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시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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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석 사회에디터

    시간은 공평하다. 황제의 1분, 1초는 불가촉천민의 그것에 비해 찰나조차 길지 않다. 그리하여 자연이 부여한 천수(天壽)는 지위고하, 부귀빈천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힘과 시간이 비례하지 않는데 격분한 일부 절대 권력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시간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명을 재촉하는 결과로 귀결됐다.
     
    이처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며,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 부질없듯 시간의 한가운데에 표식을 남겨도 그 시간으로 귀환할 순 없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한 건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였다.
     
    흘러가는 시간을 한 움큼 움켜쥐면 시대가 되며, 시대의 묶음은 역사가 된다. 시대와 역사 역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최근의 한 세기에 한정할 때 시간과 시대, 역사의 불가역(不可逆)성이 한국 만큼 강했던 나라도 드물다. 촛불 혁명은 그 최신 사례다. 촛불 혁명 이후와 그 이전의 시간을 구별하는 가장 큰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현직 대통령의 임기 중 낙마’다.
     
    『조국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이 불편했던 건 저자의 시대착오적 현실 인식 때문이다. 그는 “어느 순간 문재인 대통령을 잠재적 피의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공격했다. 다른 이의 발언을 빌리긴 했지만 “윤 총장이 ‘대통령 2명을 구속한 우리가 문재인이라고 구속 못 할 건 없다’고 말했다”는 주장도 폈다. 감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을까. 현직 대통령과 그 측근의 불법과 비리를 참다못해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이 바로 저자가 그토록 예찬하던 촛불 혁명인데 말이다.
     
    하긴 문 대통령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옛 저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대검 중수부장과 주임검사가 매우 건방졌다”며 뜬금없이 조사자들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피의자에 대한 검사의 건방짐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덕목인데도 말이다. 더구나 그는 탈권위를 핵심으로 하는 ‘노무현의 시간’을, 지근거리에서 함께 거쳐왔던 이다.
     
    새로운 시간과 시대의 가치를 찬양하다가 불리해지면 옛 시간과 시대의 가치를 슬그머니 끌어다 붙이는 식의 자의적·편의적 행보를, 사람들은 ‘내로남불’이라 부른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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