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나이 집착 사회’ 그 위험성과 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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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한국은 ‘나이 집착 사회’다. 생물학적 나이가 모든 관계 설정에서 우선적 기준이 된다. 2030, 3040, 4050, 5060, 6070, 7080세대는 물론, 386, 486, 586세대 등 나이에 따른 세대 구분 표지가 도처에서 호출된다. 그뿐이 아니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탈진 세대, 무민 세대(無-Mean) 등 세대를 나타내는 용어는 3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대남 (20대 남자)’ 과 ‘이대녀 (20대 여자)’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특정 공인을 지칭할 때 ‘○○살 XXX’ 또는 ‘○○년생 XXX’ 등과 같은 표현이 신문 기사 제목에 자주 등장하곤 한다. 최근 어느 당대표에 대한 기사가 ‘85년생 민방위 ○○○, 백신 맞고 휴식’같은 제목으로 언론 매체에 등장한다. 밀란 쿤데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론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최근 한 국회의원은 현 대통령을 가리켜 “큰 형님”이라고 호칭했다. ‘36살’의 어느 당대표는 대표직 수락연설에서 ‘선배들’이라는 용어를 소환한다. 법조인에 대하여도 ‘사법연수원 ○○기’라는 표현이 필수사항처럼 미디어에서 표기된다. 학계에서도 나이에 따른 서열이나 선·후배 의식이 학자들 간의 관계설정에 주요 요소로 작동한다. 치열한 토론과 비판적 문제제기가 생명인 학계가 발전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의 나이 집착주의는 병적일 만큼 점점 강화되고 있다.
     

    나이로 구분하는 경향 심해져
    균질적 집단화와 관계의 위계화
    창의적 토론과 혁신을 막고
    공정·평등 가치 실현 어렵게 해

    ‘어르신’이라는 용어가 공적 용어로 등장한 지 오래다. 얼핏 들으면, 이 용어는 ‘존중의 정치’를 표방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이에 근거한 여타의 집단적 표지는 양가적으로 작동한다. ‘존중의 정치’를 표방하는 것 같지만, 도처에서 ‘폄하의 정치’로 기능한다. 특정한 나이가 되어 ‘어르신’이라는 제도적 범주속에 들어가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정적이다. 그들은 ‘한물간 사람’이며, 이제는 현실세계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 ‘기생적 존재’라는 의식적·무의식적 폄하를 작동하게 한다. 간혹 ‘어르신’ 범주에서 예외적 취급을 받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는 ‘시대의 어르신·스승’ 또는 ‘원로 작가·정치인·종교인·학자’ 등과 같은 미화·이상화가 적용된다.  
     
    그런데 한 개인에 대한 미화나 폄하는 그 기능에 있어서 동일하다. 각 개인이 지닌 실제의 모습이나 개별성(singularity)을 보지 않으며,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이질성(heterogeneity)을 외면하고 부정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개성 있는 ‘단수적 존재’로서의 고유성을 상실하는 존재가 된다. 나이집단에 따른 표지에 제한된 ‘복수(複數)적 존재’일 뿐이다. 한 인간을 개별적 존재로 보지 않게 하는 그 장치 자체가, 바로 한 존재에 대한 폄하의 정치다.
     
    진취성이나 보수성은 나이와 전혀 상관없다. 현재 미국 정치계에서 가장 진취적인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인 버니 샌더스는 79세다. 진보 입장에 선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81세다. 대법원 판사였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젠더평등과 노동자 권리를 위해 진보적 소수의견을 치열하게 펼치며 87세의 나이까지 일했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30세였던 1973년 상원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인권 확장과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하는 진보적 대통령이다. 그는 78세다. 그런가 하면, 30세때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히틀러는 그 ‘젊은’ 나이에 이미 ‘정부의 목표는 유대인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것’이라는 반인륜적 주장을 펼쳤다. 공정과 능력이라는 명제하에서 실제로는 다층적 혐오를 그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여권운동이나 노동운동 등에 대한 백래시를 통해서 대중을 피해의식과 분노로 선동하는 ‘젊은’ 정치인은 곳곳에 있다.
     
    나이 집착주의는 왜 문제인가. 첫째, 나이에 따른 관계의 서열화와 위계주의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 둘째, 나이에 근거한 균질화 (homogenization)를 고착시킨다. 특정한 나이라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의 성향, 개성, 가치관 등과 상관없이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전제를 자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셋째, 공사구분의 공정성과 나이차별을 넘어서는 평등성의 가치를 실천하기 어렵게 한다. 이 점에서 지극히 반(反)민주적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또는 4·16 세월호 참사 등 특정한 사회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같은 세대라고 해서,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하여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동적으로 구성되는 ‘동질적 세대 의식’이란 없다는 것이다. 의식이란 개인의 가치관·인간관·역사관·정치관 등 다층적 요소들에 의해서 형성된다.  
     
    나이나 세대가 그 사람의 혁신성 또는 보수성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인자가 될 수 없다. 나이 집착 주의는 우리의 사유를 단선적으로 만드는 ‘균질성의 가치’를 강화하는 부정적 기능을 한다. 한국사회가 벗어나야 할 지독한 사회적 질병이다. 한국사회가 나이집착주의에 갇혀있을 때 기술과 경제 영역에서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설 지 모르지만, 정치·법·문화·종교·학문 등 다양한 영역에서는 그 후진성을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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