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WTO 보조금협정 개정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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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정부의 보조금은 정상적인 무역흐름을 왜곡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출성과에 따라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 수출가격이 싸져서 이 상품을 수입하는 국가는 수입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또한 국산부품을 사용할 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 국산제품가격이 싸져서 외국상품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도 보조금관련 규정을 포함시켰다.
     

    중국 산업보조금 과잉 생산 유발
    선진국 신산업 육성 정책도 문제
    보조금 규율할 새 WTO규범 필요
    한국도 보조금 협상 적극 참여해야

    그 후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보다 명확하고 포괄적인 ‘보조금 및 상계관세에 관한 협정’을 마련했다. 이 협정은 보조금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재정적 기여, 정부 또는 ‘공공기관(public body)’에 의한 지급, 혜택 제공 등 세 가지 요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특정기업, 특정산업 등에 지급된 보조금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특정성(specificity)’ 조건도 추가했다.
     
    나아가 이 협정은 보조금을 금지보조금, 조치가능보조금, 허용보조금 등으로 구분하였다. 금지보조금에는 앞에서 본 수출보조금과 수입대체보조금이 해당된다. 조치가능보조금은 상대국의 국내산업에 실질적 피해를 주거나 국가의 이익에 ‘심각한 손상(serious prejudice)’을 주는 보조금으로 정의했다. 이처럼 보조금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한 국가는 보조금 효과를 상쇄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WTO에 제소할 수 있게 했다. 한편 연구개발 및 낙후된 지역개발 지원과 환경관련 보조금은 허용보조금으로 분류했으나 1999년 말 그 효력이 종료되었다.
     
    WTO의 보조금협정은 이전에 비해 진일보한 규범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미·중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보조금협정 개정이 WTO개혁의 핵심의제로 부상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중국의 불공정한 산업보조금(industrial subsidy)지급이 중국내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등 여러 산업에서 과잉생산을 초래해 세계무역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WTO가 아무런 조치를 못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은 WTO 보조금협정 개정과 관련해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핵심요지는 첫째, 특정기업에 대한 무제한적인 대출보증, 구조조정 계획이 없는 부실기업에 대한 보조금, 정상적인 융자나 투자를 받을 수 없는 공급과잉 기업 및 산업에 대한 보조금 등을 금지보조금에 포함시킨다. 둘째, 지나치게 큰 규모의 보조금, 경쟁력이 없는 기업에 대한 보조금, 과잉생산을 유발하는 보조금 등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한 정부가 보조금이 부당하지 않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한다. 셋째, 기존 WTO협정에 나와 있는 심각한 손상의 유형에 과잉공급을 추가한다. 넷째, 보조금을 지급하는 ‘공공기관’의 범주에 국영기업도 포함시킨다. 다섯째, ‘비시장경제(non-market economy)’ 국가의 보조금에 대한 조사에서는 필요한 경우 제3국 자료를 대신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공동선언문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반해 중국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연구개발 및 낙후된 지역개발 지원과 환경관련 보조금 등의 허용보조금을 부활시키고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또한 개도국 회원국의 경우 WTO 보조금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해야 하고 동시에 선진국들이 국내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여기는 농업보조금의 완전철폐와 안보를 근거로 한 일방적 무역제한조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주요국들의 입장이 확연하게 달라 WTO 보조금 개혁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항공기 보조금 분쟁에서 나타났듯이 미국과 EU 등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보조금에 대한 입장차이가 있어 보인다. 나아가 최근에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인공지능, 반도체, 고성능 배터리, 차세대 모바일 네트워크, 청정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제혜택 부여와 재정지출 등 보조금 지급을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신산업 육성정책과 중국의 산업보조금정책이 아무런 규율 없이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공정무역을 보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균형 있게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보조금관련 규범이 빠른 시일 안에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WTO개혁은 물론이고 다자무역질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러한 후폭풍을 감안해서라도 주요국들은 어떻게 해서든 WTO의 보조금협정 개정에 대한 타협안을 찾아내야 한다.
     
    주요 국가의 보조금관련 제안들을 보면 공공기관의 범주, 부실기업·특정산업·신산업 등에 대한 보조금 등 우리나라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실제로 우리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지원이 WTO 보조금협정에 위반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우리 정부도 보조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WTO 보조금협정 개정 논의에 적극 참여해 이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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