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시선] 춤꾼 이애주의 ‘승무’가 남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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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타계한 이애주씨가 생전에 ‘승무'(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를 추고 있다. 이씨는 타계 전에 우리 춤의 계승과 발전을 꾀하는 이애주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사진 이진환]

    2년 전 가을,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작은 춤판이 벌어졌다.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인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산(大山) 김석진옹 앞에서 너울너울 손발을 놀렸다. 올해 아흔넷인 김옹은 『주역』의 둘도 없는 전문가로 꼽힌다. 이씨는 이날 스승의 『새로 쓴 대산 주역 강의』 발간을 축하했다. 고요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춤사위를 보여줬다.
     이애주가 누구인가. 1987년 7월 연세대생 이한열군의 영혼을 달랜 ‘시국춤’의 대명사다. 그런 이씨와 『주역』의 만남은 다소 의외였다. 알고 보니 그 인연은 제법 오래됐다. 이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김옹을 모시며 『주역』을 파고들었다. 우리 춤의 도저한 뿌리를 『주역』에서 찾았다. 춤과 만물의 생성원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우쳤다.  

    우리 춤의 시작과 끝은 절 드리기
    자기 속 비우고 상대방 섬기는 것
    춤판과 정치판의 본체는 똑같아

     김옹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참으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주역』에도 춤추는 법이 나옵니다. ‘고지무지이진신(鼓之舞之以盡神)’이라고 했어요. 발로 땅을 두드리고, 팔을 자유로이 흔들며 신명을 다하는 거죠. 춤의 가장 기본적인 동작입니다.”

    한국전통춤회 단원들이 지난달 26일 이애주씨를 기리는 '승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이애주문화재단]

    한국전통춤회 단원들이 지난달 26일 이애주씨를 기리는 ‘승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이애주문화재단]

     지난달 26일 토요일, 경기도 용인시 경기국악당에서 또 다른 춤판이 열렸다. 올 5월 10일 작고한 이씨를 기리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대가 펼쳐졌다. ‘바람맞이 시나위’ 음악부터 전통춤의 고갱이를 아우른 ‘승무’까지 이씨의 행적을 돌아보는 후학들의 몸짓이 1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승무’였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장삼 자락, 미끄러질 듯 땅을 디디는 버선발, 세상 번뇌를 모두 삼킬듯한 법고(法鼓) 소리 등등. 정중동(靜中動), 혹은 동중정(動中靜) 자체랄까. ‘소매는 길어서 하늘을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조지훈 ‘승무’) 시구가 떠올랐다.
     ‘승무’는 흔히 알려졌듯 사찰에서 추는 춤이 아니다. 조지훈의 시처럼 젊은 비구니와 큰 관계가 없다. 우리 고유의 춤 동작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 같은 형태를 갖췄다. 20세기 초반 걸출한 춤꾼인 한성준(1875~1941)이 춤사위를 정리했고, 그의 손녀이자 이애주의 스승인 한영숙(1920~90)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다. 민속춤 가운데 예술성이 뛰어나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됐다.  
     ‘승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첫 동작과 마지막 동작이다. 춤꾼은 무대 바닥에 바짝 엎드린 상태에서 시작한다. 양팔을 서서히 움직이며 일어선 그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객석을 향해 인사한다. 몰아치는 북소리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공손히 합장한 다음 관객을 향해 다시 머리를 조아린다.
     이애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동작을 우리 민족 최고의 춤사위로 꼽는다. 남녀노소·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인간에 대한 지극한 예의를 드러낸다는 뜻에서다. 그는 생전에 “최대한 자신을 낮추면서 속을 비우는 몸짓이다. 그래야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 춤은 절로 시작하고, 절로 끝난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자연과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춤은 이웃에 대한 섬김이요, 받듦이요, 모심인 셈이다.
     1980년대 민주화 열기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애주가 결국 도달한 곳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의였다. 반면 그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사회 참여에 열심이던 80년대엔 스승 한영숙이 우리 전통춤의 훼손을 걱정했고, 90년대 들어 민주화 현장을 떠나자 운동권 일부에선 변절자라고 깎아내렸다.  
     이애주는 그럼에도 춤의 본질을 붙들고 살았다. “다섯 살 때 시작해 70년 춤을 췄지만 항상 어려웠다. 무대에 설 때마다 떨렸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 춤만 그런가. 살아가는 게 그렇다. 나를 죽이면서 1초 1초 똑같은 마음으로 살려고 했다”고 돌아봤다. “어머니가 아기를 보살피듯, 아픈 할머니를 보듬듯, 연인들이 서로를 감싸듯 춤을 췄다”라고도 했다.
     이애주에게 춤은 곧 삶이요, 사회요, 역사였다. 무용평론가 성기숙은 “이애주의 타계는 한 시대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숙고하게 한다. 이애주는 실마리를 『주역』의 ‘원형이정(元亨利貞)’에서 찾았다. 춤이란 세상을 고루 이롭고 바르게 하는 것, 최근 한국 사회 화두인 공정과 통하는 대목이다. 내년 대선이란 커다란 춤판이 달아오르고 있는 요즘, 대선 주자들이 새겨야 할 말이기도 하다. 그 출발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데 있다. 허세와 오만, 아집과 독선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주역』에선 이를 ‘무수길(无首吉)’이라 했다. 머리(지도자)가 없어야 세상이 길하다는 의미다.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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