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75) 시절이 저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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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자효 시인

    시절이 저러하니
    이항복(1556∼1618)
    시절이 저러하니 인사도 이러하다
    이러 하거니 어이 저러 아닐소냐
    이런자 저런자 하니 한숨 겨워 하노라
    – 청구영언



    조선판 내로남불
     
    한음 이덕형과 함께 오성 대감으로 널리 알려진 이항복(李恒福)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병조판서를 지낸 전란 극복의 명신이었다. 행주대첩의 도원수 권율의 사위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역적으로 몰려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강력히 반대하여 죽음을 면하게 했다.
     
    그러나 광해군을 등에 업은 북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임해군과 영창대군 살해사건 등이 터졌다. 서인의 대표 격이었던 그는 북인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 시조는 북인 집권 시의 인사 난맥과 국정 혼란을 탄식하고 있다. 진영 논리와 당리당략만 탐하던 붕당 정치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자들이 요직에 올랐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불통의 조선판 내로남불 시대였던 셈이다. 마침내 인목대비가 폐비되자 극렬하게 반대하다가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 그때 남긴 시조 한 수.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孤臣) 원루(冤淚)를 비 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뿌려본들 어떠리
     
    그는 유배지에서 63세로 숨졌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의 길을 갔다. 서울 배화여고 별관 뒤쪽 바위벽에 그가 남긴 ‘필운대(弼雲臺)’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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