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지쳤을 때는 잠시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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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혜수 스포츠팀장

    쓰부라야 고키치는 1964년 도쿄 여름 올림픽 육상 남자 마라톤 동메달리스트다. 그는 마라톤 입문 7개월 만에 도쿄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2위로 국가대표가 됐다. 올림픽 남자 마라톤은 대회 폐막 사흘 전 열렸다. 그는 선두권에서 달렸고, 2위로 결승점인 도쿄 국립경기장 트랙에 들어섰다. 그 앞에는 한 선수뿐이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한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쓰부라야는 뒤따라오던 베이질 히틀리(영국)에 추월당했다. 그의 동메달은 일본이 도쿄올림픽 육상에서 따낸 유일한 메달이었다. 값진 메달이지만, 그는 은메달을 놓친 자책감이 더 컸다.
     
    쓰부라야는 실수를 만회하겠다며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도전을 선언했다. 파혼까지 하며 운동에 전념했다. 지병인 허리 추간판 탈출증(디스크)이 그를 괴롭혔다. 도쿄올림픽 이후 마라톤 풀코스는 두 차례밖에 뛰지 못했다. 한 번은 중도 포기했고, 한 번은 9위에 그쳤다. 1968년 새해가 밝은지 얼마 안 된 1월 9일, 그는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이 28살. 그는 유서에 “아버지 어머니, 고키치는 이미 완전히 지쳐버려서 달릴 수 없습니다”라고 썼다.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 유서를 두고 “천만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상대에 선 히틀리, 아베베, 쓰부라야.(왼쪽부터) [사진 IOC]

    시상대에 선 히틀리, 아베베, 쓰부라야.(왼쪽부터) [사진 IOC]

    최근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매치플레이 우승자는 앨리 유잉(미국)이었다. 그런데 우승자보다 더 화제가 된 건 4위 펑샨샨(중국)이었다. 그는 3~4위전을 앞두고 기권했다. 그는 “나를 위해 옳은 결정을 했다. 정말 피곤하다”고 말했다. 나흘간 4라운드를 도는 일반 대회와 달리 매치플레이는 최대 7라운드를 돈다. 여러 번 연장 승부를 펼쳐 실제 홀 수는 더 많다. 그는 “결승에 올랐다면 쓰러질 때까지 쳤겠지만, 4강전에서 져 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더 돌면 아마 코스에서 쓰러질 거다. 자신을 그렇게 나쁜 상황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이 용어는 1974년 미국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처음 사용했다. 어떤 일에 의욕적으로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쓰부라야도, 펑샨샨도 번아웃 증후군이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15년 번아웃 증후군을 자가 진단할 수 있는 간이테스트(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를 내놓았다.
     
    2021년의 반환점을 눈앞에 둔 지금, 아마도 많은 이의 피로도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을 거다. 부디 쓰부라야처럼 ‘완전히 지쳐서 달릴 수 없게 되기’ 전에, 펑샨샨 말마따나 ‘자신을 그렇게 나쁜 상황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지쳤을 때는 잠시 쉬어가자.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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