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대기업은 함께 가야 할 국정의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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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훈 편집인

    한 건설 대기업 사장의 토로. “PD들에게 밥을 한 번 샀다. ‘해외 수주하느라 죽을 고생도 한다. 잘못도 있지만 좀 긍정적 이미지로 그려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드라마·영화마다 정경유착과 뇌물, 조폭·용역깡패 동원, 임금 체불, 갑질, 비자금 같은 것만 줄곧 사람들에게 각인돼 왔다.”  PD들의 답이 이랬다. “이해는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꼭 악역을 해줘야 할 분들이 있다. 대기업 오너와 권력자, 정치인, 검사, 기자들…. 그분들이 착하게 나온다면…. 시청률이 아예 안 나온다.”
     

    대미 투자로 신의 지킨 대기업
    대통령의 인식에도 변화 보여
    기업이 혁신으로 국부 주도할
    ‘길동무’라는 근본적 성찰 절실

    다른 전자 대기업 고위 임원의 얘기. “청와대·국회의 높은 분들을 만난 적이 없다. 안 만나려고 한 게 아니라 아예 연락이 없다. 오히려 외국 지도자들은 비행기편 내줄 테니 와서 노하우 좀 가르쳐 달라고도 한다. 우리 권력과 대기업은 그냥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괜스레 우릴 만나 오해 사지 않으려는 것 같다. 대화가 없으니 교감도, 공감도 없다. 부담 없을 중소·벤처기업 분들은 자주 만나더라. 그러니 하청, 수직 계열화, 갑질 등 주로 대기업의 어두운 면만 듣게 된다. 편견의 악순환이다.”
     
    현 정권의 주축인 586 운동권 출신들의 대기업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1970~80년대 ‘매판 자본’이란 단어였다. 개인도 해외 주식을 자유로이 사고, 자본이 날개를 단 요즘으론 우스꽝스럽게도 자본을 국경선 따라 ‘민족 자본’과 아닌 것으로 나누던 시대다. 거대 자본, 대기업은 악(惡)이라는 확신은 당시 위장 취업한 그들의 현장 투쟁에서 더욱 강화됐다. 전두환·노태우 군부 정권과 재벌의 본격적인 정경유착 폐해는 대통령 직선제라는 제로섬 게임을 만나 거대한 정치적 프레임의 괴물로 진화했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진영은 재벌을 못 가진 다수의 보편적 적개심, 나아가 해체의 대상으로 구도화했다. 거대자본을 희생양 삼는 ‘못 가진 다수’와의 편가르기 전략이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2.5 트럭에 실린 재벌의 현금 150억원을 받았던 차떼기 사건은 두고두고 영화·드라마의 카타르시스 플롯으로 재구성되며 이 갈라치기 전략에 힘을 실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17년 1월 “재벌 총수 일가가 수많은 기업 범죄의 몸통”이라며 “4대, 10대 재벌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이 기조를 고수했었다. 재벌 개혁론자(장하성·김상조)를 중용했다. 심지어 “총수 일가는 주력 기업 주식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하길 권한다”(김상조)는 계엄 수준의 엄포도 나왔다. 거대 여당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대기업 압박에 장단을 맞췄다. ‘재벌 개혁이 불평등의 만병통치약’이라는 복음(福音)은 어느새 진보 진영의 신앙이 됐고, 내부에선 “왜 이리 개혁이 더디고 무디냐”는 추임새가 이어졌다.
     
    좀 따져보자. 우리나라  최대의 영구 독점 집단은 바로 민주당과 국민의힘 진영이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제왕적 대통령과 의회 권력을 번갈아 나누며 나라의 인사권, 입법권과 예산·재정권을 독점 소유해 왔다. 제3 세력을 철저히 제도로 봉쇄하면서였다. 자신들 발 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에 서 있어 혁신과 도전, 모험으로만 생존할 수 있는 게 기업가(entrepreneur)들. 별다른 자기 혁신도 없이 평생 보장된 시장 지배력을 즐긴 건 바로 북악산과 여의도의 그들이었다.
     
    역설적으로 대기업의 혜택을 향유하는 건 현 민주당 정권이다. 재난지원금 등 선거철마다 푸는 이 돈들은 대체 어디서 나왔나. 2019년과 2020년의 국세 293조·286조원 중 법인세는 72조(24.6%)·55조원(19.4%)이다. 국가 세수의 4분의 1~5분의 1이다. 상위 10% 기업들의 부담은 전체 법인세의 71.2%. 2019년 국내 64대 기업집단의 매출(1617조원)은 명목 GDP의 84.3%였다. 대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소득세는 또 어떤가. 글로벌 비즈니스 시대에 매출의 86.1%, 62.0%(2018년 기준)를 해외에서 벌어 온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의 대기업에 ‘경제력 집중’이란 딱지를 붙여 규제해 온 이들은 누군가. 평생 내수 독점으로 먹고사는 ‘우물안 개구리’ 정치 권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대 대기업 대표들을 만나 “지금은 경제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의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안에선 권력 눈칫밥 먹던 대기업들이 44조원의 대미 투자로 한·미 동맹을 선순환시켜 준 데 대한 감사의 자리였다. 대기업들은 ‘가진 것’으로 동맹과 국가와 국민에게 응답했다. 신의(信義)를 지켰다. 늦었지만 대통령의 인식은 전향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대기업이 ‘범죄의 몸통’이 아니라 혁신과 창의로 국부(國富)를 이끌어 줘야 할 국정의 동반자라는 근본적 인식 변화가 없다면 모든 건 그냥 해프닝에 그칠 뿐이다.
     
    일자리도, 스마트 팩토리도, 그린 뉴딜도, 탄소 중립도, 한·미의 글로벌 가치 동맹도, 환경·사회적 책임도 대기업의 흔쾌한 참여로만 가능하다. 정치가 기업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다시 활력을 줄 의사여야지 죽음 뒤 나타나는 장의사 돼선 우리의 21세기 미래란 없다.
     
    최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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