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뉴스&체크] 건물도 없는 한전공대 내년 개교 ‘돈 먹는 하마’ 될 판

최근 게시물 게시판 뉴스이슈 [윤석만의 뉴스&체크] 건물도 없는 한전공대 내년 개교 ‘돈 먹는 하마’ 될 판

  • ‘대통령 공약 대학’ 설립 논란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내년 3월 전남 나주에 한국에너지공과대(한전공대·KENTECH)가 문을 연다. 9월에 신입생을 모집(수시)하는데 아직 건물조차 없다. 착공식도 지난 1일에야 뒤늦게 했다. 교육 시설도 못 갖춘 대학이 이례적으로 허가 난 것은 여당이 지난 3월 특별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야당 반발이 거셌지만, 대통령 공약이란 이유로 일사천리 통과됐다.
     

    특별법 만들어 허허벌판에 개교
    설립·운영에 10년간 1조 6112억
    ‘준조세’ 전력기금에서 일부 충당
    정권 바뀌면 제2의 수도공대 우려

    한국전력(한전)은 노벨상 수상자 등 ‘스타 교수’를 총장으로 영입해 글로벌 톱10 공대로 육성한다고 밝혔다. 교수들에겐 다른 과기특성화대 교수 연봉의 3배(약 4억 원)를 약속했다. 1000명의 학부·대학원생에겐 등록금 면제와 기숙사 무료 혜택도 제시했다. 개교 후 10년까지 드는 비용만 1조6112억 원이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들여 대학을 신설하는 이유는 뭘까?
     
    한전공대는 ‘대통령 공약 대학’
     

    지난 3월 한전공대가 들어설 전남 나주의 골프장 부지에서 학교 건립을 앞두고 사전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3월 한전공대가 들어설 전남 나주의 골프장 부지에서 학교 건립을 앞두고 사전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전공대는 원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지난 3월 ‘한전공대특별법’ 제정 직후 그는 “저의 전남지사 시절 선거공약이었고 그 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됐다”고 밝혔다. 정권 출범 후 한전공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2019년 8월 국무회의에 보고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통상 대학 설립에는 기본계획 수립부터 설계·시공·인가 및 개교까지 5~6년이 걸린다. 원칙대로면 한전공대의 개교 시점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다. 그래서 정부 여당은 일반 대학엔 적용되지 않는 혜택을 줬다. 현행 고등교육법(4조)에 따르면 학교 설립을 위해선 ‘시설·설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한전공대특별법’은 학교 시설·설비가 없는 상태에서도 내년 개교할 수 있게 특혜를 줬다.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전망대에서 한전공대 부지를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전망대에서 한전공대 부지를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의 법안 검토보고서는 “설립 특례를 부여함으로써 신속히 개교토록 하는 것이 특별법의 제정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를 쓴 채수근 수석전문위원은 “특별법을 적용하지 않으면 시설·설비를 갖춘 시점에야 설립이 가능하다”며 “(KAIST 등) 국가가 설립한 대학을 제외하고, 공공기관이 설립하는 대학에 특수법인 학교의 지위를 부여한 최초의 사례”라고 했다.
     
    미달 대학이 속출해 구조조정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 공약이란 이유만으로 이런 특혜를 줘도 되는 걸까. 황인성 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직도 허허벌판인데 내년 개교한다.
    “일반 대학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특혜다. 대학 설립을 위해선 4대 요건(교지·교원·교사·수익용 재산)을 갖춰야 한다. 설립 계획 수립 후 개교까지 보통 80개월이 넘게 걸린다. 어떤 학교가 건물도 없는데 학생을 모집하고 개교할 수 있나. 대통령 임기 안에 문을 열려고 무리수를 두는 거다.”

     

    지방대 미달 문제는 갈수록 심해질 거다.
    “2000년대 이후 새로 생긴 사립대는 없다. 있는 대학도 정원을 줄여야 하는 판국이다. 정권이 바뀌면 한전공대는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원전폐기 정책으로 기존의 에너지 산업도 크게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공대 졸업생이 제때 시장에 흡수될지도 의문이다.”

     

    지난 1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한전공대 착공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김 지사 뒷쪽으로 허허벌판인 학교 부지의 모습이 보인다. [뉴스1]

    지난 1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한전공대 착공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김 지사 뒷쪽으로 허허벌판인 학교 부지의 모습이 보인다. [뉴스1]

    국내에는 이미 5개의 과기특성화대가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4개 과학기술원(KAIST·대구경북·울산·광주)과 사립인 포스텍이다. 이들 모두 에너지 관련 전공이 개설돼 있다. 황인성 사무처장은 “에너지 분야의 인력 수요는 한정돼 있어 한전공대 졸업생은 결국 한전에 취직할 가능성이 크다”며 “나중엔 취업 특혜 논란도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물단지 전락 우려
     
    올해 전국 대학의 신입생 미달 인원은 4만 586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지난해의 3배다. 3년 후엔 미달 인원이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교육부는 추정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공대’ 신설로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대는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라며 “나중엔 한전공대의 운영비도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전에 따르면 2031년까지 투자비는 1조 471억 원, 운영비는 5641억 원이다. 이중 2000억 원을 지자체가 부담한다. 나머지는 대부분 한전 몫이다. 그러나 한전의 재무 상태는 악화일로다. 문재인 정권 초기 부채비율은 149.1%였는데, 2020년 187.4%로 급증했다. 한전의 중장기 재무계획에 따르면 2024년 234.2%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지자체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2020년 전남의 재정자립도(28.1%)는 최하위다. 전국 평균(50.4%)에 훨씬 못 미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지난 1월 한전공대 설립·운영비를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충당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국민이 내는 전기료의 3.7%를 떼어내 조성하는 전력기금에서 한전공대 운영비를 대겠다는 이야기다. 김병욱 의원은 “준조세인 전력기금에서 국민 동의도 없이 돈을 쓰겠다는 게 말이 되냐”며 “나중엔 전기료를 인상해 학교 운영비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기존 대학들의 불만은 크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10년 넘게 등록금이 동결된 상태에서 대부분의 학교들은 몇천만 원이라도 정부 예산을 더 받기위해 기를 쓴다”며 “대통령 공약이란 이유로 쓸데없이 돈을 퍼주는 게 정상이냐”고 했다. 광주의 한 대학 관계자도 “지역 숙원사업이라 반갑긴 하지만 씁쓸하기도 하다”며 “막대한 돈을 차라리 기존 대학 혁신에 쓰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교육계에서는 한전공대가 결국 국립으로 전환하거나 과거 수도공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법인 자산이 1조 원에 달하는 포스텍조차 올 초 재정 문제로 국립대 전환을 검토할 만큼 대학 운영비 충당은 쉽지 않다. 1964년 한전이 설립한 수도공대는 보조금 삭감 등 재정난을 겪다가 1971년 홍익대에 통합됐다.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도 과거 정보통신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KT 등이 1998년 공동 설립했지만 예산 지원이 끊기며 2009년 KAIST에 흡수됐다.
     
    입시 방식도 깜깜이
     

    지난 3월 한전공대특별법 통과 직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지난 3월 한전공대특별법 통과 직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학생 모집 방식도 논란이다. 지난달 26일 한전공대는 내년도 신입생 100명을 수시 학생부종합전형(90명)과 정시 수능(10명)으로 뽑겠다고 발표했다. 수시는 1단계(서류전형)에서 정원의 4배수를 뽑고, 2단계에선 서류점수(1단계)와 면접점수를 절반씩 합산해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면접은 학생 부(30%)와 창의성 중심(70%)으로 나뉜다.
     
    한전공대는 “창의성 면접에서 발산적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 인문적 통찰역량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은 없다. 당장 9월 입시가 코앞인데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전문가들은 한전공대 입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임성호 종로학원 하늘교육 대표의 말이다.
     

    어떻게 뽑겠다는 건지 모호하다.
    “7월 말이면 학생부가 마감된다. 세부 모집요강이 아직까지 안 나온 것은 수험생 입장에선 깜깜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의 단서로 유추해보건대 영재학교·과학고 출신을 뽑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일반고 출신이 어떻게 처음 본 면접관 앞에서 발산적 사고력과 인문적 통찰을 보여줄 수 있겠나.”

     

    학교의 바람대로 우수 학생이 지원할까.
    “솔직히 말해 수험생들의 인식은 ‘한전사관학교’다. 공기업 취업이 잘 될 거라는 정도다. 이미 5개의 다른 과기특성화대가 있는데 어떤 차별점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다만 지원자는 많을 수 있다. 수시 6회 지원 제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대 입장에서 보면 매우 큰 혜택이다.”

     
    이에 대해 성윤모 산자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전이 (졸업생을) 채용하려는 게 아니다. 에너지 관련 최고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게 대학의 목표”라고 말했다. 특정 지역 특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역의 일반대학을 만드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에너지 중심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전공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장석웅 전남도교육감과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한전공대에 ‘지역 인재 전형’ 도입을 요청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전공대가 이를 거부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문재인 공대’라는 특혜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Source link

    신고하기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