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케테 콜비츠 판화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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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판화는 유일하게 복제가 가능한 미술 장르다. 그래서 선전과 계몽이 요구되는 역사적 혼란기마다 자신의 무한복제력을 발휘해 왔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이념 확산에 기여한 루카스 크라나흐의 판화가 그러했으며 1808년 나폴레옹의 마드리드 침공을 기록한 프란시스 고야의 연작판화 ‘전쟁의 참화’가 그러했다.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1867-1945)의 판화에는 19세기 말 비스마르크의 급격한 공업화 정책으로 생겨난 도시빈민층의 삶과 두 차례 세계대전이 인류에 가져온 비통과 공포가 응축돼 있다. 제주도 포도뮤지엄의 ‘아가, 봄이 왔다’전에서 우리는 그녀의 자화상과 ‘농민전쟁’ 판화연작은 물론, 모성과 죽음을 주제로 한 33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2022년 3월7일까지).
     

    희생, ‘전쟁’ 연작 중에서, 1922, 37.1x 40.2㎝, 목판화. [사진 포도뮤지엄]

    희생, ‘전쟁’ 연작 중에서, 1922, 37.1x 40.2㎝, 목판화. [사진 포도뮤지엄]

    콜비츠의 판화가 갖는 선동성은 1844년 슐레지엔 공장 노동자들이 자본가를 상대로 일으켰던 항거의 과정을 6장의 동판과 석판화로 묘사한 ‘직조공들의 봉기’에서 잘 드러난다. 무수한 습작과 소묘를 거쳐 1893년부터 5년여 동안 완성된 연작에는 노동자의 삶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빈곤과 질병, 불의에 항거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분노가 강렬한 음영대비를 통해 표현됐다. 1차 세계대전에서 둘째 아들을 잃은 콜비츠는 1914년을 기점으로 반전을 테마로 한 목판화 작업을 본격화했다. ‘희생’(사진)에서 갓난아이를 제단에 바치듯 두 팔로 감싸 안은 여인은 콜비츠 자신이자 전쟁통에 자식을 잃은 무수한 어머니다. 동판화의 가는 선묘 대신 목판 위에 고스란히 남은 굵고 거친 칼자국은 출구 잃은 모성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나치정권이 들어서고 그녀는 공식적 활동을 금지당하지만, 그녀의 판화는 대륙을 건너 중국에 전해졌다. 루쉰은 국민당에 의해 살해된 제자 러우스를 추모하기 위해 1931년 콜비츠의 ‘희생’을 지하간행물 ‘북두’에 게재했으며, 표현력이 강한 그녀의 판화를 직접 구입해 이를 신흥 판화운동의 범본으로 삼았다. 그녀의 영향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투쟁을 벌이던 1950년대 싱가포르에서는 미술잡지 ‘경운’을 통해 그녀의 작품이 다량 소개되었으며, 전후 일본에서는 그녀의 판화가 중국목판화와 함께 소개되어 프롤레타리아 미술운동에 중요한 영감으로 작용했다. 분단 이데올로기로 인해 사회적 리얼리즘 미술과 소원했던 한국에서는 1980년대가 돼서야 민중 판화운동을 통해 그녀의 판화가 소개되었다.  
     
    케테 콜비츠가 묘사한 전쟁과 압제에 항거하는 민중의 모습은 시공을 초월해 역사적 고비마다 각국의 판화가들에게 부활한다. 여성으로서, 사회주의자로서 케테 콜비츠의 판화는 삶과 합치된 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여전한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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