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메시지 무엇인가, 그에게 시간이 별로 없는 까닭”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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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출마선언도 하기 전에 여당 주자들이 일제히 견제에 들어갔다. 정세균 전 총리는 “검찰개혁의 몸통은 윤석열”이라고 말했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편중된 경험이나 벼락공부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예쁜 포장지 대신 내용물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정권이 무너뜨린 공정에 대한 열망이 윤석열 현상 만들어
    진보의 기득권 세습, 반칙 일삼아 온 데 대한 민초의 분노
    법적·형식적 정의 넘어 경제적·실질적 정의에 답해야할 때
    윤석열 현상 거품인가…정치공학 아닌 분명한 메시지 내놔야

    포장지 대신 내용물
     
    정 전 총리의 발언은 무시해도 좋다. 국민이 아니라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대깨문’이라는 ‘신앙 공동체’ 내에서는 검찰개혁이 중요한 사안인지 몰라도, 국민 대다수에게는 그저 ‘서민들이 민생고에 시달리는 동안 민주당 고위인사들의 특권만 대폭 향상시킨 사건’일 뿐이다.
     
    이낙연 전 대표의 지적은 곧 시작될 검증의 방향을 보여준다. 세상을 검찰의 눈으로만 본다거나, 대통령이 될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그저 공세로만 치부할 게 못 된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그 부분을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 의구심을 일소하는 것은 윤 전 검찰총장 본인의 몫으로 남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을 공개”하라는 이재명 지사의 지적이다. 앞으로 그가 자신의 콘텐트를 공개하면, 이른바 ‘윤석열 현상’이 거품인지 아닌지 자연스레 가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이다. 지난 재·보선은 그 시대정신의 하나가 ‘공정’의 가치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법적·형식적 공정을 넘어서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윤석열 현상의 바탕에는 정권이 무너뜨린 공정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 그걸 알기에 이재명 지사도 그동안 내세워온 ‘기본 시리즈’를 뒤로 물리고 ‘성장과 공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성장’으로 현 정권의 정책과 거리를 두고, ‘공정’으로 윤석열과의 차별성을 지우겠다는 계산이다.
     
    윤 전 총장을 공정의 상징으로 만들어준 것은 그동안 정권이 저질러 온 불법·탈법·초법의 행태. 정권이 ‘내로남불’의 화신이 된 상황에서 국민은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칼을 공정히 대는 검찰총장에게 진영의 차이를 넘어 사회의 기본 규칙을 다시 세워줄 인물이라는 기대를 품게 된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원전 평가조작,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등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사건들. 정권은 이런 불법과 초법적 행위를 일삼으며,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검찰의 수사를 방해해왔다. 그 결과 정권이 훼손한 법치를 회복할 인물로 자연스레 윤 전 총장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저 하늘 위의 ‘공정’을 서민 자신의 문제로 각인시킨 것은 조국 사태였다. 민초들은 평등을 외쳐 온 진보마저 기득권을 세습해 주려고 반칙을 일삼아 온 것을 보고 분노했다. 그래서 조국을 수사하다가 온갖 고초를 겪은 인물에게, 마음속으로 정권을 심판해줄 적임자를 찾게 된 것이다.
     
    윤석열의 상징자본은 이 법적·형식적 정의의 가치다. 하지만 이는 대권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공정을 시대정신으로 만든 대중의 무의식에는 더 깊은 차원의 공정, 즉 경제적·실질적 정의에 대한 욕망이 깔려 있다. 문제는 이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대답하는 것이다.
     
    경제적·실질적 공정
     
    조국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근원을 갖는다. 그 분노는 ‘공정한 노력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층 사다리 자체가 사라졌다’는 깊은 좌절에서 나온다. 실제로 이 나라는 언제부터인가 급속히 그 지위와 특권이 세습되는 새로운 신분제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사실 한국만큼 평등한 사회도 없었다. 한국전쟁으로 모두가 잿더미에서 출발해 누구나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활기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부모의 경제력 차이가 자식들의 교육 격차를 낳는다. 상류층은 반칙과 편법까지 사용하니,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소득주도성장’이 무색하게 소득격차는 줄지 않았다. 게다가 근로소득으로는 벌어지는 자산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 원래 큰돈은 일하지 않고 버는 것. 그저 건물을 사고파는 것만으로 수억원을 챙기는 곳에서 서민에게 허용된 계층상승의 유일한 길은 영끌해서 주식과 코인을 사는 것뿐이다.
     
    사실상의 신분제와 세습제는 시장경제의 퍼포먼스를 저하시킨다. 또 코인의 등락에 팔려있는 정신에 노동의욕이나 창의나 혁신이 생길 리 없다. 노동만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으니, 다들 아이 낳기를 꺼리고 그 결과 생물학적 재생산마저 위협받게 됐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다.
     
    평등이냐 공정이냐
     
    이 위기에 여당의 주자들은 대증요법이나 남발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는 대학 안 간 청년에게 1000만 원의 ‘해외여행비’를, 이낙연 전 대표는 전역자에게 3000만 원의 ‘사회출발자금’을, 김두관 의원은 모든 청년에게 5000만 원의 ‘기본자산’을, 정세균 전 총리는 신생아에게 1억원짜리 ‘적립통장’을 마련해 주겠단다.
     
    전형적인 진보의 평등주의 정책이다. 이를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재원을 마련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세금을 통한 재분배도 국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시장의 실질적 불공정에서 빚어지는 불평등을 사후적으로 완화하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데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 반란을 일으킨 젊은 세대는 진보의 평등주의를 믿지 않는다. 그 어느 세대보다 능력주의의 성향이 강한 데다가, 평등을 외쳐온 진보의 위선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가 이른바 ‘기본’ 시리즈를 슬쩍 뒤로 젖혀둔 것은 그에 대한 호응이 뜨뜻미지근했기 때문일 게다.
     
    해외여행을 다녀온들 학력에 따른 차별이 사라지는가. 사회출발자금을 받은들 젠더가 평등해지는가. 그 돈을 받은들 아무리 일을 해도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젊은 세대는 게임의 결과를 사후적으로 교정하는 것보다 게임의 규칙 자체를 공정하게 해주기를 원한다.
     
    삶의 질 개선 요구에 답해야
     
    윤 전 총장이 대권에 도전할 뜻이 있다면,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달라는 대중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 이제 앞으로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자신의 메시지를 내놓을 때가 됐다. 그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은 그의 대답을 고대하고 있다. 더 늦어지면 피로도가 심해질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 국면이 지나면 그의 이름이 상징하는 법적·형식적 공정의 의제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갈 게다. 그러니 자신이 선점한 공정의 가치를 법적·형식적 차원에서 경제적·실질적 차원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공정은 적당히 보수적인 가치다.
     
    부모가 아닌 제 노력으로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도,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보금자리를 마련해 소박하나마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도 사라지고 있다. 일하지 않고 벼락부자가 된 이들에게 ‘벼락거지’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는 얘기다.
     
    남녀가 법적·형식적으로는 동등하다고 해도, 어느 성으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소득과 지위는 달라진다. 설사 반칙과 편법을 뿌리 뽑고 법적·형식적 공정을 완벽히 보장한다 해도, 어느 집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한 개인의 미래는 크게 달라진다. 경제적·실질적 불공정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
     
    국민의 원하는 삶
     
    중요한 것은 좌절한 국민에게 들려줄 정치적 ‘복음’이다. 민주당 주자들은 현금을 뿌리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집권여당의 대표는 졸속으로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90%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문제와 진지하게 대면하는 대신에 사안을 철저히 선거공학으로만 다루려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열심히 일만 하면 삶이 나아질 거라는 바람이 배신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 소박한 꿈을 이루려면 진보적·보수적 정책의 실용적 조합, 그에 대한 정치적 합의와 사회적 대타협, 그것을 끌어내기 위한 통합의 리더십 또한 필요하다. 민주당 정권은 거기서도 실패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슈퍼맨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문제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문제와 진지하게 씨름하고, 필요하다면 야당에 솔직하게 조언과 조력을 구하고, 반대하는 국민까지도 배제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해 공동의 노력에 참여시키는, 그런 평범하게 위대한 정치인을 원한다.
     
    물론 그의 노력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말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실수하기 마련이다.”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그 탓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정직한 정치인에게 국민은 절대로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의 메시지를 듣고 싶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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