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글로벌 인사이트] 이준석, 이건희, 그리고 대한민국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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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기 순회특파원

    이준석 “정치 길게 하려면 … ”
     

    이준석 메시지는 흔들림 없는 일관성
    이건희 메시지는 함축성 담긴 정제미
    대한민국은 일관성도, 정제미도 없어
    오락가락 외교 메시지 누가 믿을까

    오늘(11일) 오후 2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된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36살 0선’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선전하는 모양새다. ‘이준석 신드롬’을 놓곤 “트럼피즘의 미니 버전”(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럴까. 트럼프는 오만했다. 그리고 망상에 가까운 우월의식을 ‘그 밖’의 것들에 대한 혐오로 연결했다. 여성을 마음껏 폄훼하고, 국경에 벽을 세워 이민자와 백인을 갈라치기하고, 대놓고 장애인을 조롱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분명 우월의식은 있어 보이지만, 혐오까지 나아가진 않았다. 영리하게 멈췄다. 결정적 차이다. 정치권은 그를 “국민이 변화를 갈망하는 타이밍에 운 좋게 등장했다”고 본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변화가 다일까.
     
    난 그 못지않게 ‘일관성’에 주목한다. “별을 잡은 것 같다”고 하다 석 달 만에 “수사만 해 본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라고 돌변하는 노정객, 철수와 진격을 거듭하다 ‘정체성 0’이 된 벤처기업인 출신 정치인, 당 대표가 되겠다는 것인지 ‘윤석열 선대위원장’이 되겠다는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고만고만한 야당 중진들보다 훨씬 메시지가 일관돼 있다. 일각에선 “실력주의를 공정의 가치로 교묘히 포장했다”고 비판한다. 그럴 수도 있다. 다만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전 최고위원의 말과 글에는 일관된 논리와 신념이 서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그 이유를 “(정치를) 길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런 명답이 없다. 변화의 시대를 길게 지배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일관성인 게다.
      
    이건희가 밤새 ‘대부’를 본 이유
     

    글로벌 인사이트 6/11

    글로벌 인사이트 6/11

    일본 홋카이도 인구 17만의 공업도시 도마코마이(苫小牧)의 한 호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여기서 사흘 밤을 꼴딱 새웠다. 커튼을 치고 영화 ‘대부’에 심취했다. 1990년대 일이다. 당시 이 회장을 수행했던 전직 삼성 고위 인사가 최근 들려준 비화. “회장께선 당시 주인공 돈 꼴레오네 역인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의 제스처나 짧은 말 한마디에 몰입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넘어갈 장면에서 회장께선 ‘스톱! 다시 뒤로 돌려 봐!’를 반복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복기했다.” 예컨대 이랬다. 총격을 당한 말론 브랜도가 아들을 모두 불러모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밖으로 나가라는 듯한 손 제스처를 했다. 이 회장은 “아, 저것은 복수를 묵인한다는 약속된 메시지야!”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3부작(총 9시간)을 다 보는 데는 실제 러닝타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3부작을 두 번이나 이어봤다는 사실. 이 회장의 ‘정제된 메시지’에 대한 집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리더란 화려한 말 열 가지보다 제스처 하나, 정제된 표현 한마디로 자신의 메시지를 널리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믿음이었다.
     
    도마코마이의 ‘대부’ 관람 이후 삼성은 삼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축적으로 묘사한 ‘삼성 용어집’을 만들었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양자강 물=흘러간 강물처럼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면밀한 분석도 좋지만, 과감한 실천이 우선이다. ▶수도꼭지=수도꼭지가 고장 나 물이 새고 있는데 고칠 돈이 아까워 그대로 둔다면, 수리비용보다 수도요금이 더 많이 나온다.
      
    흔들리는 ‘대한민국 메시지’
     

    이준석(左), 이건희(右)

    이준석(左), 이건희(右)

    외교는 메시지다. 한쪽이 A라고 우겨도 다른 한쪽이 오해하거나 잘못 알아들어 B라고 받아들이면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임시방편이 아닌 확고하고 명쾌한 방향성이 필요한 이유다. 눈앞의 이익을 위한 전략적·전술적 모호성과는 다른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최고의 회담’이라 자평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사상 최초로 대만 문제를 성명에 넣었다. 중국에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운 엄청난 결정이었다.
     
    하지만 회담이 끝나자마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물론 안다. 하지만 이는 약속의 당사국인 미국과의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정 장관 발언 후 백악관의 한국 총괄책임자 커트 캠벨 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이 두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여러분이 보았듯이 일본과 한국은 모두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유지의 열망을 공개적으로 재확인했다”고 못 박고 나선 이유는 뭘까. 그뿐 아니다. 미국은 코로나 백신을 지원하며 “한미연합군 준비태세용”이라고 하는 데,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훈련은 유보했으면 한다”고 계속 다른 메시지를 낸다. “정말 정부 내에서 제대로 숙의를 하고 한·미 공동성명에 사인한 것 맞아? 성명 내용을 계속 지킬 생각이 있는 건 맞아?”란 의문과 우려가 동시에 나오는 이유다.
     
    ‘오락가락병’은 사법부로도 번졌다. 이번 주초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1심 재판에서 대법원의 4년 전 판결이 뒤집어졌다. 얼마 전 위안부 피해자 재판도 넉 달 만에 정반대 판결이 나왔다. 법리, 객관적 증거 때문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재판부의 가치관, 성향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집안 사정을 국제사회는 얼마나 이해해줄까.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말해 온 우리 대통령의 말을 얼마나 비웃을까.
     
    이준석의 일관성이나 이건희의 정제미, 그 어느 것도 없는 ‘대한민국 메시지’의 현주소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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