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비전포럼] 미·중 선택 말고 규제 풀어 한국 반도체 경쟁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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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전쟁과 한국의 대응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기자회견 도중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한국 기업 대표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박수로 감사 표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기자회견 도중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한국 기업 대표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박수로 감사 표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중 패권경쟁의 본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차세대 기술전쟁이며 현재 그 최대 격전지는 반도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1세기 편자의 못”이라고 말한 반도체는 산업 전 분야에 없어선 안 될 “산업의 쌀”과 같다. 반도체가 있어야 자동차가 굴러가고 전투기도 뜬다. 중국의 굴기를 막으려는 미국이 화웨이(華爲) 등 중국 기업에 반도체 공급 중단이란 강수를 둔 배경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반 성장 길 가야
    중국이 한국에 보복할 순 없어
    초격차 분야 갖고 우위 지켜나가며
    인재 집중 위해 수도권 정책 재고를

    반면 미 제재에 직면한 중국은 한국에 손을 내민다. 미국은 또 반도체 공급 안정을 위해 한국에 투자를 요청한다. 우리로선 또다시 미·중 사이에 끼게 됐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어떤 지혜가 필요한가. 7일 열린 한중비전포럼 10차 모임에서 대응 방안을 찾아봤다.
     

    박재근

    박재근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의 발제=중국을 때리는 미국의 행보는 어디로 향하나. 역사를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일본의 반도체 공세가 거세지자 미국은 일 기업에 대한 반덤핑 조사로 일본을 주저앉혔다. 중국에 대해선 제재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겠다는 계산이다. 중국이 2014년 반도체 1위 목표를 설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태양전지와 LED, LCD 등 중국은 국가가 하겠다고 나서면 다 성공했다. 나름 자신감이 생겼다. ‘중국제조 2025’를 선포하며 반도체 소재와 부품, 장비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화웨이는 미국이 가장 앞선다는 반도체 설계에서도 턱밑까지 쫓아가다 미 제재를 받아 고전 중이다. 그러나 이게 중국이 반도체 사업을 포기한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초기 많은 투자를 했다가 지금은 부실을 정리하는 수준이다. 앞으로 중앙 정부 차원에서 내실 있게 장기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끌고 가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미국과 동반 성장한다는 길을 따라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소프트웨어 대부분을 미국이 갖고 있다. 미국이 투자를 요청하면 오히려 우리가 더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면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는 게 이득이다. 중국이 한국을 제재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같은 갈등이 반도체 분야에서 일어나기 힘들다. 중국은 반도체 최대 소비국이다. 홍콩 경유 수출을 포함하면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61%가 넘는다. 중국이 한국의 반도체 수출을 제재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이 반도체 수출을 멈추면 중국 내 IT 조립 산업도 멈춰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기업의 중국 현지 공장 분위기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한다.
     
    중국은 큰 시장이다. 또 잠재력이 큰 나라다. 우리가 중국과 나쁜 관계를 가질 필요는 절대 없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건 미·중 사이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사회)=바이든 미 대통령은 반도체 상징인 웨이퍼를 들고 “이게 인프라”라며 “중국은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미 압박이 어느 정도 이뤄질지, 또 미 정부 원하는 대로 상황이 전개될지 관심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배영자 건국대 교수=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은 단기 및 중장기 시나리오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2030년과 2040년, 2050년으로 갈수록 미·중 반도체 기술격차는 좁혀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술보다 시장이 중요했던 때가 있었다. 과거 영국과 독일이 기술에서 앞섰지만, 시장에 앞선 미국에 패권을 넘겨줘야 했다. 기술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도전을 낙관적으로 보기 어렵지만,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달리 봐야 할 것이다.
     
    미·중 반도체 갈등 심화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다. 한국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자산은 기술이다. 한국이 우수한 반도체 공정기술을 갖고 있기에 미·중 모두 우리와 협력을 원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한국은 수세적 태도로 미·중 갈등에 대처하기보다 우리 입장을 미·중에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등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중비전포럼이 7일 서울 중구 HSBC 빌딩에서 ‘미중 반도체 전쟁과 한국의 대응’을 주제로 열렸다. 왼쪽부터 박재근 한양대 교수, 이종호 서울대 교수,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최필수 세종대 교수, 이왕휘 아주대 교수, 배영자 건국대 교수,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김진호 단국대 교수, 신정승 전 주중대사. 김상선 기자

    한중비전포럼이 7일 서울 중구 HSBC 빌딩에서 ‘미중 반도체 전쟁과 한국의 대응’을 주제로 열렸다. 왼쪽부터 박재근 한양대 교수, 이종호 서울대 교수,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최필수 세종대 교수, 이왕휘 아주대 교수, 배영자 건국대 교수,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김진호 단국대 교수, 신정승 전 주중대사. 김상선 기자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우리의 선택 여지는 없다. 우리가 발전하려면 미국과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첨단 반도체 제품의 고객 대부분은 미국에 있기에 미국에 투자하는 게 우리에겐 기회가 된다. 앞으로 반도체 제조 질서가 많이 바뀔 것이다. 미국이 자국 내 제조시설 비중을 30%까지 올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대만과 한국의 시설도 미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 지금은 제조 분야의 주도권이 한국과 대만에 있지만, 이것마저 미국으로 옮겨갈 경우에 대한 한국의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왕휘 아주대 교수=현재까지 중국의 산업정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여러 지방정부에서 추진하는 반도체 기업 육성정책은 인재 유치와 인프라의 한계 때문에 대부분 실패했다. 그 결과 하이실리콘과 SMIC를 제외하곤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반도체 기업이 없다. 이 두 기업도 미 제재를 받아 고전 중이다. 그러나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멈추진 않을 것이다. 중국은 세계 생산량의 65%를 차지하는 희토류를 전략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희토류는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에 중요한 소재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면 배터리 공급망을 교란 또는 붕괴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호 서울대 교수=중국 시장이 큰 건 사실이지만 당당한 소통이 필요하다. 중국도 우리 메모리 반도체가 공급되지 않으면 큰 타격을 받는 처지라 우리에 대해 함부로 하기 어려운 구조다. 우리 기업이 시급히 원하는 건 규제 완화다. 그러나 미·중이 장기간 경쟁하는 국면을 고려할 때 더 중요한 건 반도체 인재 양성이다. 규제 다 완화해도 구할 수 없는 게 인재다. 인재는 외부에서 데려오기도 어렵다. 결국 내부에서 우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극소수라도 탁월한 인재라면 새로운 격차나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최필수 세종대 교수=만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바이든 미 대통령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불러서 투자하라고 했으면 황당했을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성을 비난해왔는데 지금은 미국이 중국과 같은 보호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주목할 건 미 기업들도 아웃소싱을 인소싱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인텔도 파운드리 공장을 세울 예정이고, 자동차 기업들은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한다. 밸류 체인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에 대한 우리 기업의 투자가 글로벌 과잉생산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반도체는 한국 산업의 핵심 중 핵심이다. 우리는 미·중 간 선택을 고민할 게 아니라 이 핵심 산업 자체를 잘 키워나간다는 목표를 놓쳐선 안 된다. 우리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선 적어도 ‘남의 나라가 하는 만큼은 해줘야 한다’는 거다. 특히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한국은 수도권 중심의 나라이기 때문에 서울과 지방의 균형 발전이 중요하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고급 두뇌 인재들의 집약산업이기 때문에 수도권을 벗어나는 게 어렵다. 한국이 일본을 꺾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연구와 생산의 집중, 인재의 집중이었다. 정부가 수도권 분산 정책과 반도체 지원 정책 간의 충돌을 얼마나 이른 시일 안에 해소해 주느냐가 열쇠다. 한국이 반도체 전반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중국이 일부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하는 시대가 올지라도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초격차 분야를 갖는 게 중요하다. 우리만의 분야에서 우위를 지켜나간다면 세계에서 충분히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 본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미국이 노골적으로 보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이 단일패권의 위기를 절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들을 반도체 분야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 추세가 단기적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중국의 양보를 받아낼 때까지 상당히 오래 중국을 때릴 것이란 이야기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쉽지 않다. 미국 성장의 대부분이 중국 요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중국 없이 성장하기 어렵고 중국에 대한 제재가 부메랑 효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중국 휴대폰 기업을 방문해보면 대만이나 한국과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기술자나 대만 기술자가 중국 기업에서 많이 근무한다. 인재 유출이 많은 셈이다. 기술 유출을 막으려면 인재 유출부터 막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인재가 유출될 수밖에 없는 산업 환경을 만들어놨다. 규제를 도통 풀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대만은 한국을 경쟁국으로 본다. 미국은 그런 대만과 한국,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를 역학적으로 이용 중이다. 이런 비상 상황이지만 우리 반도체 기업 총수는 아직도 옥중에 갇혀 있다. 그러고도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한 먹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중비전포럼

    한중 관계의 미래 좌표와 비전을 찾기 위해 전문가 18명이 결성한 포럼.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대표를, 신정승 전 주중대사(동서대 석좌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리=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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