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모든 자식은 소중합니다

최근 게시물 게시판 뉴스이슈 [이상언의 시시각각] 모든 자식은 소중합니다

  • 박완서 작가와 그가 쓴 책『한 말씀만 하소서』의 표지. [중앙포토]

    박완서 작가와 그가 쓴 책『한 말씀만 하소서』의 표지. [중앙포토]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 하십니다. 그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의사 아들 잃은 박완서, 신을 원망
    손정민씨 부친 고통은 더 클 수도
    하지만 친구 A씨의 삶도 생각해야

    박완서(1931∼2011) 작가의 책『한 말씀만 하소서』의 일부입니다. 1988년 8월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 과정을 밟던 26세 청년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박 작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위로 누나 넷이 있습니다. 박 작가는 그해 5월엔 폐암을 앓던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석 달 새 남편과 아들을 잃은 그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충격을 어떻게 넘기고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은 1990년에 나왔습니다. 박 작가가 부산의 큰딸 집으로, 수도원으로, 미국의 막내딸 집으로 전전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쓴 일기 글이 잡지에 실렸다가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입니다. 책에는 서울 올림픽으로 떠들썩한 세상에 대한 분노, 아들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 절대자에 대한 원망,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가는 본인의 위험한 의식이 생생히 기록됐습니다. 심지어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 ‘아들이 내 속을 썩이거나 실망시킨 일을 생각해 내려고 애쓴다. 검부락지라도 잡으려는 노력처럼 처참하게 허우적댄다.’
     
    공교롭게도 손정민씨와 마찬가지로 박 작가의 아들 호원태씨도 의대생이었습니다. 책을 보면 똑똑하고, 성실하고, 착한 청년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엄마가 “남 보기에 좀 더 그럴듯한 과를 했으면 싶구나”라고 말해도 환자의 생명줄 붙드는 일을 하고 싶다며 마취과를 택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동안의 보도를 보면 손씨 역시 공부 잘하고 주변 사람에게 친절한, 잘 자란 청년으로 짐작됩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고통, 그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박 작가는 참척(慘慽)이라고 했습니다. 참혹한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옛글에는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빛을 잃게 할 정도의 상처라는 의미입니다. 은유가 아니라 실화입니다. 유가(儒家)의 경전『예기(禮記)』에 공자의 애제자 자하(子夏)가 자식 상을 치른 뒤 앓다가 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일 것입니다.
     
    손정민씨의 부친은 박 작가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원태씨 변고는 사망 경위(교통사고)가 비교적 분명했던 반면 손씨 경우에는 그의 시신이 왜 한강에서 발견됐는지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일 듯합니다. 
     
    경찰이 고통을 배가시킨 면도 있습니다. 초동 대응이 엉성했습니다. 손씨 시신을 찾은 것은 민간 구조사의 탐지견이었습니다. 함께 있던 친구 A씨의 스마트폰을 찾은 건 환경미화원이었습니다.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4년 새 공무원 10만 명이 늘어난 나라입니다. 
     
    그렇긴 해도 친구 A씨의 삶도 헤아릴 때가 됐습니다. 친구를 잃은 그가 진짜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그의 말을 의심하는 것이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모든 자식은 소중합니다. 타인의 비극을 대중의 관심을 끌어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삼다가 문제가 되자 “콩트 한 편 만든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박완서 작가는 책 끄트머리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략) 나는 요즈음 들어 어렴풋하고도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고통을 함께하는 성숙한 방법은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Source link

    신고하기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