국이 코로나 백신 특허를 푼다고 금방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까. 인력과 설비를 준비해 양산에 들어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최근 바이오 기업 주가가 요동친다. 거품론마저 인다.
    “겨우 임상 1상 들어갔다고 주가가 뛴다. 위험하다. 길게 봐야 한다.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은 곳이 바이오다. 의약품 실험에서 안전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듯이 바이오 투자도 안전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 그룹 내 상장사 두 개가 있는데, 주가가 크게 움직이지 않아 불만인 투자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낙관적이다. 제대로 평가받을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차병원·바이오그룹 현황

    차병원·바이오그룹 현황

    중국은 어떻든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다.
    “사회주의 체제답게 집중과 선택 전략으로 바이오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참고할 점이 많다. 바이오 강국이 되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중장기 계획을 세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국내 교육뿐만 아니라 해외 연구기관 연수·파견을 통해 선진 기술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해외 우수 인력을 영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차바이오텍이 미국 자회사 마티카 바이오를 통해 텍사스에 ‘바이럴 벡터’(세포에 외래 유전자를 심기 위한 바이러스 매개체) 등 세포 유전자 치료제 생산 시설을 만들고 있는데, 국내 전문 인력이 없어 론자·베링거인겔하임·후지필름 등 관련 선도업체에서 전문가를 영입했다.”

     

    또 어떤 전략이 있을까.
    “바이오 에코 시스템(생태계) 조성이다. 병원-연구소-기업이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것처럼 ‘바이오 10만 양병책’을 펼쳐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해법은 ‘바이오 시티’ 건설이다. 정주(定住) 기능이 어우러진 인구 10만명 규모의 신도시다. 연구중심 병원을 가운데 놓고, 그 주변에 암·산부인과 등 과별 전문 병원과 바이오 연구소 및 기업을 배치하는 것이다. 외곽에는 첨단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을 만들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산·학·연·병(産學硏病)이 어우러진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전략이다.”

     

    차병원·바이오그룹의 적극적 병원·연구소 인수·설립이 인상적이다.
    “바이오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이다. 분당차병원은 2013년 국가지정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돼 줄기세포 치료 기술을 이용한 난치병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신약 개발 능력을 키우는 데 필수적인 초기 임상시험 병동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 판교의 차바이오컴플렉스에는 기업·연구소와 의학전문대학원이 모여 있다. 2024년에는 인근 판교 제2 테크노밸리에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위탁개발생산) 시설이 완성된다. 분당차병원-판교-제2 판교로 이어지는 산학연병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외형 확대에 너무 치중하는 것 아닌가.
    “천만에. 장기적 관점에서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 혁신) 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나는 병원 의사들에게 1년에 한두 번은 그룹 산하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특강을 하도록 권한다. 산학 교류를 위해서다. 교수들이 그저 그만한 논문 자꾸 써서 뭐하나. 진짜 임팩트 있는 연구로 노벨상을 노릴 정도가 되거나, 산업에 기여하거나…. 대학·연구소의 기초연구가 상업화로 이어지고, 상업화로 얻은 이윤이 다시 대학·연구소의 기초 연구에 투자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차바이오텍은 그 선순환의 중요한 고리다. 차백신연구소도 국제적 수준의 면역증강제 특허 기술로 코스닥에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병원은 플랫폼 산업이고, 과실은 기업에서 거둔다.”

     
    난임 치료에서 세계적 수준을 인정받는 차병원은 줄기세포 연구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2014년 세계 최초로 성인 피부세포로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신선 난자를 쓰지 못하게 한 국내 규제를 피해 미국에서 이룬 성과다. 이듬해에는 1~2%에 불과하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개발 성공률을 7%로 올려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역분화 줄기세포’(iPS)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박사도 2016년 저서에서 차병원·바이오 그룹을 세계적 줄기세포 연구소 중 한 곳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개발 중인 치료제가 있나.
    “탯줄 조직 기반의 줄기세포를 활용한 퇴행성 허리디스크 치료제를 개발해 현재 임상 2a상을 진행하고 있다.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에서도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거뒀다. 이 질환은 재발할 경우 생존 기간이 6~8개월인데, 우리가 개발 중인 치료제를 임상에 활용한 결과 40%가 넘는 환자가 2년 이상 생존했다. 난소 기능을 되돌리는 연구, 뇌줄기 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제 연구 등도 진행하고 있다.”

     

    규제가 바이오산업 발목을 잡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자기 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제 규제는 일본처럼 좀 풀었으면 한다. 자기 세포 치료제는 면역거부 반응이 없어 안전한 편이다. 까다로운 규제가 세포치료제 연구개발의 발목을 잡고 있어 외국보다 연구가 더디다. 또 임상시험에 쓰는 약제는 무조건 제약사 부담으로 하기보다 원가라도 받게 해줬으면 한다. 막대한 임상 비용이 바이오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난임 치료와 생식 의학, 줄기세포 분야에서 여러 개의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1986년 국내 민간병원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켰고, 1987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난자 없는 여성의 임신에 성공했다. 1989년엔 세계 최초로 미성숙 난자의 체외 배양에 의한 임신·분만에 성공했다. 1998년엔 세계 최초로 유리화 난자 동결법(최고속 냉동법)을 개발했다.
     
    연구 업적이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에 3회나 소개됐고, 4종의 산부인과 의학 교과서에도 실렸다. 미국생식의학회는 그의 이름을 따 2011년 ‘차광렬 줄기세포상’을 제정했다.  
     
    1960년 고(故) 차경섭 이사장이 설립한 차산부인과에 뿌리를 둔 차병원·바이오그룹은 1984년 아들인 차 소장이 강남차병원을 개원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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