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가성비 찾는 ‘스마슈머’ 덕분에 재고·리퍼 시장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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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리몰 신상돈 대표

    김동호 논설위원

    건축은 철저한 기획에서 출발한다. 교회의 특성을 알아야 교회를 짓고, 절을 지을 때는 절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학창 시절 이런 훈련을 5년간 받은 한 청년은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창업도 건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업 아이템을 정한 뒤에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선별해서 조달한다. 이에 필요한 인력을 갖추고 판매 채널을 구축해야 모든 준비가 끝난다.
     

    식품·화장품·가전 재고 모아 판매
    똑똑한 소비자들 제품 이해력 높아
    서울 강남구·중구 이용자 가장 많아
    고가품 아니면 가장 싼 것 찾는 추세

    국내 대학의 건축학과는 2000년대 초부터 5년 과정으로 수강 기간이 늘어났다. 외국의 추세에 맞춘 것으로 이 정도는 돼야 현업에서 적응력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 청년은 건축사 사무실에서 잠깐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다른 현실에 직면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창업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5년간의 건축 기획 훈련을 통해 일머리를 구체화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는 구석은 있었다. 대학생 때 수학 과외를 하면서 강사와 수강생을 연결하는 플랫폼에서 느낀 불편함이 사업 아이템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자본금 100만원으로 대학생·고등학생 과외 연결 플랫폼 사업을 시작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대학 탐방과 대학생 멘토링 연결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마침 인터넷이 본격화하던 때였다. 생각보다 온라인에서 뭔가 기회가 있다고 봤고 세상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이때 동시에 건강식 전문 쇼핑몰을 열었다. 개인적인 관심이 있던 건강식(귀리로 만든 시리얼 뮤즐리)으로 출발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식품 수입업체로부터 재고 할인행사 제품을 온라인으로 팔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유통기한이 지나 백화점에 납품하지도 못하니 1+1의 반값으로 제공해준다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경험이 쌓이면서 세 번째 창업에서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떠리몰’을 운영하는 신상돈(39) 핌아시아 대표 얘기다.
     

    100만원으로 창업해 올해 매출액 400억원을 바라보는 ‘떠리몰’ 창업자 신상돈 대표. 대기업이나 공무원 아니어도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상선 기자

    100만원으로 창업해 올해 매출액 400억원을 바라보는 ‘떠리몰’ 창업자 신상돈 대표. 대기업이나 공무원 아니어도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상선 기자

    재고를 어떻게 판다는 건가.
    “식품이 대표적이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섭취하는 데는 문제가 안 되는 식품이 많다. 일정한 시점까지 판매해야 한다는 기준이 유통기한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그 기간이 짧으면 납품을 받지 않는다. 예컨대 유통기한 6개월 식품이 출시되고 3개월 지나면 유통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로 짧아진다. 잔존효율이 50%로 떨어진다. 이런 제품은 땡처리되기 쉽다. 저렴하게 판매되거나 아예 폐기된다. 공급자는 제값을 못 받는다. 떠리몰은 이런 제품을 확보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준다. 고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고 공급자는 어느 정도 원가를 회수한다.”

     

    어떤 제품이 주로 거래되나.
    "식품이 많고 화장품·건강식품·반려동물 관련 제품이 주류다. 시즌이 지난 의류와 가전제품도 늘어나고 있다. 연차 재고라고 하는데 2, 3년이 지난 과년 차 제품도 있다. 마트와 백화점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 시즌 오프 제품이거나 전시 제품 등을 점검해 내놓은 리퍼비시(리퍼·refurbish) 제품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사업 규모는 어떻게 되나.
    "직원은 현재 47명이다. 상품을 조달하는 상품기획자(MD), 고객운영팀, 경영지원팀으로 나뉘어 있다. 직원 평균 30대 초반으로 젊다. 매출액은 2019년 100억원을 넘어섰고, 올해 400억원이 예상된다. 온라인 회원이 100만 명에 달해 현재 추세로는 3년 내 1000억원 달성이 목표다. 흑자도 내고 있다.”

     

    매입과 위탁 비중은 어떤가.
    "현재로는 매입과 위탁판매가 3대 7인데, 차츰 자체 매입을 확대하고 있다. 저온 식품은 남양주 냉장센터를 활용하고, 배송은 주로 3자 물류계약을 활용하고 있다.”

     

    대기업 놔두고 공무원 안 해도 좋은 길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2010년 부산에서 병장 제대하고 유학을 포기한 뒤 바로 시작했는데 고객 반응이 빨리 왔다. 온라인으로 하면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됐다. 초기에 창업했던 다른 2개 사업은 지금 떠리몰에 전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건축학 전공자의 창업이 흥미롭다.
    "건축은 인문학적 이해가 많이 필요하다. 건축물마다 특성을 알아야 하고,  준비 과정에서 리서치와 기획을 거쳐야 하는데 창업 과정과 비슷하다. 자연스럽게 회사 입사보다는 나도 창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창업과 건축이 다른 점도 있다. 기획은 공통점이지만 건축에는 운영이 없다. 초기  창업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경영을 시작하면 채용부터 거래처·고객관리까지 완전히 새로운 일들이 기다린다. 이런 경험은 하나씩 깨져가면서 배우고 있다.”

     

    창업 비용이 부담되지 않았나.
    "사업을 구체화하는 데까지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쇼핑몰 구축에 필요한 간단한 솔루션 구매비 정도가 전부였다. 처음부터 제품을 많이 확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제품을 조달하고 공급사에 매입비를 지급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현금 회전이 빠른 사업 분야라서 그렇다. 지금은 볼륨을 키워나가면서 마트 판매 제품은 모두 팔고 있다. 종류는 1만4000개에 달한다. 한 번이라고 거쳐 간 품목은 10만개 정도 된다.”

     

    쿠팡이나 네이버가 e커머스의 종합 플랫폼이라면 어떤 차이가 있나. 중고나라·당근마켓·번개장터와는 어떻게 다른가.
    "중고 판매 플랫폼과는 구별된다. 합리적 소비라는 점은 중고 판매와 같다. 하지만 떠리몰은 중고가 아니다.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하자가 있어 문제를 해결한 리퍼 제품이거나 이월제품을 판매한다. 정상제품이라는 얘기다. 사실 떠리몰 사업모델의 원조는 항공권 땡처리닷컴이나 가전제품을 파는 AJ전시물, 못난이 농산물이다. 가성비 있게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게 특징이다.”

     
    명품 사거나 재고 사는 소비의 양극화
     

    스마트한 소비자, ‘스마슈머’가 많아진 건가.
    "의외였던 것은 서울 강남구와 중구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다는 사실이다. 소득 양극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명품처럼 굉장히 비싸게 사거나 떠리몰 제품처럼 매우 싸게 사는 소비 현상이다. 동일한 소비 주체가 이런 선택을 한다. 어중간한 것은 점점 팔기 어려워진다. 무심코 보면 저소득자가 이용자일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는 얘기다.”

     

    어떤 사회문화적 현상이라고 보나.
    "소비자들이 ‘왜 저렴한지 이해하고 산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직 유통기한이 남아 있고 하자가 해소된 리퍼 제품이거나 규격 외 농산물이란 걸 알고 산다. 고객 연령대를 보면 젊은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주방용 가전이나 에어 프라이·가습기·공기청정기 같은 소형가전은 시즌 오프 제품도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런 소비의 양극화는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가구 형태를 보면 자녀 있는 3~4인 가구 아파트 주문량이 가장 많다. 30·40세대가 주 타깃이다. 자녀가 생기면서 소비패턴이 명확히 변해 합리적으로 가게 된다.”

     
    ‘이건 이래서 싸게 샀어’ 입소문 퍼져
     

    온라인의 영향도 크겠다.
    "굳이 마케팅을 많이 안 한다. 그래도 온라인 덕분인지 바이럴과 입소문이 많다. 유튜브에도 이용 후기가 많다. ‘이건 이래서 저렴하게 샀어’라는 식이다. 일종의 지식 공유하는 것처럼 전파되고 있다. 결국 연령을 초월해 소비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저 심리는 같다. 소득이 늘어날 희망은 없고 소득수준은 정체되고 있다. 같은 1만원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쓰길 원한다. 힙하고 트렌디한 소비가 대세다. 재고를 유통하면 ESG(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경영)에도 일조하는 셈이다.”

     

    화장품도 팔린다니 의외다.
    "화장품도 요즘은 플랫폼 사업이다 보니까 생산은 물론 수입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시장에 제품이 너무 많은 상태다. 기초와 색조 중 매출액 볼륨은 기초가 더 크다. 피부 트러블에 대한 불안감이 있겠지만, 유통기한이 남아 있으면 문제없다. 오히려 소비자는 성분을 더 꼼꼼히 본다. 유해성분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금 거래 데이터가 많이 쌓이고 있다. 이것을 잘 활용해 (전자상거래에서 출발한 알리바바가 금융을 하는 앤트그룹을 만든 것처럼) 금융까지 진출하려고 한다. 판매 의뢰가 들어온 제품 가치를 평가할 때 금융 데이터가 많이 쌓인다.”

     
    떠리몰의 회사 이름은 ‘핌아시아’다. ‘아시아에서 피어나다’는 의미라고 한다. 보기 드문 건축학도의 창업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길 기대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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