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기본소득은 시대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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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21세기 들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성장이냐, 분배냐’ 논란이 벌어졌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를 외쳤다. 그런데 다들 진영논리에 빠져 착각한 게 있다. 성장과 분배는 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함께 선순환하며 경제를 이끄는 양 날개다. 서구는 2차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고성장하면서 동시에 복지를 강화했다. 성장과 분배가 고르게 모습을 갖춘 셈이다.
     

    4차 산업혁명·코로나로 다시 부각
    분배 정책이지만 진보 전유물 아냐
    밀어붙여서도, 반대만 해서도 안 돼
    내년 대선에서 뜨거운 이슈 될 듯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워낙 밑천 없이 출발하다 보니 1960~80년대에 성장에 집중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깨달은 계기가 1997년 외환위기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가 이런 배경에서 도입됐다. 뒤늦게 분배에 눈을 돌렸는데, 하필이면 그때부터 저성장기에 진입했다. 성장이 주춤하자 돈이 바닥났다. 분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빈부 격차가 커졌다. 저출산·고령화가 겹쳐 돈 쓸 곳은 계속 늘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곳간이 비었으니 ‘성장이냐, 분배냐’ 다툼이 더 극렬해졌다. 급기야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경제학 족보에도 없는 돌연변이까지 나왔다.
     
    그 와중에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기본소득이 잠깐 담론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엄청난 돈이 필요해 헛소리로 치부됐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해진 현금을 정기적으로 주는 제도다.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가 원조다. ‘국가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조건 없이 식량을 제공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얼핏 진보의 전유물로 보이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1962년 보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기본소득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제안했다. 그는 시장경제와 성장, 자유, 작은 정부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의 대부다. 부의 소득세는 최저생계비보다 적게 버는 국민에게 그 차액의 일정 부분을 국가보조금으로 메워주는 제도다. 프리드먼은 “연금 등 복잡한 복지제도를 부의 소득세로 통폐합하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자”고 주장했다.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의 미국 공화당 정부 시절 1200명의 학자가 도입을 건의할 정도로 논의가 무르익기도 했다.
     
    기본소득이 다시 화두로 떠오른 건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한 최근 몇 년 새다. 자동화·무인화와 함께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았다. 부의 편중이 불가피해졌다. MIT의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로봇 한 대가 추가될 때마다 5.6명의 일자리가 줄어든다. 4~5년 전부터 스위스·핀란드·캐나다 등에서 제한적이나마 기본소득 실험이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중산층도 타격을 입으면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미국에선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잭 도시(트위터), 일론 머스크(테슬라)가 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했다. 저커버그는 “매달 수백 달러의 국가 지원이 국민에게 재기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국내에서도 어느새 진보·보수 모두의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2016년 총선 때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그는 “빵 사먹을 돈이 없다면 자유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기본소득을 이번엔 보수의 어젠다로 내세웠다. 여권의 이재명 경기도지사, 야권의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 적극적이다. 얼마 전 변양호·김낙회 등 전직 경제관료 5명이 『경제정책 어젠다 2022』라는 저서에서 부의 소득세를 주장했다. 프리드먼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국 현실에 맞춰 살을 붙였다. 새로운 얘기가 아닌데도 큰 관심을 모았다. 사회 전반에 기본소득에 대한 욕구가 깔려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아직은 백가쟁명식이다. 쟁점이 여럿 있다. 전 국민에게 주느냐(보편적), 어려운 사람만 주느냐(선별적)를 정해야 한다. 전 국민에게 월 10만원만 줘도 연간 62조원이 필요하다. 10만원, 20만원 줘봐야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비판도 있다. 선별적으로 주면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기존 복지제도를 통폐합할지도 쟁점이다.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를 하려면 국민 동의가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 논의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지도자들의 포퓰리즘이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퍼주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최근 나온 여권 대선주자들의 제안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대학 안 간 젊은이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원’(이재명),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 3000만원’(이낙연), ‘사회 초년생에게 1억원’(정세균) 등. 조만간 야권 대선주자들도 비슷한 공약을 쏟아낼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키우고, 건강한 논의와 의견 수렴을 막는다.
     
    그렇다고 ‘돈도 없는데 기본소득이 말이 되느냐’는 단선적 접근도 곤란하다. 예전 사고에 갇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이다.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는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될 수 있다. 무조건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무조건 안 된다고 귀를 닫을 일도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 실정에 맞춘 기본소득 도입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기본소득이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다.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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