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김두종 박사의 『한국고인쇄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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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지난 2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제2회 한국학 저술상으로 선정된 고(故) 일산(一山) 김두종(金斗鍾, 1895∼1988) 박사의 『한국고인쇄기술사』(탐구당, 1974년)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이 상은 인사동 고서점 ‘통문관’의 고(故) 산기(山氣) 이겸로(李謙魯) 선생을 기려 설립한 ‘산기재단’이 후원하는 것으로 지난해 첫 수상자는 작년 10월에 별세한 역사학자 김용섭 교수였다.
     

    제2회 한국학 저술상 수상자
    『한국 의학사』를 펴낸 의사
    한국과학사학회 창립회장 거쳐
    정년 퇴임 후 13년 만의 결실

    다른 곳도 아닌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해방 후 간행된 한국학의 명저에 주는 저술상이니 고인에게는 사후의 큰 영광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이 상을 계기로 35년 전에 돌아가신 김두종이라는 훌륭한 학자를 다시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뜻깊게 다가온다.
     
    김두종은 뛰어난 서지학자였음에 틀림없지만 본령은 의사였다. 김두종은 189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우다 신학문이 들어오자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3년 만에 마치고 상경하여 휘문의숙을 졸업한 뒤 1918년에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19년 3·1운동 때 선언문을 배포하며 가담하여 퇴학당하였다. 그러자 김두종은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부립)의과대학에 들어가 1924년에 졸업하고 봉천에 있는 만주의과대학에서 임상 수련을 마쳤다. 이후 하얼빈에서 제세의원을 개원하여 약 7년간 내과의사로 지냈는데 이때 만주의 독립군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언 43세가 된 김두종은 자신이 배워온 의학이 서양의술에만 치중하고 있음에 불만을 느끼고 1938년 만주의과대학의 동아(東亞)의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김두종은 중국과 한국의 의학사를 연구하며 한문서적을 많이 접하면서 고인쇄본을 감식할 수 있는 지식도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훗날 그의 서지학 저술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고인쇄기술사』(김두종, 탐구당, 1974년).

    『한국고인쇄기술사』(김두종, 탐구당, 1974년).

    사실 한국의 고인쇄 기술은 대단히 뛰어난 것이어서 민족적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장르이다. 런던의 영국도서관 갤러리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은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광정 다라니경』이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물은 고려시대 『직지』라고 소개되어 있을 정도다. 고려 팔만대장경, 조선시대 갑인자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8·15해방 이듬해인 1946년 김두종은 귀국하여 몇몇 의과대학에서 의학사를 강의하였고 1947년에는 윤일선과 대한의사학회를 창립하였다. 내과 의사이면서도 의학사나 의사학 같은 기초 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시상식에 참석한 송상용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1960년에 창립한 ‘한국과학사학회’는 김두종 선생이 주도하여 초대 회장까지 맡으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학문적 자세 때문에 학술원 원로회원이 되어 외솔 최현배, 월탄 박종화, 두계 이병도, 일석 이희승 등 당대의 석학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김두종은 의사로서도 적극 활동하여 1948년에는 제2대 서울대 부속병원장을 지냈고, 조선적십자사의 초대 보건부장을 역임하셨다. 해방공간과 6·25동란 중에도 연구에 전념하여 휴전 이듬해인 1955년에는 『한국의학사(상·중세편)』(정음사)을 출간하였다.
     
    의사로서 명성과 높은 인품으로 숙명여대 총장, 성균관대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60년 65세로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김두종은 훗날 고백하기를 “앞으로 여생은 의학사 연구는 물론이고 비록 내 전공은 아니지만 뒷사람들에게 알려줄만한 지식도 정리하여서 남겨 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결국 이런 결심이 1966년에는 『한국의학사』(584면), 1973년에는 『한국고인쇄기술사』(630면, 사진 140컷)라는 두 분야의 금자탑을 세운 것이었다. 나이 65세에 뜻을 세우고 78세에 결실을 맺으신 것이다.
     
    여담 같지만 우리나라엔 문자학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낸 의사분들이 많다.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 선생은 한글로 한자를 해석한 『자전석요』의 저자로 주시경과 함께 한글 가로쓰기를 주장한 국어학자이셨고, 기계식 한글타자기로 유명한 안과 의사 공병우 박사는 한글학회 이사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의사분들은 직업이 생명을 다루기 때문인지 연구 자세에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면이 있어 좋은 귀감이 된다.
     
    김두종 박사 저술의 위대함은 기왕에 알려진 문헌을 보고 연구한 것이 아니라 이 희귀한 분야의 자료를 직접 수집하며 체계를 세웠다는 점에서도 각별하다. 김두종 박사는 평생 수집한 전적 1315종 4983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그의 아호를 딴 ‘일산문고’가 개인문고 제1호로 되어 있고, 의학 관계 자료와 전적 2743권은 한독약사박물관에 기증하였는데 그중에는 허준의 저서 한 권(보물 1111호)과 한글로 된 구급처방전인 『구급 간이방』(보물 제1236호) 등  보물이 두 점 들어 있다.
     
    시상식에서 유족들은 상금 전액(3000만 원)을 당신이 창립한 대한의사(醫史)학회에 기부하셨고, 탐구당은 출판사에 주는 상금 1000만 원으로 오래 전에 절판된 『한국고인쇄기술사』를 복간하겠다고 하였다. 아! 각박한 요즘 세상에 이 얼마나 흐뭇한 이야기인가.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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