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맑고 자유로웠던 그때 그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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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5월이 지나간다. 대개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만, 출가한 나에게는 ‘스승의 달’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이달은 스승 고타마 붓다의 탄생일도 있는데다, 같은 달에 스승의 날도 있으니 겹쳐 생각하기에 좋은 때라 그렇다.
     

    담백하게 살다간 야나기다 선생
    세속적 가치에 물들지 않고도
    스스로 존엄하게 빛나는 삶 살아

    인생을 돌아보면, 내게는 좋은 스승이 많았다. 다른 복은 없어도 스승 복은 그래도 있었는지, 고마운 분들이 참 많다. 우선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케 한 스승, 붓다를 알게 된 것도 큰 복이요, 은사스님을 만난 것도 큰 복이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이제는 노보살이 되어 제자의 법문을 듣고 합장해주니, 40년 가까운 사제(師弟) 인연 또한 큰 복이다. 그밖에 내면의 자유를 키울 수 있게 이끌어준 수많은 선지식들도 마찬가지로 감사의 복전(福田)이다. 오늘은 그 많은 스승 가운데 한 분을 마음속에서 꺼내보고자 한다.
     
    일본 불교학자 가운데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1921~2006)이라는 선생이 있었다. 생전에는 한국 스님들과 교류도 많았고, 특히나 해인사를 좋아하여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해인사로 출가해 팔만대장경을 연구하고 싶다’던 바로 그분!
     
    야나기다 선생은 서양에 불교를 소개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선(禪)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자신만의 독자적 견해로 선을 철학적·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해 새로운 선불교 시대를 이끈 세계적 불교석학이다. 이런 분과 인연된 것이 내게는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대학자에게서 나는 선학(禪學)을 배운 것이 아니다. 그분이 주도하는 공부모임에 몇 번 참석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일본어가 서툴러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선생께 감동받은 것은 그분의 고상한 생각과 맑고 간소한 일상생활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부터다.
     
    옛 선승이 이르기를, ‘명리를 좇지 않고 가난을 염려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금도 눈에 선한 풍경이 하나 있다. 무릎을 꿇고 정좌를 한 노학자, 고개를 살짝 떨구고 상대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는 자세, 겸손한 언행과 다다미 위에 놓인 푸른 말차 한 잔, 빼곡하게 쌓인 책과 집안 가득한 고서와 묵향.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야나기다 선생의 부인은 일본에서도 꽤 유명한 다도선생이라, 갈 때마다 근사한 다완에 귀한 차를 얻어 마시곤 했다. 그러나 그날은 부인이 외출했다고 해서 ‘그 맛난 차를 오늘은 못 마시겠구나’ 했는데, 내 눈빛을 읽었는지 선생께서 직접 차를 내주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미각이 둔한 것인지, 존경하는 선생이 준비해준 차여서 그런지, 설렁설렁 휘저어 내어준 말차 맛이 기가 막혔다. 다도선생인 부인이 내준 차보다 훨씬 담백하고 향기로워 깜짝 놀랐다. 눈이 휘둥그레 커진 내 얼굴을 보고는 빙그레 웃는 선생의 미소란, 마치 만화책에나 나올법한 순수한 할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왜 이렇게 맛있는 거냐고 여쭈니, 선생은 손을 내저으며 그저 모든 격식을 떠나 대충 만든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며 미소 지었다. 그래, 그렇지. 어떠한 형식도 격식도 차리지 않아 더욱 차 맛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자꾸만 더해가는 것이 아니라, 빼고 내려놓고 비워두어야만 얻을 수 있는 기쁨이란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야나기다 선생의 이름과 책을 접할 때마다 동시에 떠오르는 풍경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선생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담백하고 고상한 침묵 속으로 나를 이끈다. 어쨌든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을 예견하셨는지, 대문 밖에서 멀어져가는 이국의 승려를 하염없이 고개 숙이며 배웅하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다.
     
    평소 어설픈 허영심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비추어볼 때, 선생의 모습은 군더더기 없이 맑았다. 학자로서의 이름은 높으나, 명리와는 관계없는 듯 초연하게 사는 모습은 더 고귀하였다.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차 한 잔 내는 것조차 시간을 가지고 노는 듯 자유롭고 평온한 그 모습. 물론 그분이 젊은 시절 출가자였기에 더 친근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불교에서는 사제지간이 되려면 1만겁(劫)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한다. 1겁도 아니고 1만겁이라니. 야나기다 선생과는 글쎄…. 그 정도의 인연은 아니겠지. 그러나 그분이 준 영향은 분명하다. 선생처럼 고아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그분 덕분에 세속적 가치에 물들지 않고도 인간은 스스로 존엄하게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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