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제갈량의 비단 주머니와 우리 시대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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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삼국지연의』에 제갈량의 ‘금낭묘계’가 나온다. 유비가 손권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으러 오나라로 갈 때 화를 당할까 두려워했다. 제갈량이 조자룡에게 비단 주머니 세 개를 주고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씩 열어 보라고 했다. 조자룡은 금낭의 계책으로 어려움을 무사히 해결한다. 이 시대도 금낭묘계를 찾는다. 이준석 제1야당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비단 주머니 세 개를 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금낭묘계는 삼국지 작가가 허구로 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아무리 제갈공명이지만,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꿰뚫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식은 개인과 국가 발전의 힘
    디지털 시대 맞는 지식 익히며
    혁신하면서 지혜와 참지식 쌓고
    지도자는 지혜 갖추고 헌신해야

    만일, 지금 제갈공명과 같은 현자가 있다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현자는 묘책을 비단 주머니에 넣어 주지는 않고 휴대전화나 SNS로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지식을 쌓고 전달하는 방법이 과거와 다르다. 사실 우리는 제갈량보다 몇백 배 뛰어난 휴대폰의 인공지능에서 수시로 필요한 지식을 얻는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은 개인의 소득과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를 발전시키는 힘이다. 경제학의 내생적 성장이론은 지식의 축적을 장기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본다. 지식은 기술 진보와 ‘인적 자본’을 확대하여 생산성을 높인다.
     
    지식이 중요하다면 우리는 어떤 지식을, 어떻게 쌓아야 할까? 이 시대의 지식 쌓기는 새로운 방식을 요구한다. 첫째, 필요한 지식을 찾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많은 지식을 외워 머리에 넣어 둘 필요가 없다. 네이버와 유튜브에 언어, 요리, 법률, 의학, 운동 등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넘쳐난다. 디지털 정보와 기기를 활용하는 능력과 과학 지식을 익혀 디지털 지식의 보물 창고를 열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어떤 지식이 필요하고 유익한 지식인지를 인식하고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상위 인지(meta cognition)’ 능력이 중요하다. 비판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 직무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낡고 불필요한 지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세상이 빠르게 바뀌면서 개인과 사회가 축적한 삶의 지식과 경험의 가치는 줄어든다. 부모와 직장 선배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가 젊은 세대에게는 잔소리인 경우가 많다. 삼강오륜에 얽매여 ‘장유유서’, ‘부부유별’을 고집하는 사람은 세상의 변화에 뒤처진다. 실력보다 나이, 성별, 출신에 따른 질서를 우선으로 하는 사회에서 창조적인 지식이 나오기 힘들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 혁신으로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 경제의 역동성이라고 했다. 권력을 독점하는 지배 계층과 시장을 지배하고 신규 진입을 막는 대기업과 노동조합의 힘을 줄이고 ‘공정한 경쟁’ 사회를 만들어야 젊은 세대와 혁신 기업이 클 수 있다.
     
    셋째, 지혜를 갖추고 참된 지식을 쌓아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누구나 손쉽게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많다고 지혜를 갖춘 사람은 아니다. 지식(知識, knowledge)은 어떤 내용이나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고, 지혜(智慧, wisdom)는 사물의 이치와 인간 존재의 목적을 깨닫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적 능력이다. 인간을 경외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선한 마음을 지니고 남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지혜로운 사람이다. 남보다 높은 지위나 학벌이 있어도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고집하는 오만한 사람은 지혜롭지 못하다. 목적이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잘못된 수단으로 쓰이는 지식을 참지식이라고 할 수 없다. 차가운 바다와 위험한 붕괴 사고 현장에서 생존자 구조에 목숨을 걸었던 의인의 헌신은 어떤 현란한 지식도 비할 수 없는 참지식이다.
     
    지도자는 특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혜를 갖추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많은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민생은 뒷전이고, 국민을 편 가르고 자기편에는 한없이 관용을 베풀고 상대편에게는 이중잣대를 들이대면서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은 것은 뛰어난 지식이나 목숨 걸고 백인 정권에 저항한 투쟁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용서와 화해, 통합의 리더십이었다.
     
    미국에는 퇴임하는 대통령이 집무실에 손편지를 남기는 전통이 있다. 전임자로서 후임자에게 덕담과 국가를 위한 당부를 남긴다. 어떤 시대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격려하기 위해 직접 쓴 손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제갈량의 비단 주머니가 실제 있었다면 아마도 조자룡에 대한 믿음과 격려가 담긴 손편지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전 세계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 사회가 혁신과 참지식으로 거듭나고,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지혜롭고 헌신하는 지도자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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