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백신 되치기’ 경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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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승욱 정치팀장

    대한민국이 ‘백신 보릿고개’를 지나던 4월~5월 초·중반의 민심은 정말 흉흉했다. 날짜까지 통보받았던 화이자 백신 접종이 연기되면서 어르신들의 분노가 거셌다. 정부에 대한 반감은 여러 형태로 표출됐다. 야당과 관가에 퍼졌던 ‘외교부 공무원 화이자 특혜 접종설’도 그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의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수행원들은 미 측 방역 방침에 따라 화이자를 맞아야 하는데, 수행단 명단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교관들은 손만 들면 맞는다더라”는 게 요체다. 필자도 국회 관계자들과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들에게서 이런 얘기를 직접 들었다.
     

    흉흉했던 ‘백신 민심’에 변화 조짐
    야 지지층 “작년 총선처럼 당할라”
    ‘반대만 하는 야당 정치’ 자성론도

    특히 “미국에 가지 않는 간부들까지 화이자를 맞았다. 고위층의 모 씨는 5월 7~8일께 2차 접종까지 마쳤는데, 부하 직원까지 같이 맞았다고 한다”며 구체적인 간부의 이름과 백신 접종일까지 흘러다녔다. “노인들은 없어서 못 맞는 화이자를 미국도 안 가는 외교관들이 맞는 건 너무 큰 특혜 아니냐”고 격분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떠나 부처 내부의 내밀한 사정이 밖으로 새 나와 공분의 대상까지 된 걸 보면 ‘백신 보릿고개’ 속 민심이 얼마나 험악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대한 불신도 끝이 없었다. “유명한 감염병 전문가가 정부부처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AZ를 접종받아도 안전한지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내가 특별히 여러분들께만 말씀드리겠다. 가급적 맞지 않는 게 좋다’고 답했다”를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혹세무민의 가짜뉴스인지, 천기누설인지 알 수 없으나 불안한 국민들의 귀는 이런 정보에 더 쉽게 끌리는 법이다.
     

    서소문 포럼 6/2

    서소문 포럼 6/2

    ‘백신도 못 구해오는 무능한 정부’,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래서 야당에 백신 이슈는 청와대와 정부를 궁지로 몰 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다. 백신 선진국들에 비해 접종이 늦어지면서 “백신은 뒷전, K-방역만 자랑하다 빚어진 참사”라는 야당의 주장이 잘 먹혔다. 정부가 말하는 ‘11월 집단 면역’을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었다. LH사태와 부동산 정책 실패에 가려졌지만 4·7 재·보선 여당 참패도 백신을 빼곤 논하기 어렵다. 정치권에선 “정부가 공언해온 11월 집단면역이 물 건너가면 내년 대선은 해보나마나 야당이 이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런데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리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조짐이다. 지난달 22일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이 정상화된 게 가장 컸다. 이후 미국의 얀센 백신 100만 명분 추가 제공 등으로 심리적인 안정감도 커졌다. 정부는 ‘상반기 1400만명 1차 접종’으로 목표치를 상향했다. 변이 바이러스 등 아직 변수는 있지만 정부가 11월로 제시했던 집단면역 달성 시기가 어쩌면 조금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기대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일단 본인이 백신을 맞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은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자 야당 지지층은 다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백신문제로 정부를 너무 코너로 몰아세우면 안되겠다. 그러다가 정부 말대로 집단면역이 이뤄지고 코로나가 잡히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대선에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백신 되치기 경계령’이다.
     
    코로나 반사이익을 기대했다가 국정안정론에 되치기를 당했고, 결국 역사에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던 지난해 4월 총선의 악몽을 야당 지지층은 쉽게 잊을 수 없다. 어찌보면 이런 경계령은 ‘반대만 하는 야당 정치’에 대한 자성이자 경고이기도 하다.
     
    다음 대선에서 맞붙지도 않을 현재 권력의 약점만 5년 내내 공격하다 새로운 경쟁자에게 비수를 맞은 경우가 한국 정치사엔 종종 있었다. 김대중(DJ) 대통령의 대항마로 야권을 호령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노무현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은 게 대표적이다.
     
    일주일 전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야당 대표의 발언은 시종 덕담 한마디 없는 돌직구였다. 정권에 대한 혹독한 비판은 있었지만, 수권 정당으로서의 내공이나 통찰력은 찾기 힘들었다. 11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직을 겨룬다는 후보들 사이엔 “반문(반 문재인) 연대를 내가 가장 잘 구축할 수 있다”는 구호가 가장 요란하다. ‘백신 되치기 경계령’을 발령한 지지자들은 “반대만 하지 말고 실력을 키우라”고 주문하는데, 야당의 수준은 아직 지지층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서승욱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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