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위리안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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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안치란 거주의 제한을 두는 조선시대 유배형벌이다. 주로 왕족이나 고위관리에게만 해당했다. 고향에서 지내는 본향안치, 섬에서 지내는 절도안치, 변방에 지내는 극변안치, 가시 많은 탱자나무로 둘러싼 집 안에서만 지내는 위리안치(圍籬安置) 등 종류도 다양하다.
     
    산자의 무덤이라는 위리안치는 가장 중죄인에게 내려졌다.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외부인 출입도 금지한다. 다른 귀양살이에서는 손님을 맞거나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제약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꽤 중한 형벌이다.
     
    폭정을 일삼던 폐주 연산군은 1506년 강화도 교동에 위리안치됐으나 두 달 만에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도 교동에 위리안치됐으며 병자호란 이후에는 제주도로 옮겨져 1641년 생을 마감했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 윤상도 옥사 사건으로 제주도에 위리안치돼 8년을 보낸다. 유배 중 주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추사는 아들에게도 독서를 권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지난해 아무런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세한도는 추사가 유배 생활 중 남긴 작품이다. 옛정을 잊지 않고 어렵게 책을 구해 가져다주는 제자 이상적의 고마움을 세한(歲寒, 겨울에 홀로 푸른 소나무)에 비유한 역작이다.
     
    회고록을 발매한 조국 전 장관이 최근 SNS에 글을 올렸다. 자신을 ‘위리안치의 극수(棘囚)’라고 표현하며 “이 책을 쓴 것은 정치활동을 하기 위함도 아니고 현재의 정치과정에 개입하기 위함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태를 정확히 기록하고 최소한의 해명과 소명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책 발매 소식이 알려지자 “다섯권 주문했다”, “초판 200쇄쯤 갔으면 좋겠다”는 열렬한 반응이 여권에서 터져 나왔다. 여권 대선주자들도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가슴이 아리다”(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재·보궐 선거 패배 직후 조국사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당내에서 흘러나온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갑자기 등장한 회고록과 여권의 반응에 민심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조 전 장관이 정말로 위리안치의 극수와 같은 심정으로 지내왔다면 책을 쓰기보단 추사처럼 독서에 더 매진해야 하지 않았을까? 가시 울타리 속 ‘조국의 시간’은 아무래도 민심과 영 거꾸로만 흘렀던 모양이다.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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