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의 퍼스펙티브] ‘대권 없는 나라’ 약속하는 후보에게 대권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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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개헌이 시급한 이유

    전성철의 퍼스펙티브

    헌법 개정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주로 여권 대선 주자들이 바람을 잡고 있다. 최근에는 박병석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이렇게 선거 때만 되면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 나라는 소위 선진국 중에는 거의 없다. 그만큼 유독 우리 국민이 정치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 불만은 근원적으로 어디서 올까?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 헌법에 선진국 중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소위 ‘대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이 정치의 이 모든 질곡은 대부분 우리 대통령에게만 주어진 바로 그 ‘대권’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내각제·이원집정부제
    대권없는 미국, 부강한 민주국가 돼
    대권 가진 국가 국민들은 모두 불행
    대권 박탈 개헌하자는 후보 뽑아야

    우리는 반드시 개헌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국민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바로 이 ‘대권’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해방 후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 국민은 모두 ‘대권’이라는 것의 거대한 희생자들이다.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두 번이나 무참히 피를 흘려야 했던 4·19, 5·18 을 포함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은 모두 사생결단식으로 벌어진 정파간 투쟁들 때문에 뼛속 깊이 시달려 왔다. 왜 선진국 중 유독 우리 국민만 그렇게 정치로부터 시달려야 했을까? 바로 그 ‘대권’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세계의 선진국 중 대한민국식 헌정 체제, 다시말해 국가 원수에게 소위 ‘대권’을 주는 나라는 없다. OECD 38개 회원국 중 소위 겉모양으로라도 대통령제라는 것을 가진 나라는 최근까지도 미국과 한국·멕시코 정도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내각제 아니면 프랑스 같은 이원집정제이다. 왜 이 나라들이 대통령제를 그렇게 외면했을까? 바로 그 ‘대권’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대권이라는 것이 내포하고 있는 그 엄청난 위험성, 특히 국민에게 주는 그 엄청난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권을 허용한 몇몇 나라들, 러시아·중국·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 같은 나라들이 국민에게 준 그 거대한 고통을 그들이 모두 생생히 목격하고 기억했기때문이었다.
     
    지구촌에서 대통령제를 가지고도 국민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멋지게 발전한 나라는 딱 한 나라밖에 없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온 수억 명의 사람들로 찬란한 민주주의와 가장 강력한 군사력, 그리고 부자 나라를 일군 거의 기적 같은 나라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우리 같이 대통령제를 했는데, 왜 그 나라만 그렇게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딱 한 가지다. 한마디로, 그 나라는 우리와 달리 대통령에게 소위 ‘대권’이란 것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미국 대통령의 권력은 우리 대통령의 그것에 비하면 정말 한심할 정도로 미미하다.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너무 없다. 의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장관은 물론 약소국 대사 하나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는 나라, 그것이 바로 미국이다.
     
    가장 중요하게, 미국의 대통령은 2년 만에 한 번씩 반드시 국민이 내주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바로 총선이다.  2년마다 미국 하원 의원 전원, 상원 의원 3분의 1이 새로 선출된다. 대통령이 취임해서 바로 2년 후 치르게 되는 첫 총선에서 만일 여당이 패배하면 나머지 2년 간 대통령은 한마디로 맥을 못 추게 된다. 업적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업적 없는 대통령이 2년 후 재선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한마디로 단임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단임 대통령은 예외 없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낙인이 찍힌다.
     
    이러니 미국 대통령은 한 마디로, 4년 내내 국민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것뿐이아니다. 미국 권력 구조상 최고의 어른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법원이다. 국회가 제정하는 모든 법률과 행정부의 모든 처분은 모두 헌법을 기준으로 한 사법부의 심사 대상이다. 종신 임기를 가진 연방 판사들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모든 것을 헌법 정신과 판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자기 이익을 위해 무엇인가 적당히 하는 것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이것이 모두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미국 대통령에게는 ‘대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견제받고 또 평가받는 곳에 어떻게 대권이 있겠는가?
     
    내각제 총리에게 대권이 없다는 것은 구태여 설명이 필요치 않다. 국민이 원하면 집권 한 달 만에라도 총리를 쫓아낼 수 있는 게 내각제다. 이원집정부제는 아예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가 나눠서 가지니 대권이라는 것이 원초적으로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는 분명히 ‘대권’이라는 것이 있다. 임기 5년 동안 사실상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전횡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사실상 장관을 포함한 모든 행정 공무원에 대해 인사권을 가진다. 사실상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그 천문학적인 예산, 공천에 대한 그 엄청난 영향력과 인사권에다, 대법원장만 자기편으로 앉혀 놓으면 사법부의 견제를 받을 가능성도 별로 없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기 때문에 우리 대통령이 누리는 권력을 ‘대권’이라 부르는 것이다. 미국식 대통령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에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권력이다.
     
    왜 우리 정치판이 그렇게 맨날 싸움판인가? 한마디로, 그 대권의 힘이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에 각 정파들이 정권 잡으려고 사생결단으로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대권이 우리 정치의 이 모든 모순·갈등·싸움의 근본 원천이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왕정도 아닌데 우리 헌법이 사실상 대권을 허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우리는 진정한 민주 헌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나라에도 대권은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을 포함해 대권 없는 나라들이 대권이 행사되는 나라보다 훨씬 더 강했다. 지난 몇백년 동안 위대한 업적을 이룬 나라는 모두 대권 없는 나라였다. 보라! 내각제 국가 영국이 1, 2차 세계 대전 때 황제와 같은 대권을 구사했던 독일을 두 번 다 패퇴시켰다. 수천, 수만 년 동안 헐벗음과 굶주림에 시달렸던 인류를 구원한 산업혁명도 한마디로 사실상 대권이 없는 나라, 즉, 영국에서 일어났다.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부자이면서 강력한 30여 개 나라는 다 대권이 없는 나라들이다. 다른 말로, 그런 나라 국민들이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고,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반면 20세기 들어 독일·일본·남미의 수많은 독재 국가 등 소위 ‘대권’ 있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다 패망했거나 엄청난 불행을 겪어야 했다.
     
    4·19후 ‘대권이 없는 나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겪은 그 일시적 혼란 때문에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자칫 대권 없는 나라에 대한 불안, 그리고 대권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불안이다. 4·19 이후의 그 혼란은 어느 나라에서나 독재 정권 타도 후에 거의 반드시 나타나는 국민의 일시적 해방감의 발로였을 뿐이었다. 그때의 그 짧은 경험으로 대권 없는 나라에 대해 불안해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정치의 가장 큰 과제는 한마디로, 하루빨리 이 나라를 ‘대권 없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년 대선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이 나라를 ‘대권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에게 ‘대권’을 주어야 한다. 즉, ‘대권 박탈’ 개헌을 약속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우리가 정말 새로운 미래,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해야 한다.  
     
    전성철 글로발 스탠다드 연구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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