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NHK가 일본 조선화 원흉”…법으로도 못 막는 日 기업의 ‘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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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9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아침 보도프로그램에서 미용용품·서플리먼트 기업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吉田嘉明·80) 회장의 인종차별 발언과 관련한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이 나가기 직전 DHC 홈페이지에는 회장 명의의 이런 글이 올라왔다. “NHK는 간부·아나운서·사원 대부분이 코리아(한국·조선)계로, 일본의 조선화(化)의 ‘원흉’이다.”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시행 5년
    혐한 시위 10분의 1로 줄었지만
    DHC 등 ‘혐한 기업’ 새 문제로 등장
    “소비자들 적극적인 문제제기 필요”

    요시다 회장의 주장은 근거도 없고 황당했다. “NHK에 출연하는 학자·연예인·스포츠 선수의 상당수가 코리안”이라며 “일본의 중추를 한국계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이같은 발언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회사 측은 이에 대한 어떤 사과도 내놓지 않고 있다.  
     

    2017년 일본의 우익단체 회원들이 도쿄 신주쿠의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인근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일본의 우익단체 회원들이 도쿄 신주쿠의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인근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에서 2016년 6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정식 명칭 :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조치 추진에 관한 법률)이 발효된 지 5년을 맞았다. 하지만 일본 내 헤이트 스피치는 표현 방식이 변했을 뿐 줄어들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사이 새롭게 표면화한 것이 DHC 등과 같은 기업들의 헤이트 스피치 문제다. 기업 총수가 기업의 홈페이지나 영업장 등을 통해 혐오 발언을 퍼뜨리는 경우, 이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점도 기존 법의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26일 일본 국회 참의원회관에서는 관련 법 시행 5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로오카야스코(師岡康子) 변호사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을 통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한 해에만 100여건에 이르렀던 ‘혐한 집회’가 10분의 1까지 줄어드는 등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관련 시민단체 집계에 따르면 2014년 120건까지 늘었던 혐한 집회는 법안이 발효된 2016년에는 42건으로, 2019년에는 21건, 지난해 9건까지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와사키시 헤이트 스피치 금지 조례 성립을 위해 노력한 활동가 최강이자씨가 지난 2016년 6월 혐한 시위에서 항의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와사키시 헤이트 스피치 금지 조례 성립을 위해 노력한 활동가 최강이자씨가 지난 2016년 6월 혐한 시위에서 항의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은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대상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재특회(在特会) 등 극우단체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처벌 규정이 없는 ‘이념법’이지만 “헤이트 스피치는 위법”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다. 여러 지자체가 이 법에 근거해 혐한 집회 허가를 거부했다. 2019년 말에는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가 헤이트 스피치를 반복하는 개인, 단체에 대해 최대 50만엔(약 507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지자체 조례에 실제 처벌 규정을 담은 것은 가와사키시가 처음이었다.
     
    이 법으로 인해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공개적인 헤이트 스피치는 줄었지만, 인터넷 속 익명 사용자들이 무차별로 쏟아내는 차별 발언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러나지 않았던 ‘기업의 헤이트 스피치’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당당히 혐한 메시지를 발신할 정도로, 일본 사회 내 반한 감정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일본기업의 험한 역사 왜곡 사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일본기업의 험한 역사 왜곡 사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표적인 혐한 기업인 DHC의 요시다 회장은 2016년부터 홈페이지 등에 “자이니치(在日·재일한국인·조선인)는 모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등의 혐한 발언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느닷없이 경쟁사인 산토리에 대해 “광고모델이 모두 한국계”라며 “그러니 ‘존토리’라고 야유당한다”고 비난했다. ‘존토리’는 한국계를 멸시하는 표현인 ‘존(チョン)’에 산토리의 ‘토리’를 합성한 말이다.  
     
    2019년도 매출액이 1104억 4400엔(약 1조 2000억원)에 달하는 상장기업인 후지주택도 사원 교육이라며 “한국은 날조하는 국가” “자이니치는 죽어라” 등의 내용을 담은 문서를 수년간 직원들에게 배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에서 일하던 재일 한국인 직원이 2016년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자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며 비방하기도 했다.  
     
    무려 5년의 법정 싸움 끝에 지난해 일본 지방법원은 인격권 침해 등으로 후지주택과 이 회사 이마이미쓰오(今井光郞) 회장에게 위자료 100만엔(약 1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마이 회장은 우익 사관을 담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 채택 운동에 앞장선 대표적 우익 경영인이다. 도쿄에만 60여개 호텔을 운영하는 아파(APA)호텔의 모토야 도시오(元谷外志雄·78) 사장도 자신이 쓴 극우 서적을 호텔에 비치해 판매해 논란이 됐다.  
     
    전국적인 사업망을 가진 기업에 의한 헤이트 스피치의 경우 사회적 파급력은 크지만 지방 조례에 근거한 처벌 등은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혐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야스다고이치(安田浩一)는 “회사 측은 사주의 의견일 뿐이라며 선을 그으려 하지만, 회사 홈페이지를 통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기업의 문제”라며 “이런 회사들의 존속을 허락해도 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아닌 중앙 정부 차원에서 개인·단체·기업 등의 차별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처벌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6일 일본 참의원회관에서 열린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시행 5주년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회의원들, [연합뉴스]

    지난 26일 일본 참의원회관에서 열린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시행 5주년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회의원들, [연합뉴스]

    기업의 문제인 만큼 소비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DHC의 경우, 현재 일본 내 21개 지자체와 재해 발생 시 영양제·화장품을 공급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있는데 이 중 5개 지자체가 DHC의 차별 발언을 비판하며 협정 중단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보도됐다. ‘인종차별철폐기본법 추진 의원연맹’의 아리타 요시후(有田芳生) 입헌민주당 참의원은 “지자체들이 혐오 발언 기업과 제휴하는지 여부가 앞으로 유권자들의 평가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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