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순수 학문에 투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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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달빛은 차가운가? 달빛은 햇빛과 달리 아무리 쬐어도 따뜻하지가 않다. 달빛에도 열이 있지만 그것이 약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달빛에는 열이 전혀 없거나, 혹시 도리어 냉기가 품어진 것은 아닐까?
     

    순수과학 예기치 않은 성과 얻어
    기술과 과학 상호 의존하기 때문
    다양한 학문은 복잡하게 연관돼
    학문에 근시안적 투자는 피해야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마체도니오 멜로니는 이것이 너무 알고 싶어서 1846년에 정밀한 검증에 나섰다. 보름달이 휘영청한 어느 날 밤, 그는 지름이 1미터나 되는 큰 돋보기 렌즈로 달빛을 모았다. 그 강렬한 달빛을 아주 예민한 온도계에 비추었다. 그 온도계는 열전대(thermocouple)를 다수 연결한 것으로, 멜로니가 손수 개발한 발명품이었다. 그렇게 애써 실험한 결과 달빛에도 아주 약한 열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장난같은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멜로니의 달빛 모으기 실험은 복사열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연구의 일부였다. 그 연구를 물려받은 영국의 틴달은 더 나아가 복사열이 여러 종류의 기체를 얼마나 잘 관통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고, 그런 실험에도 멜로니가 발명한 예민한 온도계를 사용했다. 그리하여 이산화탄소가 복사열을 아주 잘 흡수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이도 별 쓸모 없는 지식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지구온난화의 주원인이 되는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를 발견한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복사열은 적외선을 통해 전달된다. 이산화탄소는 가시광선은 흡수하지 않지만 적외선을 잘 흡수한다. 대기중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에 비치는 햇빛은 차단하지 않고 땅에서 우주공간을 향해 뿜어내는 적외선은 차단하기 때문에 지구상에 열이 축적되게 하는 것이다. 온실의 벽을 이루는 유리도 이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대기중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게 되면 지구는 따뜻한 온실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실용적 목적 없이 호기심으로 추구하는 순수 과학 연구가 우리의 실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낳은 경우는 수없이 많다. 첨단 기초과학에서 나온 기술로 반도체, 유전공학, 핵폭탄까지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현대 기술문명의 반석이 되는 전자기학도 영국의 패러데이가 자석과 전지와 코일을 가지고 어린이 놀이하듯 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침반에 쓰는 것 외에는 아무 실용적 용도가 없던 것이 자석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가득 찬 패러데이의 손에서 이 자석은 깊은 자연의 신비를 깨우쳐 주는 도구가 되었다. 또 그는 편히 살면서 할 일 없어서 자석 놀이를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집이 가난해서 중등교육도 받지 못했던 패러데이는 제본공으로 일하면서 제본해야 할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과학을 공부했다. 그저 뭐든지 애타게 알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옛날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독립적으로 과학을 연구했지만, 과학의 실용적 가치를 확실히 알게 된 우리 시대에는 각국의 정부에서 과학에 많은 투자를 한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어려운 것은, 과연 순수 과학의 어떤 부분에서 실용적인 응용이 나올지를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취 가능한 목표가 비교적 잘 나타나는 기술분야에 투자를 집중하자는 생각도 나오는데, 거기서 또 문제는 과학적 지식의 넓고 깊은 기반이 없으면 정말로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 잘 되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순수 과학부터 먼저 발달시켜야 온갖 기술적 응용이 나오리라는 것도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우리가 이미 가진 과학지식을 응용하여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기술을 개발하려는 과정에서 아주 기초적인 과학적 개념과 이론들을 깨우치는 경우도 많다. 또 요즘의 순수 과학 연구는 엄청난 기술의 뒷받침이 없으면 힘들다. 거대한 입자가속기나 우주에 쏘아올린 허블 망원경을 생각해보라. 생명공학부터 이론물리학까지 모두 망라한 여러 학문분야들은 마치 거미집과도 같은 복잡한 상호관계를 이루며 서로를 뒷받침하고 서로를 촉진한다.
     
    그리고 윤택한 인간의 삶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학문의 망을 짤 때 자연과학과 공학뿐 아니라 사회과학과 인문학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요즈음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인문계의 학과들은 위기를 맞으며, 정부 지원도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근시안적인 일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미래의 경제는 인공지능에 달렸다고들 하는데 그것을 그냥 컴퓨터만 가지고 하는 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개발하고 그것이 정말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달시키고 사용하려면 우선 “지능”이란 무엇인가를 잘 이해해야 하고, 그 지능과 인간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도 고려해야 하며, 또 인공지능으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가지 어려운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제대로 하려면 철학, 심리학, 언어학 등 여러 인문학 분야가 다 동원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빨리 써먹을 결과만을 노리고 하는 투자는 금방 한계가 드러날 것이다. 긴 미래를 본다면 모든 학문을 각 분야의 종사자들이 마음껏 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길밖에 없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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