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돌아왔다···조국을 치워야 진보 다시 세울 수 있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최근 게시물 게시판 뉴스이슈 “좀비가 돌아왔다···조국을 치워야 진보 다시 세울 수 있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조국이라는 유령이. 한동안 잠잠했던 그가 ‘회고록’을 손에 들고 요란하게 귀환했다. 책의 겉장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불씨는 살아 있었다. 그 불씨가 목하 지지자들 사이에 큰 불길로 번질 조짐이다.
     

    회고록 출간으로 ‘무덤에서 걸어나온 좀비’ 조국, 불씨 재점화중
    자신이 초래한 공적 책임엔 눈 감고, 가족의 ‘사적 피해’만 내세워
    유죄받은 11개 혐의 적법했다면 법정에선 왜 묵비권 행사했나
    폐허 위에 진보 다시 세우려면 조국의 망령을 무덤으로 보내야

    성(聖) 가족의 피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 내려 가는 심정이었다.” 법을 어겨 처벌을 받은 게 예수의 보혈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그가 어디 무고한 희생양 행세를 할 처지이던가. 정경심 교수는 기소된 15개의 혐의 중 11개가 유죄로 인정돼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 혐의들 하나하나가 결코 가볍지 않다.
     
    참고로 시험문제를 유출한 숙명여고 교감은 징역 3년을 받았다. 그의 쌍둥이 딸도 당시 미성년자였음에도 기소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반면, 위조문서를 행사하고 방송에 나가 허위 인터뷰까지 한 조민은 성인인데 기소도 되지 않았다. 외려 특혜를 받은 셈이다.
     
    가족이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실은 본인이다. 자기와 제 가족이 한 일을 몰랐을 리 없었을 터. 임명을 포기했더라면 비위의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고 그냥 묻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돌파를 선택했고, 그 결과 자기가 지금 ‘멸문지화’라 부르는 그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불법은 없습니다.” 청문회 준비과정에서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고 들었다. 이는 치명적 오판으로 드러났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그 스탠스를 유지한다.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된 11개 혐의 모두 ‘적법이었고 합법’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왜 법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는가.
     
    회고록인가 낙서장인가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가족의 피’라는 표현은 매우 자극적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피로써 구원을 얻었듯이, 그의 지지자들은 성(聖) 가족의 피로써 공수처와 검수완박을 얻었노라고 믿을 게다. 인쇄도 되기 전에 책이 벌써 4만 부나 팔렸단다. 흘러간 줄 알았던 조국의 시간이 홀연히 되돌아온 것이다.
     
    책의 내용은 ‘회고록’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 자신의 페이스북 글과 페이스북 친구들의 격려사들, 그리고 관변언론의 기사들을 복사해 붙인 것에 가깝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한동훈 검사장을 서울중앙지검장 시켜 달라고 했다는 고자질을 빼면, 대부분 주관적 추측과 망상에 근거한 검찰 음모론.
     
    “대통령 2명을 감옥에 보낸 윤석열은 조국 수사와 검찰개혁 공방이 계속되는 어느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잠재적 피의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은 대통령 숙원사업, 일종의 손타쿠(忖度·남의 마음을 미리 헤아린다는 뜻의 일본어) 사건. 법치국가에서 대통령은 ‘잠재적’으로라도 ‘피의자’가 되면 안 되나?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은 책임을 검찰에 전가하기 위해서다. “내 흠결과 무관하게 검찰의 문재인 정부 총공격과 이에 대응하는 여권 지지층의 ‘전쟁’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즉, 꼭 자기가 아니더라도 검찰은 정권을 공격했을 터이니, 사회분열이 내 탓이라 하지 말라는 얘기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일각에서 4·7 재·보궐선거 참패가 조국 탓이라고 한다. 지금도 ‘기승전-조국’ 프레임은 끝나지 않았다. 전직 고위공직자로서 정무적·도의적 책임을 무제한 지겠다. 저를 밟고 전진하길 바란다.” 그가 정말로 민주당이 자신을 밟고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애초에 이런 책은 내지 말았어야 한다.
     
    책이 나오자 선거 참패 후 잠시 반성하는 듯했던 민주당은 바로 과거 모드로 돌아갔다. “조 전 장관이 고난 속에 기반을 놓은 개혁과제, 특히 검찰개혁의 완성에 힘을 바치겠다.”(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는 글귀에 자식을 둔 아버지로,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 가슴이 아리다.”(정세균 전 국무총리)
     
    “조국의 시련은 개인사가 아니다. ‘조국의 시간’을 우리의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추미애 전 법무장관) 이 모두는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른바 ‘대깨문’의 표를 얻기 위한 발언이다. 대선 주자 중 유일하게 이재명 경기도지사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찌감치 1위를 굳히고 중도층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대권 주자들마저 이러니 자기를 밟고 가라고 한들 민주당에서 감히 누가 그를 밟겠는가. 그러니 그 말은 사실 ‘어디 한번 나를 밟고 지나가 보라’는 협박에 가깝다. 한때의 유력한 차기 주자가 지금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당의 다리를 끌어당기는 물귀신 같은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팬덤 정치의 업보
     
    1심 판결문을 통해 범죄의 사실과 유죄의 증거들이 낱낱이 공개됐다. 그로써 조국과 지지자들의 억지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이번 재·보선의 참패를 통해 조국 수호의 정치적 효능도 검증이 끝났다. 이를 보고도 이성적 판단을 못 한다. 조국 수호가 일종의 종교적 신앙이 되어버린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적 필요에서 현실을 왜곡했다. 거기에 세뇌된 지지자들은 검찰개혁 국면에서 그들의 강력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지금 그들은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그 세뇌가 얼마나 집요하고 강력했던지 법원의 판결과 선거의 결과를 보고도 그들은 아직 망상을 버리지 못한다.
     
    그 망상을 깰 유일한 인물은 오직 조국 자신뿐. 즉 그가 1심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깨끗이 인정하고, 자신이 그동안 거짓말을 해 왔다고 고백하고, 지지자들에게 이제 자신을 밟고 가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일을 해야 할 그 자신이 누구보다 깊숙이 그 망상에 빠져 있다는 것.
     
    망상의 공동체를 해체할 수 없다면 선이라도 그어야 한다. 지금 그 일을 할 사람은 송영길 대표. 하지만 최고위부터 지지자들까지 당이 강성친문에 장악당한 상태라, 대표라 한들 그 비합리적 열정의 덩어리와 선을 긋는 게 쉽지가 없다. 그래서 결말을 빤히 알면서 몰락해 가는 것이다.
     
    조국이라는 재앙
     
    조국의 시간은 고통스러웠을 게다. 하지만 거짓은 가졌던 연민의 정도 거두게 하는 법. 그 고통이 세인의 연민을 사려면,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의 시간에 그만 고통스러웠던 것도 아니다. 1심 판결문엔 그가 “진실을 말하는 이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적혀 있다.
     
    그는 국민만이 아니라 진영도 분열시켰다. 과거의 동지들이 얼굴을 마주보기 민망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갈라진 이들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없을 게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처럼 조국 사태 이후에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과거의 동지로 돌아갈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조국은 진보적 가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그 어떤 진보적 기획도 이제는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됐다. ‘평등’이라는 말은 아예 입에 담기조차 어려워졌다. 두려운 것은 그 틈에 불어닥치는 ‘반동’의 광풍이다. 무한경쟁의 찬양, 여성주의 공격, 이주민 혐오 등 저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 진보의 재생산 구조는 오래전에 끊겼다. 시민단체와 진보 매체는 어용이 되었고, 진보적 지식인들은 조국·윤미향·박원순 사태를 거치며 제 존재의 바닥을 드러냈다. 이는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사회적 발언의 힘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조국은 진보의 재앙이었다.
     
    폐허 위에 진보 세우기
     
    이렇게 당과 진영과 나라를 초토화해 놓고 그는 ‘가족의 피’를 말한다. 자신이 초래한 사회적 폐해에 대한 ‘공적 책임’엔 눈을 감고, 자신과 가족의 탐욕이 초래한 ‘사적 피해’를 내세운다. 공인으로 져야 할 책임을, 자식을 둔 아버지,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 당한 아픔으로 덮으려 한 것이다.
     
    제목은 ‘조국의 시간’이나 내용은 ‘윤석열의 시간’이다. 책이 온통 윤석열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인과관계가 뒤집혀 있다. 윤석열이 어디 정치하려고 그를 수사했던가. 그를 수사하다가 정치로 내몰렸지. 그를 대선 주자로 만들어준 것은 조국 전 장관 자신이었다.
     
    조국은 ‘개인’이 아니다. 진영이 집단으로 그를 옹호했다. 그가 개인을 넘어 한 세대의 집합적 표상이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조국이다’라는 구호는 참이다. 즉, 다들 다소간은 조국처럼 살아온 것이다. 안 그렇게 살았던 이들마저 구호를 따라 외치며 점점 조국이 되어갔다.
     
    이 폐허 위에 진보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조국의 망령을 무덤으로 보내야 한다. 이 도돌이표 유령을 치우지 않으면 진보는 영원히 제자리걸음을 해야 할 게다. 그런데 아무리 묻어도 망령이 자꾸 되돌아온다. 무덤에서 걸어 나온 좀비를 부활한 예수로 아니, 답답한 일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Source link

    신고하기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