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칼럼] 한·미 정상회담 : 4차산업 동맹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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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오늘 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장의 분위기는 대체로 우호적일 것이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허물없는 태도의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친근하고 정중하게 맞이할 것이다. 44년의 워싱턴 정치경력에서 축적한 노련함은 안주머니에 넣어둔 채, 한·미 동맹과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의지를 높이 평가할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대면 정상회담의 여러 성과에 만족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큰 전환 꿈꾸는 바이든의 초대
    반도체·백신·모빌리티 협력초점
    냉전·평화 이분법으로는 한계
    지정학 동맹에서 복합동맹으로

    정상회담의 예의는 아마도 거기까지일 것이다. 워싱턴 회담의 공동 발표문(혹은 공동 기자회견)은 아마도 수백 가지 해석이 가능한 난수표처럼 읽힐 가능성이 크다. 발표문을 보면서, 어떤 전문가는 바이든 대통령이 그동안 문 대통령이 강조해 마지않던 북·미 대화의 우선 순위에 공감하였다고 해석할 것이다(한반도 중심주의). 또 다른 전문가는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코로나 백신의 우선 공급을 사실상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보건안보 우선주의). 또 어떤 해설가는 조만간 한국이 쿼드 확장판에 선택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역사적 회담이었음을 강조할 것이다(미·중관계 중심주의).
     
    절묘하게 절충되어 있는 발표문의 속내를 요모조모 뜯어보는 일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몫이다. 필자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4년, 아마도 8년을 더불어 지내게 될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와 비전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개성과 비전이라는 렌즈로 한·미관계를 들여다볼 때, 최우선 사항은 그를 과소평가해서는 대단히 곤란하다는 점이다. 78세의 바이든 대통령이 하루 평균 집무실에 머무는 시간은 거의 10시간 정도 된다. 종종 늦은 밤에도 참모들에게 업무 전화를 걸며, 정책의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파고드는 정책회의는 2시간 반을 넘기기 일쑤라고 한다.(뉴욕 타임스)
     
    대통령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들은 바이든처럼 정열적으로 일하면서도 정치와 권력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을 적극-긍정 유형의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200여 년의 미국 역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들은 이 유형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바이든의 자서전과 연설문들을 찬찬히 읽으면서 필자가 얻은 결론은 바이든이 겨냥하는 역사적 목표는 현대 대통령직의 창시자랄 수 있는 F. 루스벨트(1933-1945 재임)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안으로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밖으로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립한 루스벨트의 대업적을 자신의 임기 내에 재연하려는 것이 바이든의 야심찬 목표이다.
     
    루스벨트의 업적이라는 거울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입해보자. 먼저 경제 분야. 루스벨트 본인은 금수저 출신이었지만 1910~20년대에 극심하게 벌어진 빈부격차, 실업 문제 해결에 온 힘을 쏟았다. 대규모 재정을 쏟아붓고 산업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입법을 통해서 이른바 뉴딜(New Deal) 연합을 만들어냈다.
     
    바이든은 취임 60일 만에 2000조 원의 긴급 경기부양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올 하반기에는 추가로 5000조 원에 달하는 인프라 예산 통과를 목표로 뛰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 예산을 쏟아붓는 것만으로 일하는 중산층을 되살리기에 충분치 않다. 백악관이 직접 나서서 삼성전자, SK, 현대차의 미국 내 생산 공장 설립을 지원, 고무하는 동기는 바로 미국 내 일자리 확대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SK, 현대차의 투자를 우리가 수동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클라우드,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거의 모든 첨단 분야의 기초를 이루는 반도체 공장들이 미국 땅에 들어서는 것은 한·미관계가 냉전 시대 지정학 동맹을 넘어서고 있음을 가리킨다. 자율주행, 전기차로 대표되는 모빌리티 혁명의 주력인 현대차의 미국 진출 확대 역시 한·미 관계가 4차 산업 혁명기의 지경학 동맹으로 진화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한·미 간에 확장되는 IT, 모빌리티 공급망의 심화를 냉전 시대의 틀로 바라보면, 미·중 경쟁을 염두에 두고 제조업 강국인 한국을 묶어두려는 미국의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규모, 흉내 내기 힘든 수준의 효율성, 코로나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생산 라인의 안정성 등을 두루 고려하면, 이 밸류 체인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루스벨트가 2차 대전을 통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쌓아올렸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흔들리는 글로벌 영향력을 확실하게 회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의 글로벌 리더십 추구방식은 루스벨트와는 다르다. 루스벨트는 2차 대전을 정리하는 얄타 회담에서 우리를 포함한 수억 명 약소국 시민들의 운명을 시루떡 자르듯 분할하였다.
     
    반면 바이든은 임기 종반에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을 자신의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 손님으로 워싱턴에 초대하였다. 바이든의 초대는 하나의 정상회담을 넘어 모빌리티, 반도체, 보건안보가 중추를 이루는 새로운 시대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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