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87년 체제의 종언과 국가의 미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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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신세계를 꿈꿨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의 권한을 최소화하고 세계 최초로 왕이 아닌 대통령제를 만들었고, 입법·사법·행정이 서로 견제하는 삼권분립의 민주적 헌법을 만들었다. 이들이 꿈꾼 신세계는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듯 전혀 새로운 사회체제를 만들어간 것이다.
     

    87년 민주화 체제 정치의 종언
    실용적 진보 MZ세대 정치 등장
    우리나라 국가 스펙트럼 넓혀야
    미래와 세계 꿰뚫는 지도자 원해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4년 연임의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참모들이 의아해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종신제인 왕정만이 국가체제의 기본이었기 때문에 4년제 대통령 임기제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누구는 워싱턴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이해 못한 어리석은 간언이었다. 워싱턴과 함께 국가건설을 논의했던 건국의 아버지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은 이념과 정당은 달랐어도 2대, 3대 대통령이 되어 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
     
    미국은 연방제, 노예해방 등 사회시스템뿐 아니라 전기, 자동차, 라디오, TV, 반도체, 컴퓨터 등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창조했고, 영화, 음악 등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 미국은 많은 이민자들이 함께 나라를 만들어가는 유목민족의 나라다. 그렇기에 정답은 없고 언제나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는 창조의 나라다.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리자 미국은 과학교육을 혁신하고 NASA를 창설하여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인간을 달에 보내는 아폴로 계획에 대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명연설을 남기기도 했다. 우주항공 기술과 국방기술은 라식수술과 같은 정밀기술뿐 아니라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기술, 인스턴트 커피와 같은 식품기술 등 20세기 후반 다양한 생활기술을 발전시켰다. 지금도 실리콘밸리에 전 세계 엘리트들이 모여 첨단기술을 창조해내고 있다.
     
    『백년후』, 『21세기 지정학과 미국의 패권전략』 등으로 세계질서의 미래를 예리하게 분석한 조지 프리드먼은 최근 신작 『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에서 미국은 일정한 주기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나라라고 한다. 영국의 식민지로 보잘 것 없던 나라에서 200년 뒤 세계 제국이 될 기반을 건국의 아버지들은 창조해 냈다. 개척과 도전, 그리고 창조적 실험정신은 오늘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있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국가 스펙트럼은 어떤가. 미래와 세계질서를 꿰뚫어보고 나라를 설계하기보다는 과거와 미시적 이슈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 우리의 정치를 보면 광해군과 인조반정의 사화가 떠오른다. 법조계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사법개혁 논쟁도 과거에 사로잡혀 시시비비만 따지는 유학자들의 사색당쟁과 전혀 다를 것 없다.
     
    미래는 미래세대에 맡겨야 한다. 대학에서도 아직 정년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젊은 조교수들을 신임교수 초빙 학과회의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년을 몇년 앞둔 교수들이 기득권을 붙잡고 더 오래 같이 생활하게 될 신임교수 초빙에 이들의 참여를 막는 것은 어처구니없다. 정치에서도 미래를 더 오래 살게 될 미래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민주화를 독점한 87년 체제의 편협한 국가운영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산업화 우파보수와 민주화 좌파보수 정치인들은 짐을 챙길 준비를 해야 한다. 새로이 선출되는 대통령은 최소한 2050년 정도의 미래와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꿰뚫어보는 국가 스펙트럼을 제시해야 한다.
     
    친이, 친박으로 싸우느라 정권을 빼앗긴 야당이나 친문중심으로 정치를 운영하는 여당의 행태를 보고 국민은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제일 낙후된 영역이라 생각한다. 이제 36세 신임 야당 대표에게 또 한번 정치 도박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국민의 심정을 정치권은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고 공정과 정의가 넘쳐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국민은 장밋빛 미래한국을 꿈꾸었다. 하지만 정권을 빼앗긴 복수심에 불타 사법개혁과 언론개혁과 적폐청산만을 외칠 때 미래세대는 멍들어 가고 있었다.
     
    신동엽 시인은 1967년 4·19 혁명후 민주의 뒤에 숨어 위선을 자행한 기득권 정치세력을 보고 이런 시를 썼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는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의 포효가 민주화의 훈장을 앞세워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만 불태우는 586세대 정치인들의 가슴에도 울려 퍼지길 바란다.
     
    이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고 설계하기보다 얄팍한 포퓰리즘 공약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껍데기 정치인들은 사라지길 바란다. 야당도 정권을 바꿀 인물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바꿀 인물을 찾아야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미래와 세계를 꿈꾸며 국가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지도자들이 많아야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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