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그들도 한때는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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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2018~19년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한 야권 원로인사는 당 혁신방안을 묻는 김 위원장에게 ‘세대교체’를 주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장강(長江)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듯 지금은 시대의 새 인물이 옛사람을 대신할 시점이라는 조언과 함께 욕심내지 말고 새 인물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어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들은 김 위원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짐작할 만했다. 그 역시 뒷물에 밀려날 앞 물이라고 생각한 때문은 아닐까.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삼겹살 불판 갈라는 요구 거세
    ‘기득권 정치 교체’ 민심의 향배는

    6월 11일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이준석 돌풍’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36살의 ‘0선’ 의원, 이준석 후보는 제1야당 대표 선거 여론조사에서 4선, 5선 선배 의원을 멀찌감치 뒤로 하고 독주하고 있다. 그것도 두 배, 세 배가 넘는 압도적인 차이로 말이다. 일부 조사에선 국민의힘 지지층이나 대구·경북(TK) 지역의 이 후보 지지도가 과반을 넘는다는 결과도 나왔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전략적 선택까지 더해지면서 가히 ‘이준석 태풍’이 되고 있다.
     
    선배 의원들은 당심은 민심과 다를 거라고, 정권을 되찾아오려면 초보 셰르파는 안 된다고, 특정 대선주자에게 유리한 후보가 대표가 돼선 안 된다는 등 ‘이준석 돌풍’을 찻잔 속 태풍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종 결과는 11일 나올 테지만, 어쩐지 이들에게서 뒷물에 밀려나지 않으려는 앞 물의 모습이 오버래핑된다.
     
    사실 ‘이준석 돌풍’은 국민의힘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국민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한국사회를 받쳐온 한 축인 산업화 세력을 용도 폐기했다. 이번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또 다른 한 축인 민주화 세력을 밀어내고 있다. 지난 4·7 지방선거 재·보선에서 옐로카드를 꺼낸 국민은 이제 ‘이준석 돌풍’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서소문 포럼 6/8

    서소문 포럼 6/8

    유인태 전 의원의 진단은 폐부를 찌른다. 그는 “이준석 돌풍에 민주당 내부에서 내년 대선이 끝난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당선돼 586세대의 맏형격인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상상한 데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여권 대선주자들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쏠렸던 시선을 이준석 후보에게로 옮기고 있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이 일갈했듯이 ‘다 타버린 삼겹살 불판을 갈아치울 때’가 온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을 체감해서가 아닐까. 지난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주 지지층이었던 20·30세대와 PK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이대로라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530만표 차이로 대패한 2007년 17대 대선이 재연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는 건 이런 정치공학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지금 민심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지 않은 20세기 기득권 정치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공정한 사회, 일자리와 복지, 교육, 노동, 외교·안보, 검찰 개혁 등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을 더는 과거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그런 분노와 명령의 용출이 ‘이준석 돌풍’을 빚어내고 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거대한 변혁 과정에서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일었지만 장강의 뒷물은 앞 물을 밀어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 도도하게 흘러왔다. 그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2005년 39세의 나이로 영국 보수당 역사상 첫 30대 당수 자리에 오른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그는 재선의 소위 ‘듣보잡’ 의원이었다. 하지만 보수당원들은 당내 패배주의(8년에 걸친 3번의 총선 패배)를 떨치고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에 맞서기 위해 과감하게 세대교체를 선택했다. 5년 후인 2010년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 캐머런은 마침내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약 200년 만에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랐다.
     
    2005년 12월 당수가 된 후 첫 의회 간담회에 나섰던 캐머런은 토니 블레어 총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접근법은 구닥다리다. 나는 미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블레어)도 한때는 미래이긴 했지만 말이다(This approach is stuck in the past. And I want to talk about the future. He was the future once)”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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