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영준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의 변신, 표변일까 혁면일까

최근 게시물 게시판 뉴스이슈 [예영준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의 변신, 표변일까 혁면일까

  • 지난달 21일 열린 한 ㆍ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뉴시스]

    지난달 21일 열린 한 ㆍ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뉴시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민주적’ 지도자로 추켜세운 발언이 있다. 2017년 12월 문제의 ‘높은 산, 작은 나라’ 발언 하루 전날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께서 민주적 리더십을 제시했다”고 한 것이다. 공산당 19차 대회에서 1인 권력을 굳혀 ‘시황제’란 별칭을 얻은 직후의 일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던진 의문
    기존 친중 노선 과연 버린 것일까
    회담 뒤 신뢰 깎는 언행 자제해야

    외교 수사도 가려가며 해야 한다. 그 무렵 문 대통령과 이심전심이라는 노영민 당시 주중대사는 시 주석을 만나는 자리에서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 썼다. 조선 사대부가 중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정을 다짐하며 쓰던 성어다.  
     
    열흘 전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보면 문 대통령이 그때 그 말을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다. 공동성명은 중국이 싫어할 말로 가득차 있다. “한ㆍ미는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고 했다. 누구를 가리키는지 뻔한 표현이다. 예상을 넘는 문재인 대통령의 변신에 설왕설래가 분분하다. 항간에는 싱가포르ㆍ판문점 선언을 성명에 넣는 데 집착한 나머지 미국이 원하는 표현들을 대폭 수용하는 바터(맞바꾸기)를 했다는 분석이 그럴듯하게 나돈다. 굵직굵직한 외교 협상에 관여했던 전직 원로 외교관 중에도 그렇게 보는 사람이 여럿이다. 원래 외교 협상의 속성이 서로 원하는 것을 맞바꾸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바터를 받아들이는 바탕에는 지난 4년 동안의 외교 경험 축적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바뀐 문재인 정부의 현실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얘기다. 노무현 정부 역시 임기말로 가면서 똑 같은 경향을 보였다. 아마도 한ㆍ미 공동성명은 이런 몇몇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어찌 됐건 대한민국이 서야 할 좌표를 보다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다.    
     
    그런데 회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부 당국자들이 그 소중한 성과를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 같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내세우는 성과는 유독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에 집중돼 있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싱가포르 회담을 비판했지만, 그것은 행태에 관한 것이다. 북한 핵 포기와 미국의 체제 보장, 북ㆍ미 관계 정상화를 담은 싱가포르 선언 자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판문점 선언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의 관건은 목표를 향해 어떤 경로를 밟아 나갈지의 방법론에 있다. 이 대목에서 이번 회담은 진전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은 대북제재의 충실한 이행을 재확인했고, 말만이 아닌 진정성 있는 행동 조치를 협상의 전제로 내걸었다. 요컨대 미국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종전 입장에서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들을 한국 정부가 이뤄낸 성과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지나친 아전인수다.  
     
    다시 반복하지만, 이번 회담의 진짜 성과는 판문점 선언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한술 더 떴다. 대만해협의 안정을 거론한 것은 한반도 평화안정이나 마찬가지로 원론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누가 이 말에 동의하겠는가. 공동성명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나온 이런 말들은 스스로의 신뢰를 깎아먹을 뿐이다.  
     
    한국에서 표변(豹變)이란 단어는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되지만 원전을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 주역(周易) 혁괘(革卦)편에 ‘대인호변 군자표변 소인혁면 (大人虎變 君子豹變 小人革面)’이라 했다. 호랑이가 털갈이하듯 대인은 세상을 혁신하고, 표범 무늬가 가을에 선명해지듯 군자는 부단히 새로워져야 하는데, 소인은 얼굴만 바꾸고 본심은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태까지의 정황으로 보건대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호변의 결과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변신은 표변 아니면 혁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진실은 무엇인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Source link

    신고하기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