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시대 변화에 맞는 시장과 국가 역할 찾아 리셋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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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진보·보수의 과제

    박태균의 역사와비평 그래픽=신용호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한국현대사에 대한 강의와 토론을 하다보면 가끔씩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몇 년 전 남북관계에 대한 수업을 할 때였다. 정전협정 이후 전쟁이 멈추었지만, 불안정한 협정으로 인해 남북 간에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의 수업이었다. 그리고 그 갈등은 남북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 내에서의 갈등도 일으킨다는, 즉 남남 갈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 중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냉전시대에 머물러 진화하지 못한 진보좌파와 보수우파
    반공만이 정치 이념 구분하는 유일한 척도로 작용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진보, 한미동맹에 매달리는 보수
    탈냉전 시대 맞아 진보·보수 모두 새 이념과 결합해야

    “남북 간에 갈등이 일어나면 경제상황이 불안해지고 주가가 떨어지지요? 그런데 주식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남북 간에 긴장을 더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 사람이라면 질문 거리도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보수 진영이 남북관계에서 더 강경한 대응을 선호하며, 진보진영이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풀고자 하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왜 이상하게 보일까?
     
    “부자가 가장 많다고 하는 서울의 강남 3구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의 부자 동네에서 진보 대신에 보수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의 부자들은 주식을 갖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주식값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건가요?”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떨어질지 모르지만, 강경책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결국 북한이 항복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주식이 오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을 했지만, 그리 설득력 있는 답변은 아니었다.
     
    “제 주위의 친구들은 모두 단기 투자를 하지 장기 투자를 하는 친구는 없던데요? 한국의 부자들은 주식을 다 장기 투자만 하나요?”
     
    일반적으로 한국 정치를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로 구분한다. 보수 우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공주의를 이데올로기로, 경제성장을 핵심 정강으로, 그리고 한미동맹을 가장 중요한 안보의 수단이자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치그룹이다. 자유시장과 자유주의를 핵심적 가치로 갖고 있으면서도 개발시대의 경제개발계획과 권위주의적인 박정희 체제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그 뿌리는 1945년 이후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반탁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진보 좌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냉전 반공독재를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목표로 하며, 경제성장을 위한 효율보다는 분배와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고, 경제체제를 개인의 경쟁에 맡기기보다는 정부의 개입을 통한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한미동맹에만 매달리지 않고, 중국·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실용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진보 좌파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다양한 세력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나 목표의 측면에서 보수 우파에 비해 그 스펙트럼이 넓은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한국의 진보 좌파는 해방공간의 흐름과 단절되어 있고, 1950년대 이후 자생적으로 성장하면서 서구의 자유주의, 남미의 종속이론, 유럽의 마르크스 주의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흐름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그리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1990년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성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부 외국인 학자들은 한국의 박정희를 우파로 평가하지 않는다. 우파는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 서구에서는 우파와 좌파의 정치, 경제적 지향이 시장과 국가로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의 설명에서 또 하나 어려운 점은 민족주의에 대한 태도다. 어떤 입장에 있는가와 관계없이 양쪽은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 거의 동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세부적인 정책으로 들어가면 일정한 차이를 보이지만, 양 진영이 모두 강력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일본과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본과 중국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점은 진보나 좌파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착시현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진보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적 관점을 배격한다. 민족주의는 강한 배타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원화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 진보를 위한 과정에서 부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나치와 일본의 군국주의가 극단적 민족주의를 보였던 것은 그 뿌리를 보수 우파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보수나 우파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딜레마는 한미동맹이다. 보수 우익이 하는 집회에는 항상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수 우파는 외세와의 결탁에 대해서 강한 반대의 입장을 보인다. 한국의 역사로부터 찾아보자면 위정척사파와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진정한 보수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학생들로부터 받는 질문 중에는 보수 우익이 이끄는 집회에서 다른 나라 국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기에 더하여 이스라엘의 국기까지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된다. 민족주의에 관한 한 한국 사회에는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는 자신만의 목소리와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파와 좌파는 절대적 개념인데 반하여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다. 우파는 시장경제, 좌파는 국가 중심의 경제를 사상적 기반으로 한다. 보수는 사회의 변화를 반대하는 세력이고, 진보는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세력이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냉전시기 권위주의 체제에서 주류였던 세력들을 보수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에 반대하여 민주화와 다원화를 추구해온 세력들을 진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나 구 공산권 국가에서는 공산주의를 지속하거나 부활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보수이며, 이를 자유시장체제로 바꾸려는 세력들을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는 우파가 진보가 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초기 조선을 발전시킨 사대부는 그 출발점에서는 진보였지만, 조선 후기에 가서는 개혁을 반대하고 기존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가 되었다.
     
    문제는 좌파와 우파에 있다. 첫 번째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좌·우파의 존재여부다. 좌우의 이념에 기반하여 국가 발전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경쟁했던 세력들이 있었는가? 오로지 ‘반공’만이 정치이념을 구분하는 유일한 척도였고, 지금도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선거만 있으면 색깔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세계적 상황에서 냉전체제가 무너졌음에도, 한국의 좌·우파는 아직도 냉전적 틀에 갇혀 있다. 이렇다보니 보수와 진보라는 좌·우파의 수식어 역시 과거의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좌·우파가 이런 주장을 하는데 대해서 한국적 상황에서, 더 넓게는 동아시아적 상황에서의 특수성을 갖고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은 오히려 아시아를 차별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의 좌·우파는 냉전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으며, 냉전적 성격으로부터도 진화하지 못했다.
     
    냉전의 시대가 지났고, 탈냉전의 시대가 왔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로 진전할 가능성도 있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러나 과거 냉전적 관념에 기반해 있었던 진보 좌파와 보수 우파는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추는 자신들의 이념에 맞는 진정한 좌와 우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좌우가 시대적 변화에 맞는 시장과 국가의 역할을 찾아낸다면, 진보와 보수도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이념과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시대에는 ‘시민’이 또 다른 주체로서 더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좌우가 모두 부인할 수 없는 사회적 진화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회변화를 제대로 읽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이는 한국현대사에서 나타났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걷어내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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