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오병이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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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유명한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밀리언즈(2004)’에는 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에 대한 재밌는 해석이 나온다. 주인공인 7살 데미안의 눈앞에 어느 날 베드로가 나타나, 예수가 5000명의 군중을 빵 5조각과 물고기 2마리로 배불리 먹인 사건의 전말을 폭로한다. 사람들이 사실 제 먹을 음식을 싸 왔는데, 한 소년이 자기가 가진 전부(오병이어)를 나눠 먹으려 내놓는 모습에 뜨끔했다고 한다. 결국 바구니가 돌수록 음식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영화는 일부 신학자의 견해를 그대로 따랐다. 독일 루터교 신학자 하인리히 파울루스(1761~1851)에 따르면 당시 부유한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 왔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덜어주면서 기적이 완성됐다. 현대 신학자 일부도 동의한다. 지난 4월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날의 진실은 알 수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 전 갈릴리 호숫가로 날아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담긴 빵과 물고기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적의 실체가 나눔이었다 해서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내 것을 덜어내는 연대의 마음은, 어쩌면 인간 세상에서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기적인지도 모른다.
     
    정치권에선 소득논쟁이 한창이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의 안심소득-기본소득 논쟁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소득으로 가세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오 시장과 유 전 의원은 어려운 사람에게 더 지원하자는 비슷한 안이다. 반면 이 지사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자고 한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이 지사는 “증세 없는 안심소득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비판한다. 오 시장과 유 전 의원은 “기본소득은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한 감당 못 할 제도”라고 맞선다.
     
    기왕 시작된 논쟁이 더 높은 수준으로 전개됐으면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제도 필요성과 지속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은 예산집행 효율화나 조세감면 축소로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거나 ‘당장 얼마씩 줄 수 있다’는 점만 내세우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건 재림예수를 자칭하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장담하는 사이비 교주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빵과 물고기(세금)는 국민에게서 나온다.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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