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의 오만···특별 점검 때도, 지게차 안전요원은 없었다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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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일 평택항 동부두 7게이트 컨테이너 작업장에서 대형 지게차가 신호수 없이 작업하고 있다. 그 주변으로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정부가 특별점검 중이지만 안전 미비는 여전하다. 평택항=김성탁 논설위원

    지난 3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주변. 비가 내리는 거리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이 바쁘게 오갈 뿐 인적이 드물었다. 이용객이 끊긴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도로변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 고 이선호! 하청구조가 청년들 다 죽인다!’ 
     

    이선호씨 숨진 평택항에 가보니

    대형 지게차 후진, 안전 관리 신호수 없어
    부산 신항서도 30대 지게차에 깔려 숨져
    노동부·해수부 인력 부족 탓…개선 안돼
    “정부, 미안하다고만 말고 대책 세워달라”

     고 이선호(23)씨는 지난 4월 22일 평택항에서 300㎏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7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거운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 신호를 주거나 안내를 해야 하지만 현장에는 안전 관리자 등 작업을 지휘하는 이가 없었다. 오픈형 컨테이너 양옆에 달린 날개 형태의 벽체는 서서히 내려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사고 컨테이너는 속도를 줄여주는 스프링이 없는 등 상태가 불량해 선호씨를 빠른 속도로 덮쳤다. 정상 작동하는 컨테이너라면 손으로 벽체를 밀어도 되기 때문에 지게차를 이용해 강제로 벽체를 내리는 작업도 문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게차로 한쪽 벽체를 미는 충격으로 다른 쪽 벽체가 무너지는 바람에 선호씨가 깔렸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한 안전 규칙만 제대로 지켰어도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아버지 이재훈씨의 휴대폰에 ‘삶의 희망’이라고 저장돼 있던 청년의 죽음은 노동자의 안전이 강화되는 계기가 된 것일까. 선호씨 사고 이후 노동부와 해양수산부 등은 해당 사업장을 운영하는 동방 평택지사에 대해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평택항을 비롯해 부산·인천·울산·여수 등 전국 5대 항만에 대한 특별점검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감독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평택항 부두에서는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위험한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날 평택항 동부두 7번 게이트 안쪽에선 거대한 지게차들이 무거운 컨테이너를 내리고 올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선호씨가 희생된 평택항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수백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인근 고층 건물에서 내려다본 작업장에선 바퀴 크기가 어른 키보다 큰 대형 지게차 5대가 컨테이너 더미 사이를 이리저리 오갔다. 컨테이너를 내리고 싣는 트럭들도 순서를 기다리다 마치 뱀처럼 좁은 통로에서 지게차 옆을 드나들었다. 
     
     이곳 지게차들은 지난달 23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배후단지 물류센터에서 김모(38)씨가 퇴근하던 중 뒷바퀴에 깔려 사망한 지게차와 같은 종류다. 부산신항 사고 당시 지게차가 후진할 때 안전한지를 봐주는 신호수가 없었다. 더구나 부산신항 사고는 정부가 5대 항에 대한 특별점검을 하던 기간에 발생해 비난을 샀다. 그런데 이날 7부두 컨테이너 작업장에서도 대형 지게차 5대가 종횡무진 움직이는 동안 주변 안전을 봐주는 신호수 등 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게차가 육중한 컨테이너를 들어 올린 후 후진하는 뒤편으로 트럭 운전자가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가는 위험한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선호씨가 숨진 평택항에서, 그것도 부산신항 지게차 사고까지 발생했는데도 아무런 감독 없이 안전 미비 작업이 반복되고 있었다.  
     

    지난달 부산신항에서도 퇴근하던 30대가 지게차 뒷바퀴에 깔려 숨졌다. 평택항에서 신호수 없이 작업하는 지게차는 바퀴 크기만 어른 키보다 크다. 잇따르는 죽음 이후에도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평택항=김성탁 논설위원

    지난달 부산신항에서도 퇴근하던 30대가 지게차 뒷바퀴에 깔려 숨졌다. 평택항에서 신호수 없이 작업하는 지게차는 바퀴 크기만 어른 키보다 크다. 잇따르는 죽음 이후에도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평택항=김성탁 논설위원

     평택항에서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자 전 모(56)씨는 “전국 항만에서 지게차 운행 때 신호수를 두는 곳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정부가 특별감독을 한다고 떠들지만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트럭을 몰고 지게차 주변으로 이동할 뿐 아니라 서류를 받으러 트럭에서 내려 사무실을 오가곤 하기 때문에 늘 위험하다”며 “컨테이너가 늘어서 있는 라인별로 신호수를 한 명씩만 배치해도 될 텐데 업체는 비용을 아끼려고 배치를 안 하고, 정부는 알고도 방치한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게차를 운행할 때 신호수 등 안전 요원을 반드시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제38조와 39조에는 무거운 중량물 취급 작업이나 차량계 하역운반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의 경우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안전관리자를 지정해 지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계차 한 대마다 한 명씩 두라는 기준은 없지만, 현장에 안전 책임자는 있어야 한다. 특별점검조차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노동부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상시 현장 감독은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기홍 민주노총 평택 안성지역노조 위원장은 “선호씨를 덮친 컨테이너는 사고 8일 전 점검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실제로는 고장이 나 있었다”며 “그런데도 해수부 등은 사고를 일으킨 업체만 작업을 중지시켰을 뿐 전국 다른 항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같은 형태의 컨테이너가 불량인지 일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 이선호씨의 고교 친구인 김벼리씨가 지난 2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슬퍼하는 건 우리가 하면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권한이 있으니 대책을 세워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수원=김성탁 논설위원

    고 이선호씨의 고교 친구인 김벼리씨가 지난 2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슬퍼하는 건 우리가 하면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권한이 있으니 대책을 세워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수원=김성탁 논설위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선호씨 사망 이후에도 산재 사망자는 51명이 발생했다. 매일 1명 이상이 일하다 숨지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경기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맨 앞자리에 가방을 멘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선호씨의 친구인 김벼리(22)씨는 산재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를 담은 보라색 리본을 경기지청 담장 화단에 묶은 뒤 연단에 섰다.  
     
      “선호가 세상을 떠난 후 한 달이 지나면 장례를 치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42일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심지어 비슷한 사고가 계속 발생합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슬퍼하면서 선호를 보내주는 것입니다. 그건 저희만 하면 됩니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와 정치권은 권한이 있으니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까? 미안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48일째 빈소 지키는 친구들 “살려고 일하는 것, 제발 죽지 않게 해달라”

    고 이선호씨의 고교 친구들이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안중읍=김성탁 논설위원

    고 이선호씨의 고교 친구들이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안중읍=김성탁 논설위원

     
     지난 3일 오후 11시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 전남 순천에서 열린 회사 워크숍에 참석했던 김벼리씨가 한 밤에 고 이선호씨의 빈소에 도착했다. 선호씨와 안중읍에서 고교를 함께 다닌 친구 세 명도 함께했다.
      
     선호씨의 ‘동네 친구’들은 사망 사고가 난 이후 매일 밤 빈소를 지켜왔다. 선호씨의 부친 이재훈씨가 쉴 수 있도록 번갈아 빈소에서 밤을 새웠다. 졸리면 30분마다 휴대전화 알람을 설정해 두고 일어나 향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사고 전날도 영상통화를 했거든요. 오후 4시면 퇴근하는 ‘알바’라고 선호가 좋아했어요. 저도 선호 소개로 같은 일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사고가 난 업무는 퇴근 시간도 지나 잔업을 한 셈이었는데….” 이용엽(23)씨는 “선호가 원래 하던 일은 위험하지 않았는데, 안전 조치나 설명도 없이 갑자기 위험한 일을 시키는 바람에 친구를 잃었다”고 한탄했다.   
     
     노동계는 산업 재해를 당하는 청년층이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등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연령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24세 이하 사고재해자 수는 2016년 8367명에서 지난해 1만578명으로 늘었다. 24세 이하 산재 사망자 수도 2016년 45명에서 2018년 63명까지 늘었다가 다소 감소세를 보이지만 지난해에만 42명이 세상을 떠났다. 
     
     안중읍만 해도 젊은이들이 ‘알바’를 할 자리가 별로 없어 항만이나 택배 분류센터 등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배민형(23)씨는 “건설 현장이나 공장 같은 곳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위험할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무서워서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노동부와 해수부 등 부처 공무원과 정치인 다수가 빈소에 다녀 갔다. 이철우(23)씨는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제발 죽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용엽씨도 “일 하러 가는 건 살려고, 돈 벌어서 밥 먹고 살려고 가는 것”이라며 “살려고 가는 환경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터무니 없는 가능성이 있으면 누가 일을 하러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친구들은 본인들도 과거 산재 사망 사고 소식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변을 당한 뒤 남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됐고, 국민이 선호씨의 죽음을 계기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주기를 바랐다.  
      
     벼리씨는 “빈소에 와서 해수부 분들은 노동부 관할이라고 하고, 노동부는 인력이 부족해 위험한 현장 위주로만 점검한다며 책임을 서로 미루더라”며 “공무원의 양심과 직업의식에만 맡길 수 없으니 결국 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는 “알바를 하러 가서 자식들이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만들어 사업주가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사업을 잘 할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아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평택항=김성탁 논설위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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